# 왜 우리는 부패한 리더에게 표를 던지나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정당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뻔뻔한 부정을 저지른다면, 우리 국민은 왜 이토록 운이 없는가를 고민하기보다 더 나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은 반드시 부패하고, 소시민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한탄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근대 국가는 가장 위계적이면서 가장 안전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죠. 어떻게 권력 지향적이지 않은 양심적인 사람들을 추대할 것인가.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는 정확한 척도는 ‘그가 나보다 권력이 센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니라 나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유권자 스스로 자신의 권력의지를 점검해 보세요. 그런 다음 공직에 진심이고 청렴하며, 권력의 범위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향상할 거라고 기대되는 후보에게 투표하세요. 투표용지에 그런 후보가 하나도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제도를 개선해서 더 좋은 후보를 낼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하세요.
# 시간을 찾아드립니다
시간을 분배하는 관리 방식보다는, 평범한 하루에서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간 그 자체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시간이 돈이 아니다. 돈이 시간이다. 돈과 달리, 시간은 제한적이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더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 포인트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목표와 삶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완벽한 시간 사용을 위한 정해진 공식은 없다. 1) 우리 삶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구체화하고 2) 그 목표와 일치하는 활동에서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며 3)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야 한다.
# 공감은 신뢰를 통해, 신뢰는 결국 ‘소통’을 통해 성취된다
포퓰리즘이야말로 타자에 대한 혐오에 기생해 혐오를 제도화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가장 중추적인 것, 그 근본에 ‘감정’이 있다. 혐오가 우리 공동체 위기의 하나의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안 좋으면 열부터 나듯이, 우리 공동체의 감정 위기의 징후로서 혐오 감정을 면밀하게 봐야 한다.
혐오의 가장 중요한 두 요소가 ‘위계’와 ‘기피’다. ‘위계’는 자신의 우월함과 타자의 열등성을 전제한다. 당신들은 우리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다는 논리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 두 번째는 ‘기피’. 너무 싫다 보니 대화 자체를 하기 싫어한다. “나는 너와 소통할 수 없어.” “너랑 얘기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인 일이야”, 라는 식의 기피가 혐오를 누증 시키고, 우리의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영 갈등이라는 것도 엄정한 진영 철학에 근거 했다기 보다, 어찌 보면 혐오와 매우 유착되어 있다.
혐오 받는 대상이 되는 데엔 공식 같은 건 없다. 공동체의 정상성에서 이탈된 사람들에 대한 공통된 감정선이 바로 혐오다. 어느 때엔 세월호 유족들이, 또 어느 때엔 여성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태극기시위 때엔 ‘틀딱’이라는 노인 세대에 대한 혐오 표현이 등장했다. 대상은 자유자재로 변한다. 그렇다면 혐오나 적개심, 그 중심부에 위치한 것을 먼저 봐야 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는 불편함, 그 ‘불편함’에서 시작된 혐오 프로세스를 볼 수 있어야 우리 사회 많은 갈등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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