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에서 10월 9일, 올해의 노벨상 시상이 있었습니다. 노벨상은 매년 인류에게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죠, 생리/의학, 화학, 물리, 경제, 문학, 평화, 총 여섯 분야가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즌 즈음이면 항상 기초과학 투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죠. 어째서 한국에는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느냐 뭐 이런 내용의 이야기요. ㅎㅎ
재밌는 점은 노벨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청룡영화제, 오스카상처럼 하루에 전부 발표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분야씩 수상됩니다. 상을 받는 당사자도 발표날이 되어서야 알 수 있어서, 자다 깨서 노벨상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죠.
어쨌든 노벨상은 1년에 한번씩 인류가 그동안 이루어 온 과학적 발전에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아주 좋은 소재거리죠. 약속했던 세줄 요약, 바로 들어갑니다.
📸 노벨 물리학상: 전자님, 웃으세요~ 셋, 둘, 하나, 찰칵!
수상자: Pierre Agostini, Ferenc Krausz, Anne L’Huillier
벌새처럼 엄청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떠올려보세요. 우리 눈에는 날개가 흐릿한 잔상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셔터 스피드를 엄청 빠르게 해서 좋은 카메라로 찰칵 찍으면 벌새의 날개를 볼 수 있죠.
분자의 운동을 관찰하는 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전자가 무시무시하게 빠릅니다 . 전자의 움직임은 아토초라는 단위로 계산하는데요, 1아토초는 100경 분의 1초로 상상조차 하기 힘들만큼 빠른 시간의 단위입니다. (참고로 우주의 역사가 100경초정도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자의 운동을 관찰하려면 아주 빠르게 찰칵! 하는 펄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던 중 수상자 중 한명인 Anne L’Huillier 박사는 빛을 비활성기체에 쐈더니 기체 속의 전자와 빛의 파동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비활성 기체의 전자가 빛을 증폭시켜서 잠시 빛을 밝게 하는 현상이었죠. 비활성 기체 내의 전자의 파동과 빛의 파동이 서로를 증폭시킨 겁니다.
파동은 서로를 증폭시키기도 하고 상쇄하기도 하죠. 노이즈 캔슬링이 이런 원리를 이용합니다. 그러니 파동의 길이를 맞추면, 즉, 리듬을 잘 타면 파동의 최고점을 최대로 증폭시키고, 이외의 파동은 캔슬시켜 아주 짧은 시간동안 빛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즉, 펄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이죠. 그 이후, Pierre Agostini, Ferenc Krausz 박사님들은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이 펄스를 규칙적으로 발생시키는 법, 하나의 펄스를 분리해서 관찰하는 법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 분들의 연구로 우리는 전자의 운동을 관찰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죠.
🧬 노벨 생리학상: 코로나 19 백신의 주역
수상자: Katalin Karikó, Drew Weissman
전통적인 백신은 주로 바이러스의 표면의 모양을 흉내낸 세포나, 아니면 위험성이 낮은 운반체 바이러스를 몸에 주입하는 형태였습니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해야만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이 부분이 돈도 시간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실제 질병 감염의 위험도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1980년대에 mRNA에 대한 연구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mRNA, messenger RNA는 인체에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를 알려주는 설계도같은 역할을 하죠. 카리코 박사와 와이즈만 박사는 mRNA가 백신이나 치료에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죠. 순수한 mRNA는 몸에 들어가면 염증과 같은 면역 반응을 일으켰죠. 또 순수한 mRNA는 체내에서 변형이 일어나서 정확도도 떨어졌습니다.
카리코와 와이즈만 박사의 연구는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mRNA에 화학적 변형를 가했더니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이 발견을 토대로 지금의 코로나 mRNA 백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mRNA 를 이용한 백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백신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인 연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노벨 화학상: 무지개빛 양자 세계
수상자: Moungi G. Bawendi, Louis E. Brus, Alexei I. Ekimov
구독자님, 마블의 앤트맨 퀀텀매니아를 보셨나요? 물론 퀀텀 매니아 속에서 그리는 세상은 허구이지만, 퀀텀, 양자 크기의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규칙들이 깨지는 세상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양자세계에 대해서 많은 걸 알지 못했는데요, 양자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색유리, 스테인드 글라스입니다. 인간이 색 유리를 만든 역사는 오래됐죠. 화학 실험실에서도 색 유리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때때로는 색유리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런 색 유리를 만들 때는 기본적으로 다른 물질을 혼합해서 만듭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같은 물질을 섞어도 다른 온도에서 식히면 색이 다르게 나온다는 점이죠. 에키모브는 이 점이 화학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서 유리에 섞이는 입자의 크기에 따라 다른 색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죠. 그리고 동시대의 미국의 루이스 브루스도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실에서 용액에 담아둔 입자의 색이 변화하는 걸 발견하고는 입자가 용액 속에서 크기가 커져서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내죠.
그러면 이 발견은 왜 중요할까요? 물질의 특성에 분자의 크기도 더해지는 발견이라 그렇습니다. 두 물질, 예를 들어 금과 은을 화학적으로 구분하는 건 기본적으로 금이라는 물질의 전자의 개수죠.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입자의 크기가 큰 금과 작은 금에서도 특성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노벨상 협회는 이를 “주기율표에 세번째 차원이 더해진 격”이라고 설명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에키모브와 브루스의 연구를 통해서는 특정한 사이즈의 입자를 만드는 방법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을 이어 모웅기 바웬디가 정확히 입자 크기를 제어해서 입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분자 차원에서 특수한 빛, 색을 낼수 있다는 점을 차용해 QLED 기술에 사용되게 되죠.
이 외에도 노벨 평화상은 이란의 나르게스 모함마디, 노벨 문학상은 욘 포세, 노벨 경제학상은 클라우디아 골딘에게 수여됐습니다. 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앤 륄리에 교수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다섯번째 여성이 되었고요.
사실 아무리 과학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를 샅샅이 살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느낀 게 있다면, 대부분의 연구들은 20년, 길게는 30년 전에 진행된 연구들이 많더라고요. 30년 전에 발표된 연구들이 노벨상을 통해서 새로이 각광받게 되는 거죠. 그렇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의 노력들은 비록 빛을 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미래에 그 노력들이 전부 반짝반짝 빛날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니 오늘도 쉬이 희망을 놓지 않고 현생 화이팅 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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