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 다정함을 보여 줘

구독자,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지네요. 시험 기간도 다가오고 있고요. 저는 10월의 마지막 휴식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어요. 여행할 때도 거듭되는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쉴 땐 쉬자."라는 말을 되새기며 기차에서 《휴식의 말들》책을 읽었죠.

잠시 붙들어 둘 수는 있어도 결코 완전히 등 돌리지는 못할, 소란한 이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얼마간의 고요함을 누적한다. 추슬렀다 뛰어든다.

부산에서 혼자 있는 시간, 사람들과의 대화, 영화를 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양한 고요함을 찾았어요. 소란한 세상에서도 잔잔한 여유가 필요하니까요. 티켓팅은 거의 실패해서 원하는 영화는 많이 못 봤지만, 부산 바다를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냈어요. 덕분에 에너지도 되찾고, 다시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김유진 에디터와 홍태화 부원이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해 줘요. 이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죠. 그 선택의 기로들은 우리가 고민하는 지점과 비슷했어요. 

구독자,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

FEELM 편집장 김예빈 

🎬 영공소식

1. 지나간 영공 

🎞️ 2회차 감상회 <셀레브레이션>  🎞️

Festen

영화 정보 ｜ 토마스 빈터베르그 · 1998 · 드라마 · 덴마크, 스웨덴 · 105분

🕰️ 일시 :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베스트 한줄 감상

김유진   ‘아버지의 법’을 깨기 위한 투쟁

이종환   배우들 연기력은 좋으나 너무 끄는 느낌이 있어 많이 루즈함 내용도 기분이 좋지 않아지는 내용인 것 같음

정동인    비로소 이루어진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셀레브레이션

🎞️ 3회차 감상회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

天然コケッコー

영화 정보 ｜야마시타 노부히로 ·  2007 · 드라마/로맨스 · 일본  ·  121분

🕰️ 일시 :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베스트 한줄 감상

김상현 입가의 여린 미소가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영화

김예빈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았으면 좋겠어

천세연 이런 마음도 괜찮아서 다행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MT🍿

🕰️ 일시 : 2024년 10월 4일 (금)~6일 (일) (2박 3일)

📌 장소 : 부산광역시 일대

 구독자,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다녀오셨나요? 부원들과 함께해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일반 상영은 주로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센텀시티 일대에서 많이 이루어졌어요. 하지만 점점 부국제는 부산 전역으로 확장되고 있어요! 숨겨진 상영관들이 많답니다~ 커뮤니티 비프나 동네방네 비프 덕분이에요. 다양한 상영 장소와 색다른 경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된 거죠. 이번 부국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10월 29일에 발송되는 다음 뉴스레터에서 특별하게 만나보실 수 있어요! 각자의 방식들로 부국제를 즐겼을 텐데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10월 13일 (일) 23시 59분까지 모아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부국제 특별 기고하기

2. 다가올 영공

🎞️ 다가오는 감상회 일정

최재혁's Pick : 2024년 10월 10일 (목)

노순범's Pick : 2024년 10월 29일 (화)  

감상회는 비밀 컨셉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당일 오전에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알 수 있답니다.

📢 알림   

다음 주부터 2주간 중간고사 일정으로 감상회를 쉬어가요! 다음 뉴스레터도 중간고사로 2주 후가 아닌 3주 후 10월 29일 (화) 오후 8시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시험기간 파이팅입니다 💪 시험이 끝나면 작은 영화제를 시작으로 많은 행사가 준비 되어 있으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 나누다 

김유진 에디터가구독자님에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소개해요. 

홍태화 부원이 구독자님에게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을 소개해요.

김유진 에디터가 구독자에게 소개하는 영화 정보

제목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미국 · 액션 · 139분

영화 상세 정보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 포스터의 종류가 꽤 많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위의 이 포스터가 ‘맥시멈’한 이 영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포스터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스포일러를 당하기 전에 먼저 시청하고 오기를 강력히 권하며,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어디까지나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평적 시각에서 영화를 해석하기 보다는 친한 친구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듯, 수다를 떨 듯, 조금은 사적인 말도 섞으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글임을 알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하듯 흘러오길 바란다.

“Be kind.” 

 내가 <에에올>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로 꼽는 문장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웨이먼드의 이 대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순간, 모든 곳에서 친절하고 다정해야 한다.

