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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우리의 레전드, 우리의 자존심

FC서울 레전드 잔혹사

2025.06.27 | 조회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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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제로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의 레터를 써보려고 합니다. 아마 읽기에 따라 아 뭐 저정도로 말을 하나...ㅎㅎ 싶으실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말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저 말고도 많은 FC서울 지지자 분들께서 지난 화요일 오후부터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하고 계실 것 같아요. 당장 저도 화요일 저녁부터 한참 울다가 눈물이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정말 너무 빠른 시간에, 그리고 또 그만큼 당황스러울 정도로 진행된 이번 '기성용 사가'는 여러 의미로 FC서울 구단 역사에 있어 최악의 오점을 '또' 한번 남겼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거나 이번 94번째 레터는 '기성용 사가'를 주제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처음이 아닌 '기성용 사가'

기성용 사가는 처음이 아닙니다. 2020년 K리그 복귀 1차 시도 시에도 꽤나 떠들석한 뉴스였죠. 기성용 선수는 FC서울에서 데뷔 후 해외진출을 한 뒤에도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종종 FC서울에 대한 언급을 하며 '친정팀'을 향한 애정을 보였던 바가 있고 '친정팀'으로의 복귀를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기성용은 “나이를 먹고 K리그에 와서 은퇴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젊고 퍼포먼스에 자신 있을 때 팬들에게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스무살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른 모습이니까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줄 알았다. 다른 옵션도 있었지만 K리그로 돌아가는 것 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출처 골닷컴

하지만 현실은 조금 많이 달랐죠. 1차 기성용 사가 당시 FC서울 프런트와 협상에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기성용 선수는 K리그 복귀가 아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로 떠나게 됩니다. 당시 인터뷰 기사를 보면 어째 이번 이적 사가와 비슷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데요, 바로 기성용 선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 '선수로서의 가치 인정'이죠.

12월부터 서울에서 얘기를 했다. 최종적으로 코칭스태프와 상의한 뒤 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전북이라는 좋은 팀에서 내 가치를 인정해줬고, 그래서 위약금을 내지 않고 전북을 보내달라고 한 뉴스도 있었지만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서울이 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북행이라는 K리그에서 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위해 위약금 문제를 서울과 해결하려고 했다. 드러눕거나, 떼쓰지 않았다. 계약서는 계약서니까 존중해서 잘 해결하려 했다. 그조차도 서울에서 허락하지 않았다.……대표팀에서 은퇴하고, 뉴캐슬에서 3~4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해서 서울은 그에 대한 의구심도 있어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팀과 협상을 해 보고 여러 감독님을 만나 봤는데 이 팀이 나를 정말 원한다는 걸 느껴야 하는데 (서울에서) 그걸 못 느꼈다.

출처 골닷컴

누군가는 영리한 언론플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직하게 그대로 해석하자면 결국 늘 니즈하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선수로서의 가치요. 이렇게 스페인으로 떠난 기성용 선수였지만 정말 극적으로, 극적으로 프런트와 다시금 협상을 통해 K리그, FC서울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FC서울에 대한 애정을 어필하며 K리그로 복귀한 기성용 선수의 복귀 기자회견에서 팬들은 대부분 '여기서 은퇴하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도 했어요. 데뷔한 친정팀으로 돌아온 스타 선수가 친정팀에서 은퇴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그림이 또 있을까요. 그 아름다운 낭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믿었죠.

 

#'필요'로 이뤄진 재계약, '불필요'로 이뤄진 아웃

사실 제가 제일 열받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데요. 앞서 계속 언급한 것처럼 결국 기성용 선수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팀에 자신이 도움이 되는지,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필요에 본인이 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선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은퇴할, 본인에 대한 기준치 또한 높은 선수였다 생각하고요.

2023년 김진규 감독대행 체제가 끝난 뒤 그 해 FA컵 우승을 이뤄냈던 포항 김기동 감독의 서울 이적설이 나왔고 정말로 김기동 감독은 서울 감독으로 취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취임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은 '기성용의 필요성'이었어요. 그 때는 인터뷰를 보면서 그렇지 아직 기성용이 필요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곱씹어보니 과연 취임 인터뷰에서 '진심'이었던 말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만 생기네요.

