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영화적 스토리텔링

셋업과 펀치라인을 넘어

2025.04.22 |
세로의 편지 의 프로필 이미지

세로의 편지

스토리텔러를 위한 미디어 인사이트

1. 30년 전 영화와 지금의 영화

얼마 전 중학교에 강의를 나갔습니다.

영상 동아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준비하다보니,

30년 전 저의 중학교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30년 전 중학생이었던 저는 학교를 땡땡이 치고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멀티플렉스도 없던 시절이라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종로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티켓 값이 없는 거예요.

다행히 뒤에 서 있던 대학생 언니가 티켓을 사주었어요.

어쩌면 그 언니 덕분에 영화 제작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전 중학생인 저에게 전부였던 영화가,

지금의 중학생들에게는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관객들은 OTT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하고,

숏폼 영상을 OTT보다 7배는 더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영화 제작자인 저는 극장 영화가 아닌

뉴미디어 시대에 맞는 영화를 생각할 때, 

'영화'의 본질에서 그럼 무엇이 남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29초 영화제] 연화 중학교 강의 현장 
[29초 영화제] 연화 중학교 강의 현장 
95년도 <중경삼림> 포스터
95년도 <중경삼림> 포스터

 

2. 셋업과 펀치라인을 넘어서

해나 개즈비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아시나요?

넷플릭스에는 '나의 이야기'라는 그녀의 스탠드업 코미디가 있어요.

여기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해나 개즈비
해나 개즈비

  저는 이제 코미디를 그만하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코미디에는 셋업과 펀치라인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코미디와 달리 이야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해요. 서론, 본론, 결론요. 저는 제 트라우마를 코미디의 소재로 쓰면서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코미디는 제 트라우마를 치유해주지 못했습니다. 펀치 라인엔 긴장(텐션)이 필요하고, 긴장(텐션)은 트라우마로부터 나옵니다. 당신이 “이야기”에 집중하면, 거기로부터 배우는 게 생깁니다.”  

넷플릭스 2018,  '나의 이야기' 해나 개즈비

숏폼의 이야기 구조는 해나가 얘기하는 '코미디'와 비슷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셋업이 있고, 펀치라인(반전)이 있죠.

이러한 단순한 구조는 즉각적인 재미를 주지만

깊이 있는 이해와 치유는 제공하지 못합니다. 

두 가지 구조로는 이해 시키고, 이해를 바탕으로 바뀌고 성장하는 일은 불가능해요.

이야기, '내러티브'의 어원은 'gnarus(알다)'와 'narro(말하다)'의 합성어입니다.

내러티브는 단순히 사건의 연속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이고, 힘입니다. 

 

여러분이 37,000년 전 호주 초원 지대의 원주민이라고 잠시 상상해보라. 조상 때부터 사냥터였던 땅에 갑자기 화산대가 형성되고 곧 불과 용암을 내뿜기 시작한다. 불과 몇 달 만에 원주민의 고향은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수많은 동족이 목숨을 잃는다. 이제 여러분은 세상이 예측할 수 없고 가끔은 끔찍한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고 이치에 맞지도 않으며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 죽을 때까지 이런 일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든지 둘 중 하나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3.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 

영화는 20세기에 등장한 이래 가장 강력한 이야기 전달 매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몰입시키는 영화는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디지털 혁명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습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영화는

더 이상 유일한 영상 스토리텔링 매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소비하며,

2시간짜리 영화보다 짧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숏폼 콘텐츠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미디어 시대에 이야기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숏폼 콘텐츠는 단순한 셋업과 펀치라인 구조로

즉각적인 주목을 끌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영화인의 스토리텔링 기술은 플랫폼이 변해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합니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세상을 이해 시키고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것은

결국 '기,승,전,결'을 가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야기라는 본질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기술과 형식을 익히는 것입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창작자들은

이제 플랫폼의 경계를 넘어,

각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도 인간 경험의 깊이를 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세로의 편지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세로의 편지

스토리텔러를 위한 미디어 인사이트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