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바라보자 보이는 세상
무서운 영화를 집중해서 보다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눈을 가리는 것 같은 그녀는 이은새 작가의 <눈 비비는 사람>이다. 눈동자와 눈가가 빨갛게 변한 그녀, 잠시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빨간색은 나에게 위협감을 주었지만, 찬찬히 바라보니 그녀의 호기심도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그녀처럼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보호하며 다가가는 게 아닐까?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세상을 함께 들어 가 보고 싶다. 새로운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두 눈을 가리고, 까꿍!
아이들이 아가였을 때 ‘까꿍 놀이’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놀이였다. 내가 “까꿍”하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웃던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대학 시절 배웠던 피아제(Piaget) 인지발달 이론을 떠올려보며, 이론이 맞는지 잠시 실험정신이 발동해 발바닥을 간질간질하며 반사운동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모빌에 긴 끈을 묶고 아가의 발목에 연결해 대근육 운동과 함께 청각, 시각 발달까지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며, ‘발을 움직이면 모빌이 움직인다.’라는 정신적 표상이 이루어지는지 탐구해 보기도 했다.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인지 발달 이론으로 유명한 스위스 심리학자로 아이들이 인지 능력을 발달하면서 겪는 네 가지 주요 단계를 설명한다. 출생에서 2세까지의 감각운동기, 2세에서 7세까지의 전조작기 단계, 7세에서 11세까지의 구체적 조작기 단계, 11세 이상 형식적 조작기 단계로 나누고 단계마다 특징을 설명했다. 까꿍 놀이를 한참 좋아하던 시기의 아가는 감각운동기에 속하며, 한참 대상 영속성을 키워나가는 시기이다. 아기들은 눈앞에 있는 사물이나 사람이 사라지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보이는 이유는 엄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6~7개월 정도 되면서부터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엄마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음을 알게 되는 대상 영속성이 발달된다. 바로 이 시기가 ‘까꿍’ 놀이의 최적기이다. ‘까꿍’하며 사라졌던 엄마가 나타나는 경험을 통해 아기들은 긴장과 안심의 과정을 반복하며 긴장을 견뎌낼 수도 있고, 기억력 발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듣는 엄마의 목소리와 말소리는 엄마와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언어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렇게 까꿍 놀이를 즐기던 아가들이 걸음마를 시작하면, ‘숨바꼭질’ 놀이로 재미를 더 할 수 있다. 숨바꼭질은 아가에게는 재미를, 함께 노는 부모에게는 약간의 휴식을 줄 수 있는 아주 멋진 놀이이기에 유아, 초등 저학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에게 추천하는 놀이이기도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어흥!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좋아하는 놀이가 또 있다. 바로 ‘어흥’하며 상대방을 놀래 키는 놀이다.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멈추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면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다다다! 어디론가 숨는다. 아빠는 현관을 들어와서도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온다. 어디선가 ‘어흥’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깜짝이야!” 외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여러 번 당했다. 정말 놀랬을 때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난 잘 놀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만 엄마 놀래 키기다!”라고 당부를 해두기도 한다.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깜짝 놀래 키는 놀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듯하다. 이경규가 진행했던 <몰래카메라>는 1991년부터 1년 정도 진행되다가 2005년 시즌2로 다시 방영되었고, 이후 2016년 몰래카메라 형식을 차용한 코너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분들이라면 버스 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외국 버전 <몰래카메라>도 많이 보셨을 거다. 다시 생각해도 동서고금 누구나 좋아하는 놀이인 게 맞는 듯하다.
두 눈을 감으며, 비비적비비적!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눈을 비빈다. 졸음이 쏟아지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는‘이제 잠이 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환호를 지르겠지만, 아이들은 ‘난 잘 수 없어!’라는 모습으로 눈을 비비며, 잠을 깨운다. 이렇게 놀고 싶어서 눈을 비비적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눈이 빨게 지도록 눈을 비벼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만 되면 왜 그렇게 잠이 쏟아졌는지 그때마다 두 눈을 감고 비비적비비적 눈을 비볐다. 요즘도 눈을 잘 비빈다. 눈가 주름 때문에 참아야 하는데, 어느새 눈을 비비고 있다. 꾸뻑 꾸벅 졸다가 깨서 책 한 줄이라도 더 읽어보려고 눈을 비비고, 빨강머리 앤의 재잘대는 이야기들에 흠뻑 빠졌다가 매슈 아저씨가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에서 나의 눈물샘은 폭발한다. 결국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고 나서 퉁퉁 부은 눈을 비빈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열심히 글을 쓸 때도 눈을 비빈다. 꽃가루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외출 후면 눈이 간질간질하다. 눈을 비비는 대신 인공눈물을 똑! 똑! 넣어보기도 한다. 눈알이 시원해진다. 이렇게 우리 몸은 눈을 통해 ‘나 피곤해’를 외친다. 그럴 때는 잠시 쉬자. 빨갛게 변한 눈을 잠시 쉬어주자. 쉼을 통해 쌓인 에너지로 더 힘찬 내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글쓴이 - 전애희
현재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문화예술강사로 초등학교에서 수원문화와 연계된 예술활동 및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 창의융합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한 장르!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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