김기동 감독은 기성용에게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강력하게 잔류를 원했다. "(기)성용이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서울과 빨리 재계약했으면 좋겠다. 서울이 곧 기성용이고 기성용이 서울이다. '함께 좋은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성용이도 서울에 애정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좋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출처 머니투데이

표면적이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김기동 감독도기성용 선수의 재계약을 원했고, 팬들도 재계약을 간절히 원했죠. 기성용 선수는 오랜 고민 끝에 재계약을 결정하게 됩니다. 재계약 논의 당시 이적이 문제가 아닌 은퇴를 고민하던 선수였던지라 굉장히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필드 위에서 더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아직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당장 서울로 돌아오지 못한 이청용 선수의 경우 울산현대로 간 뒤 관리를 받으며 경기를 충분히 소화하고 있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필드 위에서 보고 싶다'라는 소원을 정말 거짓말 좀 보태서 매일 정화수 떠놓고 기도했던 수준이었어요. 재계약 확정 소식이 나온 날에는 정말 기뻤고요.

함께 좋은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던 김기동 감독은 '정말' 기성용 선수가 필요했던 것인지, 기성용 선수를 선발로 기용해 풀타임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24년 시즌 초기 직관을 가면서 아.. 좀 교체로 뛰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자주하기도 했는데 좋게 생각하면 그만큼 팀에 필요하고 중요한 자원이라는 뜻이니까. 하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초반이 다 끝나기도 전, 여름을 앞두고 기성용 선수는 부상을 입고 경기에 복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다시 경기에 복귀한 것은 10월 말, 시즌이 끝나갈 무렵이었죠.

서울 사령탑은 기성용의 복귀를 반겼다. 김기동 감독은 "기성용의 존재감은 수원FC전에서 잘 드러났다. 우리가 1-0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많이 밀리던 상황에서 기성용이 들어가니까 팀에 무게감이 더해졌다. 또 동료들에게도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고 기뻐했다.

출처 뉴스1

이때도 역시나 김기동 감독은 '기성용의 복귀를 반기며' 베테랑으로써 기성용이 필드 위에서 영향력을 펼쳐주길 원했습니다. 팬들 또한 기성용 선수의 경기 복귀에 기뻐했고요. 2020년 서울에 복귀한 뒤 하위 스플릿, 강등권 위기, 감독 사퇴 등 여러 고초를 겪었던 기성용 선수가 김기동 체제 하에서 상위 스플릿을 즐기고 ACL 진출까지 이뤄내보자고, 우승도 한번 도전해보자고. 모든 팬들은 '서울의 낭만' 기성용 선수가 '행복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게 되면서 저는 정말 제가 가장 염원하던 기성용 선수의 행복축구가 마침내 이뤄질 날이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대 속에 시작된 2025 시즌, 분명 꽃밭일거라 생각했죠. 행복할거라 생각했습니다. 좋은 성적 속에서 우승 경쟁을 하며 다른 팀과 승점을 다투고, '강팀' 서울로서의 정체성이 다시 회복됐으면 했어요. 하지만 현실은?ㅋ

이 모든 일이 발생하기 전, 뜬금없는 기성용 선수와 감독의 불화 루머가 나왔습니다. 설마ㅋㅋ 하며 팬들은 루머를 정말 루머 정도로 여겼어요. 김기동 감독은 꾸준히 기성용 선수에 대한 필요성을 어필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얼마 후 기성용 선수가 구단 공계와 부주장인 김진수 선수를 언팔로우했다는 커뮤니티의 글이 작성되었죠. '팔로우가 무슨 의미가 있냐'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성용 선수를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제 입장에서는 그동안 SNS를 통해 벌어진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X됐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더니만. 끝내 구단 SNS에는 하나의 입장문이 올라옵니다. 몇 년 전 또 다른 레전드를 보낼 때와 아~주 유사한 입장문 하나가요.

