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씨 좋은 가을날, 구독자님은 카페에 앉아 인스타그램 피드를 휙휙 넘기고 있습니다. 그 때 길을 잃은 외국인이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얼굴이네요. 구독자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잠깐의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고) 이렇게 물어보는 거겠죠. 어.. 두 유 스피크 잉글리쉬? 두 유 스피크 코리안?
그러면 이 장면을 상상해보죠. 구독자님은 똑같은 카페에서 컵 바닥에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쪼록 마시고 있습니다. 그 때 길을 잃은 아마존 원주민이 다가옵니다. 길을 잃어도 한참 잃은 걸로 보입니다. 두 유 스피크 잉글리쉬? 묻자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짓습니다. (오, 영어 울렁증, 유 투?) 이 원주민의 고향은 아주 오래동안 현대화된 문명의 손이 닿지 않은 곳입니다. 영어나 한국어 등 외부의 언어는 모르는 듯 해 보입니다. 이젠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마도 손짓, 발짓, 표정, 바디랭귀지를 총 동원해서 대화를 시도하겠죠. 오늘 마침 좀 한가하고 인내심도 좀 있다면 원주민의 단어를 몇개쯤 배우기를 시도할 지도 모릅니다. 나뭇가지, 물, 돌 같은 걸 가르키며 이건 뭔지 묻고 답하면서요.
그렇게 원주민을 보내고 오늘 참 신기한 하루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슬슬 일어나려는데, 소라게를 닮은 키 180짜리 외계인이 다가옵니다. 앞을 막아 서는 걸 보니 뭔가 할 말이 있어보입니다. 다리 여섯개짜리 소라게 외계인은 네번째 손에 번쩍이는 무언가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물체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총인지, 우리에게 반갑다는 의미로 건네는 선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외계인과는 어떻게 대화를 시도해야할까요? (도망치는 거 안됨!)
💬 시간의 바깥~🎶 아니고 언어의 바깥
언어가 다른 대상과의 대화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랜 시간을 거쳐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법을 발전시켜왔죠. 그렇지만 우리가 외계인과 조우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언어”, 내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언어의 개념 바깥으로 생각해야할지도 모릅니다. 하와이의 우주 연구소 HI-SEAS 연구소 소장 Kim Binsted 박사는 외계인과 소통을 할 때 “언어" 자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다양하고 우리에겐 매우 효율적인 도구이지만, 이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같은 뇌, 같은 감각,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죠. 우리는 인간이기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언어의 세계를 그려나갑니다. 실제로 고대언어 연구에서도 이 컨텍스트는 중요하게 쓰입니다. 무덤 앞에 쓰인 비문을 해석할 때 우리는 대충 그 내용이 망자를 기리고 망자의 과거를 기억하는 내용임은 알고 해석에 들어갈 수 있죠. (물론 그런 컨텍스트가 있어도 아직까지 해석 못하는 고대 언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서 가지게 되는 선입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을 때, 내지는 외계인과 마주치는 상황을 대비할 때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언어의 영역 바깥으로 생각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연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범지구적 시뮬레이션
지난 5월, 볼로냐의 우주 관측소에서 흥미로운 데이터 패킷 하나를 수신합니다. 총 길이 4.8기가바이트에 육박하는 숫자 리스트인데요, 이 데이터에 담긴 뜻을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단 세명 뿐입니다. 바로 Sign in Space 프로젝트의 기획자 Daniela de Paulis, Giacomo Miceli, Roy Smits 세 사람입니다.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연구소인 SETI와 함께하는 Sign in Space 프로젝트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언어가 우리에게 도착했을 때 우리가 이를 해석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인간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만든 메세지를 화성 위성을 통해서 지구로 수신했는데요,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과 프로그래머 등 전 세계의 사람들이 디스코드에서 매일 새로운 해석들을 내놓으며 메세지 해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메세지를 해독하지는 못했습니다!
위 이미지는 문제의 메세지의 데이터를 1차 처리 한 후의 이미지인데요, 구독자님은 무엇이 보이시나요? 점들은 어떤 뜻일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가짜) 외계 문명의 대략적인 위치일 것이다, 외계인들의 신체 분자구조일 것이다 등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혹시 무언가 알듯 말듯 하다면 Sign in Space의 홈페이지에서 해석에 참여해보세요!
우리가 실제로 이런 외계 메세지를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Sign in Space의 기획자들은 이런 우주 프로젝트들이 국가별로 극비로 진행되던 80년대와는 국제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며 아마도 우리가 이런 외계 메세지를 받는다면 Sign in Space 처럼 전 세계가 함께 머리를 모아 메세지 해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Sign in Space 프로젝트는 그 국제적인 해독 과정을 시뮬레이션 하는 데에도 이의가 있다고 전했고요. 저는 이 부분도 참 흥미로웠어요!
자 이렇게 야심차게 준비했던 [모두를 위한 우주] 3부작이 끝이 났습니다. 와아- 👏👏 이제 다음주 소재를 생각해야 하는데요... 혹시 듣고 싶은 과학 이야기, 누가 나 대신 공부해서 3줄요약 해 줄 수 없나? 생각하던 소재가 있으시다면 댓글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스몰노트 인스타그램에도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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