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트레이시 에민>_나의 침대 1998년 #김상래

먼지에 반응하는 몸

2024.08.09 | 조회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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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트레이시 에민_ 나의 침대 1998년작
트레이시 에민_ 나의 침대 1998년작

먼지에 반응하는 몸

비염. 친구들 사이에선 일명 ‘부자병’으로 통했다. 부자는 아니었는데 몸이 먼지에 반응했다. 백화점이나 옷 가게에 가면 콧물이 나거나 재채기가 났다. 심한 경우 눈과 목이 붓게 되어 비염약을 먹어야 가라앉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증상은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생긴 듯싶다. 왜냐하면 알레르기 검사를 위해 피를 뽑은 게 그 즈음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검사 결과 가장 많은 반응이 ‘유럽 집먼지진드기’에서 나왔다.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라는 작품을 보고 있자니 RER B선이 파리의 1구역을 넘자마자 나오는 파리 2존 ‘정띠이(Gentilly)’의 내방이 떠올랐다. 이 정도로 지저분한 방은 아니었지만, 신발을 신고 다니던 실내, 카펫 위로 침대가 있었고 침대 위엔 빨기도 힘든 두꺼운 침대 시트와 이불이 늘 펼쳐져 있었다. 얼마 만에 이불 세탁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자주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국에 드럼 세탁기가 별로 없던 시절, 유럽은 가정마다 드럼 세탁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내가 살던 ‘정띠이’ 집도 주방 가스레인지 바로 옆에 드럼 세탁기가 놓여 있었다. 두껍고 큰 이불이 세탁기에 잘 들어가지 않아 답답하던 기억이 난다.

 

청소

그러고 보면 결혼 전 이불 빨래는 모두 엄마 담당이었다. 딸 셋이 벗어 놓은 옷가지며 속옷, 양말, 이불 빨래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바쁘지 않은 사람 없었는데 청소며 빨래 모두 엄마가 도맡아 했다. 누군가 정리해 주지 않고 청소하지 않으면 방안은 금방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 같은 방이 되고 만다. 내부에 있는 침대인지 밖에 있는 침대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요즘 아이와 내가 자는 방을 보면 침대 위에 베개만 4개, 에버랜드에서 사 온 엄마 펭귄 앞에 자석으로 꼭 붙어 있는 새끼 펭귄 인형, 아이의 돌 이후에 사준 개구리 인형, 남편이 마트에서 사 온 펭귄 베개까지, 자는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올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만화 ‘스누피’에서 나오는 ‘라이너스’처럼 아이에겐 침대 위의 모든 게 소중하다. 인형마다 제 나름의 자리가 각각 있고 그중 하난 내 자리다. 바로 아이 옆. 그러다 보니 잠을 자기 위해 인형을 위로 옆으로 밀어놓게 된다. 마음 같아선 베개 2개만 놓고 아이와 편하게 자고 싶다. 유림이, 유찬이가 들어온 이후론 두 마리의 고양이까지 침대 위에 합세하게 되어 침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청소를 자주 하게 된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불 빨래를 하고 베갯잇을 바꾼다. 아이 없을 때 인형들도 세탁기에 넣고 팍팍 돌린다. 그런 후엔 건조기에 넣고 한 시간가량 물기를 뺀다. 미세 먼지와 고양이 털은 나를 바지런히 움직이게 만든다. 그 옛날 엄마 몫의 3분의 1도 안 되는 집안일을 하면서 주부로서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잠기면서.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해

막냇동생은 아이 둘을 키운다. 육아와 일로 충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 청소를 대신할 사람을 부른다. 일주일에 두어 번 청소 맡기는 걸 보고 나도 시간을 그렇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엄마로, 주부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으니, 시간을 벌어보고자 동생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런데 막상 가사 도우미를 부르자니 집안의 구석구석을 살피게 하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깨끗한 환경을 위해 사람을 부르자니 집안부터 치워 놓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전히 가사 도우미를 부르지 못하고 큰 것만 치우면서 살고 있다.

이럴 땐 엄마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 옛날 엄마들 대부분은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해야 하니까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대였다면 모든 일을 본인이 다 했을 거다. 하지만 엄마는 조언을 구하는 내게 “시간을 벌어야지. 몸을 아껴야 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고 너는 네 일을 하는 게 시간을 버는 거야.”라고 했다. 다른 이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려도 엄마 말은 신뢰 100퍼센트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 편이지만 엄마가 주는 해답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다. 그래서 순도 100퍼센트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돈은 더 벌면 되니 몸을 조금 아끼고 서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이제 전화할 일만 남았는데 막상 또 집안을 둘러보니 이걸 언제 다 정리하고 사람을 부르나 싶다. 나는 언제쯤 가사도우미를 부를 수 있게 될까.

#살롱드까뮤 #미술에세이 #트레이시에민 #영국작가 #김상래

 

* 글쓴이 - 김상래

융합예술 연구센터 <아틀리에 드 까뮤> 대표, 인문·예술 커뮤니티 <살롱 드 까뮤>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상상예술관> 칼럼니스트로 미술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으로 미술 에세이를 쓰며 블로그 <까뮤의 그림 배달>을 통해 그림을 나누고 있다.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및 여러 기관에서 유아부터 시니어까지 문화·예술 관련 지식을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여러 권의 미술 서적을 집필 중이며,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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