웨이먼드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굳이 사람의 형태는 아니라는 것. 에블린의 우주에서 에블린의 곁에는 웨이먼드가 있다. 그리고 에블린은 딸인 조이에게 있어 그런 존재는 베키일 것이라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에겐 어떤 존재가 다정을 가르쳐 주었을까?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 친절과 사랑을 얘기해 준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나의 지난 역사엔 웨이먼드처럼 직접 “다정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연인은 없었다. 또, 딱히 가족으로부터 다정을 배운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때때로 삶에서 버거운 일이 생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긴 했지만, 에블린이 웨이먼드에게 받은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내게 웨이먼드는 드라마와 뮤지컬이다. 왠지 모를 무력감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불안을 느끼던 때 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만났고, 먼 목적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것에 지쳤을 때 뮤지컬 <명동로망스>를 만났으며, 인간관계와 타인에 대한 허무에 빠졌을 때 드라마 <나기의 휴식>을 만났다. 각자 다른 상황에서 만난 작품이지만, 내게는 모두 ‘내 인생과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다른 순간, 다른 시간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다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Be kind.”라는 그 말 그대로.

 사람들이 힘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에블린에게는 웨이먼드, 내게는 드라마와 뮤지컬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반려동물, 친구, 어쩌면 매일 산책을 나서는 숲이 될지도 모른다. 결론은 나를 어둠에서 구원할 어떤 거창한 ‘히어로’가 필요한 게 아니란 거다.

도대체 <굿 플레이스> 생각을 왜 이렇게 많이 하게 되는지

 <에에올>을 다 보고 나서 맨 처음 떠오른 것은 드라마 <굿 플레이스> 였다. 줄거리만 생각해 보면 전혀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작품이지만 (1) 한 개인의 선택이 다른 곳에 미치는 영향들, (2)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언급과 오마주, (3) 사람에겐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 (4)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 등 가끔 교차하는 점들이 있다.

 특히 내게 <에에올>을 추천해 준 지인이 영화를 본 뒤 꼭 시청하길 권한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 영상을 보고서는 교차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해당 영상에서는 <에에올> 속 영수증이 그동안 에블린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정산이라는 메타포이며,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난 왜 이렇게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주인공의 회의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링크) <굿 플레이스>에서는 인생 정산에 대한 이야기가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사후에 이루어지긴 하지만) 내 일상 속 모든 행동과 선택에 점수가 매겨지고, 매 순간들이 전산에 기록된다. 삶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당사자는 정산 내역을 확인하고 회의와 허무주의에 빠진다. “내 삶은 무엇을 위함이었지?” 그럼에도 다정과 사랑을 통해 극복한다. 그 여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낀다.

 <에에올>이 개인이 수많은 정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자신의 철학과 자아를 갖기 어려운 ‘초연결 시대’를 표현한 영화라고 본다면 이 또한 <굿 플레이스>와의 교차점이 될 수 있다. <굿 플레이스>의 등장인물들은 이 사회의 다양한 부분이 너무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내가 하는 사소한 선택들이 미칠 영향을 예상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사후에는 ‘좀 더 쉬운 버전’의 세상에서 다시 살아가며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된다. 영화 속 에블린은 다른 우주, 다른 버전의 자신을 봄으로써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 과정을 바라보는 우리는 각자의 지난 선택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에에올>의 메시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굿 플레이스>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장 모 씨는 모델이 될 수도 있었다

 장 모 씨가 누구 신데요? 네, 제 어머니십니다. 엄마는 키가 큰 편이다.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라, 20대의 엄마는 정말 아름답고 찬란했다. 여배우처럼 깊은 인상에, 길고 얇게 뻗은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내가 처음으로 엄마 사진을 보고 “나도 엄마처럼 크고 싶어”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지금은 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지만, 엄마와 나의 불행이 절정이었을 때, 엄마는 내게 곧잘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서울에 살았으며, 자타공인 미인이었고, 꽤 ‘잘 나갔’었다고. 심지어는 모델 캐스팅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고. 그런데 그땐 괜히 부끄럽고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었다고.

 소재는 여러 가지였지만 흐름은 ‘자랑-선택-후회’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던 시절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너를 낳지 않았을 거야.”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들리는 어감만큼 크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리 해보고 싶다는 의미였으리라고, 지금은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에블린은 영화배우가 된 자신의 다른 모습에 경도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 멋진 삶을 웨이먼드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엄마도 그랬었나 보다. 그때 그 삶이 너무 엉망진창이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너무나 많은 곳에서 너무나 많은 일을 해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자신의 것일 수도 있었던 모습으로 버스 점프를 하고 싶었나 보다. 자신이 최악의 장 모 씨라고 생각하며.