출처 FC서울 SNS
출처 FC서울 SNS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박주영 선수를 보낼 때와 유사한 입장문이 또 다시 등장을 합니다. '잠시 이별', '은퇴식을 함께 하기로', '모든 예우를 다하고'. 지켜지지 못할 말들로 가득한 입장문은 결국 참다 못한 팬들의 분노를 터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구단 입장문이 업로드되고 얼마 후, 기성용 선수의 SNS에서도 입장문이 업로드됩니다.

기성용 선수의 입장문에서 가장 가슴 먹먹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FC서울은 제 고향입니다. 제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저만큼 이 팀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만큼 이 팀에 집착했고 이 곳에서 마지막을 불태우고 싶었고 참 사랑했습니다. 지금껏 함께했던 동료들과 FC서울 팬들이 제 인생엔 잊을 수 없을만큼 소중했고 또 소중합니다." 대체 팀을 이렇게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이, 이 팀에서 뛰기를 그 누구보다 즐거워했고 팬들을 좋아하던 사람이 왜 팀을 떠나야하는 과정까지 몰리게 되었을까 싶었어요. 결국 몰리게 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김기동 감독이 기성용 선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

 

#필요 없는거 맞아요? 싫은거 아니고?

그렇다면 여기서 팀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즌 시작 전 '우승후보'로 여겨졌던 서울은 최악의 골 결정력과 풀리지 않는 중원을 보여주며 강등권과 한 끗 차이의 승점에 승리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고, 기업 구단 상대로 이기지 못하는 시즌이라는 치욕과 함께 3월 대구전 이후 홈 경기 무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기성용 선수가 정말 나와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시즌이라면 이번 사태에 대해 정말 이해라도 했겠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플랜에 없다'라는 이유로 이적이 이뤄지는 것은 정말 정상적인 과정일까요? 구단과 감독은 정말 '플랜에 없다'라는 말만 한다면 기성용 선수가 남은 6개월의 계약 기간을 참고 있다가 조용히 은퇴할거라 생각했을까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플랜에 없다'라는 것 외에 기성용 선수를 향한 부당 행위가 없었던지도 의문이죠. FC서울 최대 팬 커뮤니티인 '서울라이트'에 서울 선수와 팬 간의 카톡이 유출되었다는 글이 작성된 바가 있어요. 해당 유출 카톡에서 기성용 선수는 훈련 시간을 알지 못해 선수 단체 채팅방에 훈련 시간을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몇몇 분이 느끼시기엔 뭐 훈련 시간 모를 수도 있는거 아니냐? 하실 수 있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FC서울 선수단 중 최고참 선수입니다. FC서울 구단 내에서의 이력을 제외하더라도 '축구선수' 기성용으로서의 경력도 최고참이고요. 게다가 훈련 시간은 모든 선수가 알고 있어야 맞춰서 준비를 하고, 참여가 가능하겠죠. 그런데 이런 훈련시간조차 제대로 고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도통 이해를 할래야 할 수 가 없었어요. 포항 이적 사가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후 엠바고라도 풀린 것처럼 슬금슬금 풀린 축구 기자들의 소위 '썰'에서도 과연 기성용 선수가 그동안 선수로서 대우를 받기는 했는지나 싶었는 의문이 들었죠. 의도적이라 볼 수 있는 감독의 선수 패싱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싶기도 하고요. 부임 초기 기성용을 애타게 찾던 김기동 감독의 모든 멘트에 과연 진심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기성용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고 생각해요. 팬들이 참을 수 있는 한계선에 있는 선수요. 그동안 수많은 레전드를 어이없이 떠나보냈습니다. 2020년에 들어서는 박주영 선수부터 오스마르, 고요한 선수까지. 고요한 선수를 제외하면 은퇴식조차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내야만 했어요. 대체 프런트가 생각하는 축구는 뭘까요? 레전드는 뭘까요? 재개발을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철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지만, 재개발을 할 수 있는 뼈대는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김기동 감독 부임 후 이미 오스마르와 고요한을 보낸 바가 있는 이 상황에서 FC서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게 하는 김기동 감독의 이번 결정에 대해 뭐 얼마나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해주어야 할까요.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인데요.

