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 받는 영화 VS 돈 버는 영화
얼마 전 저는 '필름메이크어스'라는 유튜브 채널의 '창작자 초대석' 인터뷰에서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영화제에서 상 받고 돈 못 버는 영화와 돈 벌고 상 못 받는 영화 중에 선택한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인터뷰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에 비해 사실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어요. 단언컨대, 모든 상업 영화 제작자는 후자입니다.
상업 영화 제작자는 영화로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간혹 감독과 제작자를 혼동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이 다릅니다.
영화 감독은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담은 작품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영화 제작자는 그 작품으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업 영화는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하고, 제작자는 이를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사람입니다. 제작자는 투자자들에게 이 영화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합니다.
물론, 관객을 만족 시켜야 흥행을 하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 상업 영화 투자 자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저의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영화 제작자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저는 투자 유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창작자들이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작비라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골몰하다 온라인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2. 플랫폼을 바꾸다
극장 영화의 수익 구조는 상당히 명확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통해 전국 영화관의 관객 수가 정확하게 집계되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이 분배됩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제작사에게 투자 지분을 제외한 수익 지분이 할당되는 구조죠. 부가 판권 유통도 극장 관객 수 흥행의 일정 비율(약 30%)을 따라가는 편입니다.
오프라인 기반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리스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영화 시장의 대안이 되었거든요. 그러나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는 것은 줄어든 영화 투자 시장에서 투자를 받는 것이나 다를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이라는 뼈대만 가지고, 유통 채널을 유튜브로 바꾸어 콘텐츠를 올리고, 숏폼 형식도 차용해 세로 화면으로 인스타 릴스와 숏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콘텐츠로 돈을 버는 방식은 극장 영화와 어떻게 다를까요?
유튜브에서는 조회수에 따른 수익이 배분 됩니다. 이 점은 극장 영화가 관객 수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와 유사하죠. 그러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유튜브 조회수 수익 만으로는 제작비를 회수하고 추가 수익을 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콘텐츠 창작자들은 두 가지 전략을 취합니다.
1) 제작비를 낮추거나
2) 다른 수익원을 찾는 것이죠.
드라마와 유사한 퀄리티를 추구했던 웹드라마 붐이 사그라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작비를 낮추지 못했고,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거든요.
제가 힌트를 얻은 콘텐츠는 '스케치 코미디' 었습니다. 코미디언들은 기획과 연출, 연기까지 모두 가능했고, 과거 공중파 코미디쇼처럼 캐릭터를 구축해 지속적인 제작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 트래픽을 확보한 후에는 후원 광고를 받거나 멤버십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죠.
처음부터 먹방을 컨셉으로 한 스케치 코미디 기획물로, 각종 음식점 PPL로 초과 수익을 내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의 수익 모델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작년에 유튜브 쇼핑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고, 다양한 형태의 크리에이터 수익화 방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3. 저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수익화. 그런데...
저는 시네마세로 채널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첫경험'을 통해 최고 조회수 30만, 구독자 수 1,600명을 확보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두 번째 프로젝트 '폴란드 여자, 한국 남자'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애초 폴란드 프로젝트를 선택한 이유도 전략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폴란드와 한국의 양국 관계 발전에 관심이 있는 후원자들로부터 제작비를 지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아직 채널이 후원 광고를 받을 만한 규모가 되지 않아 몇 명 후원자들에게 제안했던 제작비 후원 제안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제작비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적인 미장센보다는 유튜브 콘텐츠에 가까운, 날것 그대로의 톤앤매너를 선택했습니다. '폴란드 여자, 한국 남자'의 내용이 폴란드 영화에 캐스팅된 남자 배우가 폴란드 여자 프로듀서와 화상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므로, 실제 화상 채팅 녹화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이렇게 제작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4. 개방성은 배타성을 이긴다
혹시, 넷플릭스 CEO 테드 사란도스가 한 최근 인터뷰를 아시나요?
팬데믹 이후 거의 모든 오프라인 라이브 활동은 팬데믹 이후보다 크게 성장했는데 극장 사업만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극장이 이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을 전망했습니다.
도대체 극장이 이토록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온라인의 개방성 때문입니다.
개방성은 배타성을 항상 이깁니다.
영화는 이제껏 소수의 특권층 창작자들에게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거대한 자금으로 만들어져 왔습니다. 관객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극장에서 관객은 조용히 해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며, 핸드폰 사용도 금지됩니다.
관객은 단지 돈을 내고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존재로 머뭅니다.
반면, 뉴미디어는 어떨까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창작자들은 팔로워들의 동료이자 커뮤니티의 일부입니다. 댓글로 실시간 반응을 확인할 수 있고, 그 반응에 따라 다음 콘텐츠의 방향성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팔로워 수가 적더라도 같은 생태계 안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죠. 이 참여가 중독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유통 시키는 것을 계속 시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구독자님, 다음 사항들을 기억해 주세요.
첫째, 플랫폼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스토리텔링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과 형식이 변화할 뿐입니다. 제작비나 촬영 장비의 제약에 매이기보다는, 이야기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둘째, 관객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세요.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관객과 소통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수용하는 것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성공하는 열쇠입니다.
셋째,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세요.
광고 수익이나 판권 판매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멤버십, 후원, 머천다이징 등 다양한 수익원을 모색하고 이를 고려한 콘텐츠 기획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 작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대규모 제작이 아니더라도, 작은 규모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전략도 유효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과 팬층의 확보입니다.
다섯째, 이 모든 것을 세로와 함께하세요.
제가 앞서서 모든 시행 착오를 먼저 겪고 있고, 함께하면 힘이 되니까요 :)
요즘 많은 분들이 창작물의 유통과 브랜딩에 대한 고민을 전해주시는데, 일일이 답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좀 더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시스템을 통해 멋진 해결책을 제시 드리고 싶은 마음에 자꾸 늦어지네요.
뉴미디어를 통해 창작물을 유통하는 것에 있어 여러분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답장을 통해 고민을 나누어주시면 세로의 향후 계획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결국 콘텐츠의 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습니다. 플랫폼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좋은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가치를 지닙니다.
세로는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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