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성인이 된 딸아이와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와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녀석과 나는 정말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생각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아이는 6살 이후 한국에서의 삶보다 해외에서 삶이 더 많으니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경상도 집안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내가 어디까지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며칠 전 녀석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톡으로 나누던 중에 트레이시 에민 작품 어때?라는 말에 뭐 지금 영국 작가로 핫하지. 그런데 난 노이즈 마케팅으로 너무 몰고 간 것 같아 별로야. 그리고 영국 YBM (영국 젊은 아티스트를 일컫는 말-Young British Artist 약자) 소속 작가들 미국에 건너가 돈벌이하는 것 같아 좀 그래 부자들한테 영혼 파는 작가들 같아라는 말을 던졌다. 녀석의 즉각적인 답은 ' 엄마는 너무 보수적이야 '라는 단답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특별전 해'라는 답도 덫 붙였다. 나는 이런 문자를 받으면 이 녀석에게 엄마는 그냥 보수적인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더 깊숙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내심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오늘 모녀의 대화에 올라온 작가는 모두 여성 작가다. 생각해 보니 딸아이가 고등학교 미술 과목 졸업 논문으로 여성 작가 3명을 선정해 글을 섰던 생각이 났다. 인도 작가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제니 샤빌의 그림은 선명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게 샤빌 그림 너무 멋있지 않아?라는 말도 했던 기억이 선명히 난다. 이 녀석에게서 가끔 페미니스트 성향이 보이면 아 ... 그만 윤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가 참을 때가 있다.
이 녀석 앞에서 성차별적 발언이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가는 그 날로 인격이 바닥인 사람으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아빠와의 살벌한 논쟁도 서슴지 않는 아이다. 보수적 성향의 끝판왕인 아빠도 이런 딸에게 그야말로 묵사발이 된 이야기도 있다. 그것은 아빠의 문화적 이해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기에 남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시댁은 아들 손자만 줄줄이 있는 집안에서 유일한 손녀인 윤은 집안 행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포지션이다.
오늘 나의 눈에 들어온 트레이시 에민의 드로잉은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솔직한 감정을 담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2015년 미술치료 상담사 공부를 하던 시절 어느 대학원 생이 내 앞에서 그렸던 그림도 오버랩 되었다. 그 학생은 굳게 닫힌 문을 그리고 그 뒤로 강이 범람해 쏟아지는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듯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어릴 적 성폭행을 당한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성인이 될 때 까지 혼자 눈물로 지세웠던 눈물의 홍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당시 미술치료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이었다. 나도 미술치료를 공부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학생이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삶에 끔찍한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 성폭행이란 평생의 트라우마는 그 어떤 트라우마보다 강력한 것이다.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트레이시 에민은 예술을 선택했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예술에 진심인지는 알 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 사랑과 배신 증오를 예술적 승화라는 방식을 선택해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는 응원을 하고 싶다.
니키 드 생팔의 <슈팅 아트>도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작품도 그녀들에게는 평생을 싸워 얻어 낸 자신의 행복 찾기였을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각자에게 주워진 삶은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이라는 것만 잊지 말자.
글쓴이 -박숙현
치유작가 sue 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12년간 해외 살이로 세계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는 취미를 가졌고 지금은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작가로 글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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