성적이요? 중요합니다. 축구에서 성적만큼 중요한게 또 있을까요. 모든 팬들이 2부는 안된다, 라고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어요. 성적, 중요합니다. 많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축구가 아름다운 스포츠인 이유는 '모든 이야기가 쌓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우승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메시의 월드컵 우승과 손흥민의 유로파 우승처럼요. 그렇다면 우리는 있는 이야기도 다 팔아치워버린 상황에서 우승을 한다고 한들 이전과 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함께 우승에 대한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상대가 없이 우승을 한다면, 그게 정말 기쁜 우승일까요. 우승 수당 받을 사람들만 기쁜 우승은 아닐런지요.

우승이 정말 하고 싶으면 작년에 우승했던 구단 선수들을 통째로 데려와 FC서울의 옷만 입히고 우승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게 과연 FC서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FC서울의 우승이 아니라 타 구단의 우승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그냥 이름만 바꿔치운. 지금 FC서울의 행태가 이거와 별반 다를게 있나 싶습니다. 게다가 기성용 선수 외의 선수들도 이적이나 아웃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구단에는 누가 남아 팬들과 진심으로 기쁨을 나눌까요? 팬들이 그 누구보다 우승컵을 안겨다 주고 싶었던 선수가 이적을 했는데 과연 누가, 누구와 기쁨을 나눠야 하나요.

아니 애초에, 프런트와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요? 이번에도 팬들이 그러려니, 하고 크게 반발 없이 참고 넘어갈거라 생각했을까요?

 

#개별지지자도 수호신입니다

출처 스포츠니어스
출처 스포츠니어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해서 선수를 이렇게까지 내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위대한 선수는 없지만 팀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선수를 우리는 보통 레전드라고 부릅니다. 그게 레전드라는 호칭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고요.

기성용 선수의 이적이 불거진 후 팬들, 그러니까 FC서울의 개별지지자들은 GS본사에 트럭시위와 근조화환을 보냈어요. 이 외에도 훈련장인 챔피언스파크와 상암 프런트 사무실에도 근조화환을 보냈죠. 기성용'까지도' 그렇게 보내야 하는 사태에 대한 분노였고, 팬들의 의견 표출이었습니다. 특히 챔피언스파크 앞은 근조화환이 가장 많이 도착해 줄지어 서있을 정도였습니다. 팬들은 감독이, 구단이, 선수들이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이게 웬걸. 구단과 기성용 선수의 마지막 인사가 있던 날, 여은주 사장의 방문에 맞춰 주차장 구석에 처박히기까지 했던 근조화환은 사장이 다시 떠나고 나서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어제를 기점으로 화환은 전부 치워졌고요.

도대체 구단은 팬들을 뭐라고 생각하는걸까, 싶은 와중에 이 모든 일을 진행한 것은 수호신 '연대'가 아니라 수호신 '개별지지자'라는 점입니다. 수호신 연대는 별다른 성명 없이 이번 일에서 침묵을 택했고, 구단의 입장문이 업로드되고 이후에야 수호신 연대 차원의 입장문이 나왔으나 개인적으로는 '허울 뿐이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밖에 없었어요.

수호신 성명서에 대한 답변이 없고, 구단과 간담회 또한 불발되었다며 응원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이미 모든 일은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외양간의 소는 가출하다못해 그냥 외양간이 없어졌고, 물은 엎질러진 정도가 아니라 홍수마냥 쓸어내린 뒤였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이미 수호신 연대 간부들과 감독의 대면이 몇 차례 이뤄진 뒤였고 '밥을 얻어먹었다'라는 것까지 더해 이런 의견이 도출되기까지 했죠. 감독이 산 밥에 넘어갔다.

물론 진짜 넘어갔는지, 정말 김기동 감독의 말에 넘어갔는지는 제가 단언할 수 없겠죠. 저는 당사자가 아니고 일개 개별지지자에 불과할 따름이니까요. 하지만 감독과의 식사자리가 마련되고 거기에 참여한 순간부터 이런 논란의 프레임은 어느정도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쉽사리 나오지 않는 감독 비판과 이번 일에 있어서도 '감독과 구단의 의견만' 듣고 작성된 것 같은 입장문 등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용 선수의 이적에는 납득할 이유가 있었다는 점은 과연 기성용 선수와도 얘기가 된 일이었을까 싶고요. 연대일수록 이번 일에는 더욱 중립적으로 양측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특히 감독과 친분이 유독 두터워보였던 요즘에는 더욱이요.