 그동안은 엄마의 그런 과거 회상을 굉장히 질려했었다. 어떤 에피소드든 이미 10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엄마도 분명 내 태도에서 권태와 짜증을 느꼈을 것이다. 자꾸 자신의 다른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리고 현재의 삶 대신 그 삶을 살길 원하는 에블린의 모습을 보며 내가 눈물이 났던 것은 아마 엄마에게 다정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게 될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내 삶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다정하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남길 수 있도록, 친절한 투사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감사해야 할 것에는 최대한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사랑하고, 후회나 허무가 끼어들 틈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과 마음을 딱 붙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에블린이 조이를 꽉 안아준 것처럼. 내 삶 속 웨이먼드를 떠올리며 살자.

에 디 터  ｜ 김 유 진

프리즘오브 32호 바로가기

홍태화 부원이 구독자에게 소개하는 영화 정보 

제목 : 황무지 (1973)

Badlands

감독 : 테렌스 맬릭

범죄/액션/드라마/스릴러 · 미국 · 95분

영화 상세 정보

제목 : 천국의 나날들 (1978)

Days of Heaven

감독 : 테렌스 맬릭

드라마/로맨스 · 미국 · 94분

영화 상세 정보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

We gotta get out while we’re young

‘Cause tramps like us

Baby, we were born to run

우리는 젊을 때 여기서 벗어나야해

왜냐하면 우리 같은 방황자들은

자기, 달려야만 하는 인생이니까

-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테렌스 맬릭은 <트리 오브 라이프>를 기점으로 점점 현세로부터 멀어져 영화 신선이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의 처음 두 작품에서는 장르영화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빌려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였다. 그는 특히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to Run> 속 화자와 닮은 ’도망자‘ 신세의 인물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첫 번째 작품 <황무지>에서 마틴 쉰이 맡은 ‘키트’와 <천국의 나날들>에서 리차드 기어가 맡은 ‘빌’은 모두 자신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인해 사회 바깥으로 도피한, <이유 없는 반항>에서의 제임스 딘을 떠올리게 하는 자유분방한 노동자 계급 남성들이다. 그들에게는 애인이 있으며 방랑 생활 중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키고 말미에는 경찰에 붙잡혀 죽고야 만다. 

 그들의 운명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만 같이, 각자의 비참한 마지막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황무지>에서 키트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날 밤, 자신의 미래를 먼저 보고 오기라도 한 듯 애인 ‘홀리’와 자동차를 몰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천국의 나날들>에서는 빌의 여동생 ‘린다’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아는 사람’에 관한 격언을 들려주고 이후에 있을 메뚜기 떼의 습격과 불난리를 예언하듯 불로 둘러싸인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성 인물들, 키트와 빌은 자신의 최후를 알거나, 혹은 영화가 이미 그들의 최후를 점 지어두었다. 전자든 후자든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간다. 영화의 표면상으로 키트와 빌은 경찰에게 쫓기고 있기 때문에 방황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 수배가 되기 전에도 별 다른 이유 없이 오랜 방랑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음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키트와 빌의 운명. 그들은 발이 없는 새처럼 미국 전역을 떠돌며, 결국에는 유명을 달리할 것이다.

 키트와 빌의 주위에는 제임스 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반항정신과 자유를 그 무엇보다 숭상하던 비트 세대의 아이콘, <이유없는 반항>에서 세상을 등지고 질주하는 제임스 딘의 모습은 키트와 빌에게 거의 그대로 이식되었다. 만일 테렌스 맬릭이 20년 정도 일찍 영화를 시작했더라면, 제임스 딘의 계보가 그들을 지나 오랜 시간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렌스 맬릭은 비트 세대의 꽃이 전부 시든 뒤에야 도착하였다. 오히려 그는 제임스 딘 ‘신화’에 의구심을 품으며, 그가 자신이 사는 시대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과거와 같은 자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지를 물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영화에 제임스 딘을 부활시켜놓고, 이 시대에 그가 있어야 할 마땅한 위치를 재고하였다. 그 결과, 운이 나쁘게도 새로운 제임스 딘들은 <이유없는 반항>에서 부활하지 못했다. 테렌스 맬릭은 이것이 <이유없는 반항>에 대한 대안이라는 듯, 그들을 <자니 기타>에 부활시켰다. 

 잠시 <자니 기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니콜라스 레이의 서부극 <자니 기타>에는 두 가지 인물이 있다. 권총을 버리고 기타를 택한 방랑자 자니 기타, 술집을 운영하면서 허리춤에 찬 권총을 언제 들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여성 비엔나. 니콜라스 레이는 <이유없는 반항>을 만들기 직전에 제작한 이 작품에서 비엔나에게 사건의 해결을 맡겼다. 다시 말해, 자유의 세계에만 머물 줄 아는 방랑자는 영화를 움직이지 못한다. 두 세계를 치열하게 오갈 줄 아는 인물이 영화를 움직인다. 테렌스 맬릭은 <이유없는 반항>과 <자니 기타>의 순서를 뒤집어, <이유없는 반항>의 시대가 지났으니 이제는 <자니 기타>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 제임스 딘은 무력하다. 그럼 누구에게 힘이 있는가.

