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로부터 자유
너는 어떻게 조각하게 되었는가
나는 너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가
절망적인 근육은 단절된 죽음과 극적인 아름다운 희망을 보여준다.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에서 피어난 원초적 생명을 가진 역동적인 해방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참혹한 껍질에서 벗어나 그늘의 체념들에게 반발할 수 있는 기회를 로댕으로 맞이했다. 입장의 환희를 비출 수 있는 것은 소유로부터의 자유로운 명예가 그녀의 외로움에 대한 낭만에 보답한 것과 같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늘어 뜨러져 있는 머리카락과 그녀의 본체를 그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이미 동일시되었던 것들도 이제는 함께하기 힘들었던 자연스러운 이치를 몰랐던 이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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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으로 파묻혀 자연적 고통에 심취해 있었던 날들, 산산이 조각났던 어린 시절을 떠 올려보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시간도 부족했던 그날들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잠시 잊어왔었다. 원망과 공포 아니면 공허함으로부터 나를 꾸며야 살아갈 수 있었던 시절이다.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기록들이 어디론가 붙잡혀가지 않게 온전히 나에게로 직접 왔다.
결정적인 눈부심에 비쳐오는 아름다움으로 치를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지 않은 생명이 과연 존재할 까? 존재라는 것은 과연 정말 아름다운 것일까? 늘 의심하고 반복적으로 돌아서서 위안 받을 수 있는 시간의 존재에 도달하고 싶었다.
방 한편에 이불만이 차곡히 쌓여 있었던 자리에서 어떤 것도 이유를 될 수 없었다. 고요하게 엎드려 고통에 빠진 울음을 향해 나 자신이 수용해 납득시켜야 했었다. 무엇에게도 들키지 않게 숨죽여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절박한 발버둥을 쳐왔다.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그저 감정에 위배 당했을 때 나의 조각들은 그렇게 아름답고도 처절한 목소리를 내어가며 도망치고 싶어 했었다. 나를 위협하는 것이 있다 하여도 누구보다 자유롭게 귀를 막을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그 비밀스러운 공간은 비록 그 찰나의 우아한 정적보다 강한 열망이며 내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했었다. 그때는 그저 홀로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것의 끝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도 열심히 사는 가족들에게 나는 완전한 봄은 되지 못하더라도 도망치지 않는 조각난 빛이라도 비추길 기도해야 했었다.
아름다운 폐허 속에서 잠든 열렬한 사랑
조각가는 잠을 잔다. 몸을 숨기듯 어떤 이보다 아름답게 본체를 구부리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린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시간처럼 그 시선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절망의 근육은 아름답다. 살려달라 애원하는 근육들의 비명은 웅장하다. 그늘 친 저녁도 몸을 떨며 타인같이 흘려보낸 따뜻함도 갈 곳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뿌리 깊은 고정관념의 실체처럼 우아하게 묘사를 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괴물처럼 그 공간에서 나는 조금 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었다.
<다나이드>를 본 후, 아이들은 동물 같다, 슬퍼보인다고 한다. 순수한 사유들에 포개어 이 시선에 부여된 흐느낌을 풀어준다. 그녀를 묶는 것은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내면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더 단단해지고 굳어져오는 나의 조각상에 바람을 넣어본다. 시간이 없다면 바람은 어떻게 불까. 누군가의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된다면 아름다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유독하고, 유해하다.
얼굴을 더 파묻다가 참을 수 없는 서러움에 잠에 깊이 빠져들 때가 있었다. 좀 더 아름답게 엎드려보겠다. 힘줄이 오그라들 때에 나는 소리를 근육음이라 부른다. 아름다운 음은 어떤 것일까? 당당히 정면을 응시해 사투를 벌이지만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릴 허무의 모델이 된다. 아픔을 표출 시킬 통로는 그리스 신들의 조각처럼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평범한 나에게 의미를 주는 선택을 하게 한다.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물어보도록 한다. 시간과 약속의 현저히 혼란스러운 기록이 될 것인지 어떤 욕망도 찾지 못했다.
아름다운 폐허 속에서 잠든 열렬한 사랑은 자연이 주는 원초적 생명력이었다.
훌륭한 해방자, 결정적인 사랑스러움
*유독하다 (流毒하다): 해로운 독이 퍼지다.
*유독-하다2 幽獨하다: 쓸쓸하여 외롭다.
*글쓴이 - 료
글/ 도서관/ 미술관에 곁들어 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다. 예술에 대한 욕구가 차오르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질주하는 본능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게 멍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얻어걸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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