하지만 연대가 선택한 것은 비판이 아닌 침묵이었고, 개별지지자들의 의견이 구단으로 전달될 방법은 정말 '개별 행동'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호신이라는 단체가 과연 FC서울의 서포터즈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일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무엇보다 바로 직전 감독이었던 안익수 감독과 김기동 감독의 일을 비교했을 때 안익수 감독 당시에는 쉬이 터져나온 '버막'과 '아웃콜'이 김기동 감독 체제 하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의문 중 하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엮인 이번 상황에서 보여준 수호신 연대의 행동은 그저 불 난 집에 기름 붓기, 딱 이정도였습니다. 최악의 선택만 거듭해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봐요.

만약 수호신 연대, 회장단이 이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그 사실을 구단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아니면 기성용 선수의 존재감을 생각해서 만약 선수단에서 배제된다면 그에 따라올 팬들의 파장에 대해 충분히 어필을 했어야 했어요. 개별지지자가 감독과 단독으로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일에 대표성을 가지고 팬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수호신 '회장단'이고요. 하지만 정작 현실은, 정말 의인같은 누군가가 '기성용이 구단을 언팔했다'라는 커뮤니티 글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겠죠.

단순히 응원 보이콧, 간담회, 성명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축구계 전체를 봐도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기성용 선수였고 FC서울 선수단 내에서도 많은 영향력이 있던 기성용 선수였어요. 게다가 '기성용 선수의 아웃은 납득가는 사유다'라는 말과 달리 선수단과의 불화가 과연 진짜였나 싶어졌고, 오히려 감독 개인과의 불화가 아니었을까 싶은 상황까지 왔습니다. 기성용 선수의 입장문에 남겨진 많은 선수단의 댓글들이 증거라고 봐요. 정말 감독의 말만 듣고 기성용 선수의 아웃에 대해 납득했다면, 이게 정말 간단한 일일까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김기동 감독의 취임 후 있었던 모든 커넥션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일인거 같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호신 연대, 회장단은 침묵으로 이어가고 있고 트럭과 근조화환을 이용한 시위는 개별지지자들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임이라는 말은 정말 무거운 단어지만 구단과 감독, 서포터즈 대표단 등 셋 모두 입장문과 해명, 그리고 책임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서포터즈의 침묵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요.

 

#지'키'지 못한 마지막 레전드

출처 일간스포츠
출처 일간스포츠

기성용 선수는 FC서울의 '마지막' 레전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던 FC서울 출신의 축구스타와 FC서울의 레전드는 다 어이없는 이유로 은퇴를 하거나 팀을 떠났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게 기성용 선수였습니다.

FC서울이지 FC기성용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동의합니다. FC서울은 FC서울이지 FC기성용이 아니죠. 하지만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봤을 때 FC서울을 먼저 알까요, 아니면 기성용이 뛰는 팀을 먼저 알까요? FC서울이란 정체성에 있어서 기성용 선수라는 존재감이, 그 가치가 이렇게 쉽게 보낼 정도 밖에 안 됐을까요?

한국 축구는 점점 'K리그 레전드'가 나오기 힘든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아쉬운 기성용 선수의 이적일 수 밖에 없어요. K리그를 포함해 해외 진출 후에도, 국가대표에서도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고 한국 축구에 있어 모두가 아는 '축구 스타'였던 기성용 선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선수가 과연 FC서울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이전의 레전드 선수들을 포함해 '기성용까지' 이런 식으로 나가야만 하는 구단에 대해 누가 애정을 갖고, 믿고 돌아올 수 있을까요?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FC서울 구단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운영을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낭만을 가진 레전드를 전부 내치고 이런 식으로 구단 운영을 한다면 과연 어느 팬이 반기고 좋아할까요. 성적이 안 좋을 때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구단의 굿즈를 사고 직관을 가던 팬들은 '親감독'인 팬들만 팬일까요? 구단과 감독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팬은 수호신이 아닌 안티인가요? 구단이 생각하는 팬은 어떤 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어도, 레전드를 찬밥마냥 대우해도 가만히 있는 '말 잘 듣는' 팬들만 팬이라고 생각하는건지 정말 모르겠네요.

