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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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을 통해 ‘내가 겪어봤던 삶의 한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니까. 누구나 점을 찍을 순 있지만 아무나 선을 그리는 건 아니니까. 한 번은 몰라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은 좋지만 앞으로도 좋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할지 다른 일을 시작할지” 고민하게 되는, “청춘 이후의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큰 위기”를 그리는 게 감독의 목표라고 했다. 링 위에서 승리를 거두는 건 복서만의 경험이지만, 삶에서 경험하는 패배는 우리 모두의 것이므로. 복싱을 몰라도 인생을 알면, 이 영화에 담긴 게이코의 시간이 실은 내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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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시겠어요?"(직원)
"네, 혹시…여기서 제일 인기 없는 메뉴가 뭘까요?"(나)
"음, 저희 매장에서는 이 음료가 가장 안 팔리고 있어요."(직원)
"아, 그걸로 주문할게요!"(나)
갔던 길을 또 가고. 먹던 걸 또 먹고. 보던 걸 또 본다. 남들이 좋다는 걸 막연히 쫓고 알고리즘 추천을 받는다. 무표정하게 있어도 최적의 것을 알려준다. 좋다. 효율적이며, 불안한 것도 실패하는 것도 줄일 수 있으므로. 그러다 문득 보이지 않는 틀 안에 갇혀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막연히 벗어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별로여도 상관없다고.
아무렇게나 길을 따라가니 몹시 자유로웠다. 어쩐지 해방감이 느껴졌다. 하나라고 생각했던 길은, 가보니 실은 너무 많았다.버스나 지하철이나 차로만 갈 수 있다고 여겼으나 아녔다. 자전거나 걸음으로도 갈 수 있었다.
앞에서 했던 작은 모험. 실은 그리 대단한 교훈이 담긴 메시지는 없다. 엄청 즐겁기만 하거나 오롯이 재밌는 것도 아녔다. 외려 약간의 불안이 늘 동반됐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았다. 그건 오롯이 '내 선택'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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