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한나파울리 Breakfast 1899_김경진

그리워해 봄_김경진

2024.05.25 | 조회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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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한나 파울리, Breakfast Time, 1887
한나 파울리, Breakfast Time, 1887

1887 스웨덴  한나파울리의 5월

야외정원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스웨덴 부르주아 계층의 일상이다. 저녁을 다 먹을 쯤이면 눈앞에 노을이 시골풍경을 감싸 안았다. 따스한 아침햇살과 연녹과 짙녹이 교차되는 시점, 5월의 어느 날로 보인다. 약간의 그늘과 햇볕 사이에 테이블, 의자, 주전자, 잔들은 한껏 빛이나 눈이 부시다. 유난히도 춥고 칙칙한 겨울의 스웨덴에 봄이 오면 이런 모습이구나. 좀처럼 해를 보기 힘든 이 나라에 이런 따뜻한 햇볕이 있을 때 아침은 나가서 먹어야지. 자세히 보자면 딱히 먹을 것이 없다. 커피와 빵보다 주변 식기들이 주인공이 되어 테이블 위에서 볕을 만나 노래하는 듯하다. 그림만 보고 있어서 산새들이 짹짹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빛에 생동하는 이것들은 아침을 돋보이게 했고, 겨울과 대비되는 봄을 빛나게 했다. 넘치는 붓놀림과 하얀 물감의 덧칠로 얼룩한 느낌을 낸 표현방식은 스웨덴 비평가들에게 미숙한 기술쯤으로 치부되었다. 더불어 예술가가 자신의 붓을 닦은 결과일 것이라 혹평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인상주의적 표현은 예술분야가 파리에 비해 한참을 뒤쳐졌던 스웨덴에서 한나 파울리가 예술가로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작품의 주를 이룬 초상화에서도 이러한 인상주의의 영향을 이어 나갔다.

1988 아홉살의 5월

이 그림을 본 순간, 나의 초등학교 2학년 때가 떠올랐다. 우리 동네는 아파트 주거단지와 시장, 학교들이 모여 있지만 신호등하나만 건너면 바로 시골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농이 겹치는 구간이다. 학교 뒷문을 나가면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찾을 수 있고, 좁은 길을 따라 몇 분만 걸어도 우거진 숲을 만날 수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가면 널따란 들판이 나온다. 주말이면 우리 집은 돗자리와 짐을 한 가득 들고 그 숲 속으로 갔다. 하얀 천을 깔고 가지고 온 식사를 꺼낸다. 살랑살랑 5월의 바람과 햇살은 더할 나위 없이 상큼했다. 머리를 땋아올리고 핑크색 치마에 하얀 스타킹을 신은 나는 숲 속을 뛰어다녔다.  나는 그 때 그 장면과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사진첩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춥기 전까지는 소풍을 즐겼고, 꼭 한 자리만 고집하지 않았다. 다른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명당이 있었다. 5월에는 햇살이 안 드는 곳은 살짝 춥고, 드는 곳은 볕이 강했다. 그래서 큰 나무 아래 햇살이 그늘과 잘 겹치는 구간을 찾아 돗자리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적당히 눈부시고 적당히 바람도 부는 딱 그곳을 찾는 게 관건이다. 저녁을 다 먹을 쯤이면 눈앞에 노을이 시골풍경을 감싸 안았다. 밖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아카시아 향이 스멀스멀 우리 주변을 휘감는다. 그러면 마시는 물도 향기롭다. 저기 저 가정의 아침식사에는 어떤 향기가 날까?

2024  다시 온 5월

2024.5.17 양재천 가로수길
2024.5.17 양재천 가로수길

나는 11월부터 봄을 세고 있다. 아마 내가 북유럽에 산다면 겨울 한 달도 못 견딜 수도 있겠다. 운전을 하고부터는 5월을 더 기다렸다.

3월 말 연녹색 싹이 주변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한 달도 채 안되어 주변은 가지마다 새 생명이 싱싱하게 귀여운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5월이면 색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정말 설랜다. 양재천 가로수길은 나의 최애 드라이브 코스다. 오전 11시쯤이면 창문을 열고 달려도 좋을 만큼 한산한 도로가 된다.  가로수길 나무 밑 벤치들이 햇살을 받아 빛나면 누워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한나 파울리의 식탁에 있는 것들을 여기에 모두 옮겨와 즐겨봐도 좋겠다.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사이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이곳은 어반스케치에 딱 적당한 곳으로 찜해두고 드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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