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를 지켜보는 시선
어렸을 적 나는 용감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의 앞에서 떨림 없이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사람들 앞에 서면 말해야 할 내용이 머리 속에서 싹 사라진다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을 잘하는 아이여서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선생님들 앞에서 친구의 말을 대신 잘 전달하며, 억울한 아이의 입장을 잘 이야기 해주는 친구였다.
지연이가 말하면 선생님이 아묻따, 무조건 오케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과는 다르게 나에게 약점이 생겨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내가 늘 잘해야 하고, 잘 행동해야 하고,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버린 것이다. 거기에 누구누구의 자식이어서 행동을 잘해야 한다는 도덕적 체면에 나를 가두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초등학생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 지워지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며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무척 중요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자라게 되면서 나는 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살아왔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아까 내가 실수했던 부분들을 사람들은 뭐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실수했지?
왜 난 더 준비하지 못한 것인가...
이런 생각들로 항상 나를 다그쳐왔다.
어느 순간 이것을 고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좀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괜찮다고, 잘했다고, 다독여 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사실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 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의 실수에 사람들은 오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창피함은 그때뿐이야.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틀릴 수도 있다.
너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지 않는가.
틀리면서 배워가는 것이 사람이고 인생이다.
#2 아직 벗어나지 못한 굴레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좀 편안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남편이 아팠다.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이 온통 나에게로 향했다.
밤마다 소리 낮춰 울면서도(진짜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남편에게도 들키면 안 됐으니까, 나의 눈물로 그의 마음이 더 아팠을 테니까) 아침에는 아이들에게 남편에게도 나의 퉁퉁 부운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차가운 얼음을 가져다 대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씩씩하게 보이길 원했다. 항상 밝게 보이려고 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사실 내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프고,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내 속은 곪아 터져가고 있었지만 내 얼굴에는 늘 밝음이 장착 되어져 있었다.
남편이 떠나고 옷장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전날 모임에 나가려고 챙겨둔 옷이 너무 화사하게 보인다.
이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 텐데,
남편이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화사한 옷을 입는 건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은 마음이 드니 도저히 입을 수가 없다.
입었던 옷을 다시 벗는다.
검은색의 어두컴컴한 옷을 집어 들어 입는다. 그리고 또다시 벗는다.
저렇게 어둡게 입고 다니니 집에 우환이 생기는 거지,
또 다른 시선이 나를 옥죄어 온다.
나는 아무것도 입을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나를 집어넣는다.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까?
언제쯤 자유로워질 텐가
그 물음 앞에 나는 서 있다.
그리고 답한다.
그대여
당신은 지금까지 잘해왔고, 잘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그러니 숨을 고르고
모든 관심과 집중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쏟아보시게
그러기에 당신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지 아니한가.
어차피 남들은 당신에게 별로 관심도 없다네.
나를 살아갈 한번 뿐인 삶에
당신의 영혼이 갉아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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