 무심코 지나친 한 가지 사실.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의 내레이션은 모두 여성 화자가 맡는다. 키트의 애인 훌리와 빌의 여동생 린다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장면과 장면 사이를 연결하거나 가로지르고, 때로는 멀찍이서 상황을 논평하기도 하면서 영화를 움직인다. 남성 인물들이 겉으로는 사회를 벗어나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듯하지만, 실은 철저히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따라가고 있을 뿐일 때, 여성 인물들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인생에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한다.  그들의 주체성은 애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키트와 빌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방식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황무지>에서 키트는 홀리가 영화의 종반에 그에게 방랑자 생활을 관두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그럴 수는 없다며 그녀를 협박한다. <천국의 나날들>에서 빌은 농장주의 집에 얹혀살 적, 농장주에게 애정을 가지는 애비를 보고 질투심에 못 이겨 말없이 떠나버리기까지 한다. 이렇게 키트와 빌은 여성 인물들을 속박하려 시도하지만, 되려 훌리는 영화의 끝에 키트를 떠나고, 애비는 빌이 떠난 사이 농장주와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둘은 키트와 빌의 세계와 자신이 원하는 세계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비엔나의 재탄생.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은 <이유없는 반항>을 철이 지난 영화라며 제쳐놓고 <자니 기타>를 끌어오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야기를 끝맺는 방식에는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먼저 <황무지>에서의 홀리는 키트가 붙잡히자 항복하듯 스스로 경찰의 헬기에 올라탄다. 그녀는 후에 키트와의 사건에 대한 변호를 맡은 변호인의 아들과 결혼해 사회에 정착한다. 이에 반해 <천국의 나날들>에서 애비는 빌의 죽음 이후 어느 마을에 정착해 린다를 보육원에 맡긴 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본작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린다는 친구와 함께 보육원을 탈출해 기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를 따라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간다.

 <황무지>는 결과적으로 인물이 사회에 편입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빌이 평생토록 갈망하던 영원한 자유는 허상일 뿐이라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내내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벌판의 풍경은 어느새 빌의 죽음이라는 서사의 장벽에 가로막혀 비루한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다. 물론 <황무지>가 자유를 허망한 것으로만 바라보는 영화라는 말이 아니다. 빌이 훌리의 손을 붙잡고 처음 벌판으로 도망치던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않았는가. 다만, 그 수명이 결코 오래가지 않을 뿐이다. 방종한 자유가 줄 수 있는 안식의 기한은 짧다.

 <천국의 나날들>은 자유를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 이곳에서의 자유는 한때 힘을 잃고 쓰러졌을지라도, 하루하루 나의 주체성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린다는 친구와 보육원을 탈출해 끝없이 뻗은 기차선로를 걷고 또 걷는다. 카메라는 가만히 서서 저 멀리, 저 멀리로 힘차게 사라져가는 둘의 모습을 지켜본다. Days of Heaven, 영화의 제목은 천국의 나날이 아니라 천국의 나날‘들’이다. 끝없이 찾아올 천국의 나날들. 꿈만 같았던 그날이 스러졌을지라도, 앞에 있을 나날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활기찬 발걸음. 

 두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 내 생의 모든 길과 온몸으로 맞서온 나의 발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또 너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부 원  ｜ 홍 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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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추억을 나눠주실 분을 찾고 있어요! 🎬

올해 부국제에 참여하고, 2024년 10월 13일 (일) 23시 59분까지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을 A4 기준 1페이지 이하 분량으로 적어주세요. 영화 감상, 부국제 전반에 대한 리뷰, 또는 영공 MT 등 부국제와 관련된 이야기면 모두 환영합니다! 관련 사진도 1~2장 정도 함께 첨부해 주세요. 📸

선정된 글은 뉴스레터와 문집에도 실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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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멋진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

혹시 올해 부국제에 참여하지 못하시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2024년에 참여한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받고 있어요. 언제든 환영해요! 

FEELM NO.4 만든 사람들

편집장           ｜ 김예빈 (yebinjoy@gmail.com) 

교정·교열        ｜ 강시형 박소영 배제우 

에디터           ｜ 김유진 (yujin6590@naver.com) 

객원 에디터     ｜ 홍태화 (guinso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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