FC서울 구단이 이번 일로 얻은 것은 전부 마이너스 밖에 없어요. 전직 국가대표 주장이라는 타이틀과 스타성을 가진 구단의 레전드를, 구단을 향한 끝없는 짝사랑을 보여준 선수를 찬밥 취급하며 놓아준 작금의 사태는 '기성용 보유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포기한 꼴이니까요. 당장 일반인들에게 'FC서울 경기보러 갈래?' 라는 말과 '기성용 뛰는거 보러 갈래?'라는 말은 무게 자체가 다른데 말이죠. 스타선수가 없는 구단은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레전드가 없으면 구단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낭만 때문이 아니라 '돈'만 봐도 그렇습니다.

물론 새로운 스타선수를 '영입'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K리그에서 데뷔해 친정팀에 대한 애정을 보이며 K리그 복귀 때 친정팀을 먼저 생각한 스타선수가 또 있을까요. 여러 의미에서 기성용은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레전드였어요. 하지만 정말 어이없는 과정으로 인해 지키지 못했고, 떠나게 됐습니다. FC서울에는 이제 누가 남게 될까요. 아니, 애초에 시즌 말미에 어떤 성적으로 남게 될지 궁금합니다. 감독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상처 받고 떠난 선수가 돌아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으니까요.

 

 


 

 

이번 레터를 쓰면서 조금 걱정한 부분은 제가 FC서울을 좋아하게 된게 얼마 안 됐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올드 팬들에 비해 적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잘 안다'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면이 확실히 있다 생각했어요.

제가 FC서울을 좋아하게 된 경위는 단순해요. 처음에는 궁금했습니다. 기성용 선수 개인을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입장에서 도대체 FC서울이 어떤 팀이고 수호신이 어떤 서포터즈기에 저렇게 좋아할 수 있지? 했어요. 필드 위에서 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 팬들에게도 진심인 모습을 보여줬고, 그리고 그 팬들의 응원을 받고 필드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뛰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궁금했습니다. 어떤 팬들이기에 저러나, 싶어서.

그렇기 때문에 제가 직관을 다니며 느낀 수호신은 정말 멋진 서포터즈라고 생각했어요.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 싶었고 장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응원은 정말 슬로건 그대로 '그대가 가는 길 우리가 지켜주리라'는 것을 지키는 것 같았어요. 응원을 통해 선수들을 지키는 FC서울의 수호신은 정말 '수호신'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대가 가는 길'에 과연 기성용 선수가 포함되었을까, 싶어져요. 물론 서포터즈 단체가 기성용의 개인 팬클럽은 아니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대'라는 FC서울에, FC서울의 선수단에 기성용 선수가 포함되어야 했고 그렇기 위해서는 기성용 선수를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하지 않았을까요? 많은 개별지지자들이 행동할 시간에 수호신 단체의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요.

FC서울이 좋았던 이유는 온전히 수호신 때문이었어요. 지금도 수호신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빠르게 움직이며 '우리가 지켜주리라'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고요한 선수의 은퇴식 때 엉엉 울었던게 생각나요. 올드 팬들에 비해 고요한 선수와 쌓은 추억은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요한 선수가 그동안 FC서울에서 보낸 시간과 공로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스갯소리로 은퇴식을 보면서 친구에게 "기성용 은퇴식 때는 어떡하지?" 하며 설레발을 칠 정도였는데. 또 다시 어이없이 반복되는 레전드 잔혹사에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엎지른 물을 다시 원상복원 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쏟아진 물을 닦아낼 기회는 아직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요일에 있는 포항전에서 개별지지자 팬들은 별도의 응원 구역에 모여 구단에 대한 항의 응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E-S구역(꼭대기) 쪽에서 진행되는 별도의 응원에 대한 글은 FC서울 팬커뮤니티 '서울라이트'에서 상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주 일요일, 다가오는 포항전. 많은 분들의 '응원'이 꼭 감독에게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94번째 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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