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화면 가득 소녀들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한 시선이다. 마치 금지된 놀이를 하다 들키면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곁눈질을 하고 있다. 세상의 아이들에게 금지된 놀이란 없다. 어른들의 시선에 위태로워 보이는 놀이도 그들의 염려와는 다르게 이내 익숙한 놀이로 발전시켜 노는 게 아이들이다.
한국은 아이 양육에 관하여 많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부모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서 안되는 놀이 위험해 보이는 놀이를 모두 차단하는 것들 말이다.
그림의 소녀들은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미끌 미끌한 쇠봉에 매달려 있다. 한 소녀는 이 놀이가 익숙한 듯 거꾸로 매달려 있고 또 한 소녀는 슬리퍼를 신은 채 쇠봉에 매달릴 준비를 시도하고 있다. 이 두 소녀는 언젠가 나란히 철봉에 매달려 대화도 나눌 만큼 철봉을 잘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른들의 염려에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동양의 여성들은 많은 절제 속에 살았다. 서양의 여성보다는 휠씬 아니 지금도 그런 시기는 게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은 예쁜 것이 공부 잘하는 것보다 조직 내에서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남성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많은 불합리적 요소를 감당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아래 크게 그려진 주황색 엑스 표식은 마치 잘 그려놓은 창작품에 스프레이로 그려놓고 도망간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 여자아이로써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중 놀이라는 자유마저 얻지 못한 채 성장한 어른이 있다면 그 어른은 도대체 무엇에 대해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내가 잠시 살았던 독일에서는 성의 구분을 초등기 즉 유치원에서는 별로 구분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딸아이가 수영을 한창 배울 나이 6살의 일이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예쁜 누가 봐도 블링 블링 분홍색의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독일 소녀가 입고 온 수영복을 본 이 한국 엄마가 깜짝 놀라는 일이 생겼다. 그 여자아이의 수영복은 원피스도 비키니도 아닌 남자아이들이 입는 수영복 팬티만 입은 채 해맑은 얼굴로 물 밖으로 나와 탈의실로 선생님을 따라가는 게 아닌가? 아무도 그 여자아이의 상의 없는 수영복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만 빼고 말이다.
그날의 문화 충격은 잊을 수가 없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서양의 나라 문화가 동양인의 눈에는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여성의 가슴을 드러내는 일은 남녀를 구분하는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그것이 남성에게 들어내는 섹시함의 일부로 인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의 한 부분이었다.
놀이문화에서도 그들은 남녀의 구분이 아니라 자신들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며 자유였다. 그 자유를 선택하며 그리고 그것을 위해 도전하며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되고 안되고는 각자 자신으로부터의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 한 번쯤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철봉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거꾸로 본 세상은 어떠했나요?
작가소개
치유작가 sue 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12년간 해외 살이로 세계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는 취미를 가졌고 지금은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작가로 글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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