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同化)_아이들 이야기

핑키의 우산 #전애희

안드레 부처(André Butzer)_ Untitled, 2018

2024.09.25 | 조회 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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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핑키의 우산

"핑키야! 우산 가져가야지!"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엄마가 우산을 챙겨주셨다. "그냥 가도 되는데~" 볼멘소리를 내며 우산을 건네받았다.  

사실 난 이 우산이 싫다. 

흙탕물 같은 똥색 우산, 못 생긴 이 우산이 싫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가니, 봄비가 세차게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똥색 우산을 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등굣길을 나섰다.

여기는 부처초등학교 4학년 3반. 핑키는 나를 탈탈 털어, 핑크색 우산 보관함 안에 넣고 쪼르르 친구들에게 갔다. 

안드레 부처(André Butzer)_Untitled, 2018
안드레 부처(André Butzer)_Untitled, 2018

보관함 속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있었다. 다들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세찬 봄비로 젖은 몸을 말리느라 바빴다. 아직 마르지 않은 빗물은 친구들 손 등에 파란 물방울 자국으로 남아있었다. 

"딩동댕동~" 1교시 수업 종이 울리자 시끌벅적 했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교실 안 분위기와 달리 핑크색 우산 보관함 안은 이제야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뽐내기 좋아하는 보라 우산이 옆 친구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붙임성 좋은 초록 우산이 보라 우산을 바라보았다. "안녕, 어! 너 저번에 백화점에서 만났던 보라색 우산이구나!" 민들레 꽃잎을 달고 온 빨강 우산은 곧 들어오려는 친구를 위해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내가 비켜줄게. 이쪽으로 들어와." 보관함 속 우산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금방 친해졌다.

핑키의 흙탕물색 아니 똥색 우산만 빼고······. 

"얘들아, 안녕!" 아무도 바라보지 않았다. 

"얘들아, 나 진짜 재밌어. 봐볼래? 이렇게 얼굴을 변신시킬 수도 있어." 

"얘들아, 내가 음악 연주 해줄게."

변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신나게 연주를 했다. 

솔솔~파 미미미 레미파솔미 / 파파파미 레레라 솔솔미레도 /  레레레레 미미미미 솔솔미라솔~ / 도~라도 라솔미도 레도레미라솔 / 라라솔 도라솔미 레레레미도

똥색 우산의 얼굴 변신에도, 피아노 연주에도 다른 우산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핑크색 우산 보관함에는 화려하고 깔끔한 우산들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똥색 우산은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지만, 이내 기운을 차리고 주머니 속에서 재미있는 책을 꺼냈다.  

'그래! 난 나만의 세상을 찾아갈 거야.‘ '너희들은 모르는 재미있는 세상으로 나는 떠날 거야.' 

똥색 우산은 책을 읽으며, 혼자 깔깔 웃었다. 잠시 후에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우아하게 대화를 하던 친구들이 힐끔거리며 똥색 우산을 바라보았다. 똥색 우산은 친구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상상 속 세상에서 웃고 울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초록 우산이 똥색 우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똥색 우산! 무슨 책이야?" 

"이 책은 요새 핑키가 재미나게 보는 <대단한 4학년>이야." 

이번에는 보라 우산이 묻었다. 

"대단한 4학년? 무슨 내용이야? 주인공이 누군데?" 

"내용을 알려주면 시시하지~~"

똥색 우산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민들레 꽃잎을 달고 온 빨강 우산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똥색 우산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 개랑 마주친 적 있니? 음······, 수영해 본 적 있니?" 똥색 우산의 질문에 모두들 눈만 껌뻑 껌뻑했다. "개도 무서워하고, 캄캄한 방도 무서워하고, 거미도 무서워하고, 물도 무서워서 수영도 못하는 친구가 시골에 갔대. 그런데 시골 아이들한테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큰소리치기' 작전을 시작 한 거지." 우산 친구들은 모두 똥색 우산의 책 이야기에 쏙 빠졌다. 

"음······, 그다음은~~~ 내가 다 알려주면 재미없지!!" 

"뭐야~~ 더 궁금하잖아!" 

"나도 궁금해!" 

"똥색 우산아! 아니! 땅의 기운 우산아! 책 다 읽으면, 나 빌려줄 수 있어?" 

어느새 똥색 우산은 '땅 우산(땅의 기운 우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 우산은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우산으로 통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4학년 3반 핑크색 우산함 속에서는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땅 우산의 이야기에 모든 우산 친구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하하 호호 낄낄 웃는 소리, 꺅! 억! 헉! 놀라는 소리, 흑흑흑 흐느끼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오늘처럼 벚꽃 향기 가득한 봄비가 내리는 날, 핑크색 우산함에서 어떤 소리가 들릴까?    

 

글쓴이 전애희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다 보면 '세상 모든 게 예술이구나!' 생각이 든다. 브런치 작가로, 삶 속에서 만난 예술을 글에 담으며 행복을 쌓고 있다. 예술과 함께하는 삶은 유치원 교사(8년 차), 원감(6년 차) 경력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현재 미술관 도슨트, 수원시 초등학교에서 수원문화와 연계된 예술 수업을 하며 문화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아동예술교육가, 독서지도사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아이들과 만나고 예술을 매개체로 소통하는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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