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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시간에 관한 우리의 직관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책이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일상을 살아가며 비대해진 자아는 줄어들어 티끌로 느껴지고 이내 상쾌해진다.
인간이 시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장소와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둘째,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사물의 미시적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 차이가 사라진다. 셋째, 광활한 우주에 ‘현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넷째, 시간은 독립적이지 않다. 시간은 우주의 다른 실체들과 상호작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시간은 모두에게 다르게 흐른다. 물리학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이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라면, 옳고 그름의 기준이 고작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 안에서만 통용된다면, 남는 것은 결국 사건과 관계일 테다. 황량하고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시간이 멈춘 풍경에 질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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