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아이가 방학을 했다.

2024.10.07 | 조회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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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아이가 방학을 했다.

아이가 방학을 했는데 왜 내가 좋은 것인가. 아이는 슬픔과 분노를 참지 못해 울고 있던 친구를 위로해 준 모양이다.

녹음기를 켜고 아이를 혼내는 선생님은 어떤 일을 겪었기에 방학 전날 아이를 몰아세우고 울게 했을까. 한 학기 내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 대해 들어왔다. 초등학생들과 생활하는 것, 쉽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기에 어느 쪽으론 이해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셨나 싶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는 아이, 모범생 같은 아이, 수업에 관심이 적은 아이 등 다양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깔깔대며 큰다는 것을 안다. 크느라 그렇다. 빨리빨리 커야 해서 몸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엄마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면 말썽꾸러기도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 형제 둘을 관찰하고 오히려 칭찬과 관심을 주었더니 부모님께서 따로 연락을 주시기도 했다. 그 둘은 수많은 대기자를 뚫고 또다시 다음 학기 내 반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쨌든.

센스가 있는 선생님이라면 방학 전날 정도는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해주었을 텐데 한 학기 내내 워크북 한 장이라도 밀리면 큰일이 나는 사람처럼 애 닳아 하고 일이 있어 못 나간 며칠간 다른 선생님이 대신해서 그 반에서 수업을 해 준 모양인데 그렇다면 감사한 마음을 먼저 갖는 것이 우선 일 것 같은데 또 그렇지가 않았다. "다른 반 선생님이 수업 이외의 이야기를 해도 너희는 수학 진도를 나가자고 했어야지?" 워크북 진도가 밀렸다며 반 아이들에게 핀잔을 준 모양이다. 그 워크북의 정체를 확인했다. 다른 반에서는 영상이나 ppt 자료로 수업을 재미있게 이어가는 반면, 이 선생님은 교과서 이외에 천재교육에서 나온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워크북 한 권을 한 학기 내내 빠짐없이 풀리느라 아이들과 추억할 시간을 문제집에 쏟은 모양이다. 선행하지 않은 우리 아이 입장에서야 나름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수업하는 방식에 있어 센스가 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다. 중학교 가면 하기 싫어도 공부해야 할 텐데 주먹구구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체험 학습을 쓴 적이 없는 아이

한 학기 내내 아이는 체험학습을 쓴 적이 없다. 물론 내가 바빠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월, 화 정도는 아이를 데리고 근거리 여행이라도 갈 수 있는 형편이었다. 아이는 방송반 역할과 선생님이 내주는 워크북을 하루라도 밀리면 안 돼서 어디도 갈 수 없다고 했다. 주어진 것에 대해 책임감이 큰 아이라 역할을 잘 맡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 혼자 워크북을 하는 일이 싫어서 체험 학습은 고사하고 아픈 날도 학교에 가는 아이다. 담임 선생님께 아이가 너무 아픈 것 같으면 조퇴를 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팠던 날은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라고 했고 그날 빠지면 다음 날 수행평가에도 지장이 있다고 했다. 아이에게 집에 가겠냐고 물어본다고는 했다. 아이에게 들으니 "너 아프면 집에 갈래?" 한마디 정도 얘기하고 아이가 그냥 있겠다고 하니 아무 일 없듯 수업을 이어갔다고 했다.

선생님이란 직업,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면서 얼마나 막중한 임무인가. 공부를 잘해서 모범생의 길을 걷다 보니 선생님이 된 사람과 아이들의 성장에 힘을 실어보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장착해 선생님이 된 사람은 다를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 점잖고 학자다운 선생님이 몇 분 계셨지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 평범함 속에서도 아이들의 가능성을 짚어주는 분이 계신 반면, 본인의 화를 아이들에게 푸는 선생님도 있었다. 아이들도 다 구분할 줄 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그런 분위기쯤 더 잘 알 거다. 기분 좋게 방학 보내면서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좀 쉬다가 오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본인이 일이 생겨 채우지 못한 시간을 다른 선생님이 와서 워크북 진도를 못 나갔다고 방학식 날 수학을 두 시간씩 넣어 워크북으로 진도를 빼다니. 게다가 한 아이를 지목해 책상에 얼룩을 지우고 지워도 계속 다른 곳을 지적하며 닦으라고 했다는 건 화풀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영문도 모르고 닦으라는 대로 닦다가 억울해서 울었던 모양이다. 그런 친구를 옆에서 위로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좋은 걸 보고 좋은 생각을 하고 그런 에너지를 모아 살아가는데 써도 모자랄 시간에 한 학기 내내 우울감과 억압감으로 가득한 선생님과 생활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갑갑해 온다.

쓰레기통을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물로 닦아 오라는 것, 식판에 담을 음식을 실수로 엎은 아이에게 더 이상 없으니 먹지 말라는 것, 수업 진도 따라오는 것이 힘든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워크북을 다 풀 때까지 다른 친구들은 수업 내내 기다려야 하는 것, 체험 학습을 하고 온 친구들은 아침에 워크북을 빠진 만큼 풀어야 한다는 것. 어디에도 그 시절을 추억할 작은 틈이 없다. 나이도 많지 않은 선생님이 어쩌다가 그렇게 꽉 막혀 버렸을까. 아이를 혼낼 때마다 녹음기를 목에 걸고 버튼을 누른다는데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조금 끔찍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그걸 다 보며 자랄 선생님은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스트레스 치유가 필요한 사회

학교뿐 아니라 도서관이나 다른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상담도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건 필수적으로 자주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있는 모든 이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요즘 교권의 하락에 대해 말이 많은데 교권이란 말도 나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곳 아닌가. 가정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배우는 곳이니 엄권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어쨌든, 스트레스가 있다면 그걸 알아채고 빨리 치유를 해서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조치가 있어야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도 사람이지만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5학년 때는 그렇게나 진보적인 선생님을 만나더니 어찌하야 6학년 그 중요한 시기에 어려운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일까. 중학교 가서 적응 잘 하라고 미리 주어진 숙제 같은 것일까.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나로선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다독이는 수밖에 없다. 세상엔 별별 사람이 많으니 이제부터 인생 연습한다고 생각하라고.

어찌 되었든 한 학기 내내 융통성이 부족하고 우울감 가득한 선생님과 별로 흥미롭지 못한 수업을 한 아이가 이제는 좀 널브러져서 과자 봉다리 옆에 끼고 책이나 실컷 읽으면 좋겠다. 내준 과제들이 많다며 간밤엔 그걸 다 해놓고 자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벌써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싫은 것도 참고할 줄 알아야 그 안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거니까. 반 학기가 더 남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걸 찾으라고 자꾸 얘기해 준다. 그게 삶의 자세가 될 거라고.

새벽에 일찍 깨우라고 했는데 오래간만에 늦잠 좀 자라고 내버려두는 아침.

다 같이 숨 쉬면서 살자.

 

*글쓴이 김상래 

융합예술 연구센터 <아틀리에 드 까뮤> 대표, 인문·예술 커뮤니티 <살롱 드 까뮤>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상상예술관> 칼럼니스트로 미술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으로 미술 에세이를 쓰며 블로그 <까뮤의 그림 배달>을 통해 그림을 나누고 있다.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및 여러 기관에서 유아부터 시니어까지 문화·예술 관련 지식을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여러 권의 미술 서적을 집필 중이며,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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