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오랜만이에요. 시험 기간 때문에 3주 만에 돌아왔네요. 요즘엔 단풍철이기도 해서 가을을 만끽하는 분도 계실텐데요.
이번 호는 특별판으로, 10월 초에 MT로 다녀온 '29회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이번 영화제에서 감상한 상영작에 대한 부원들의 한줄감상, 노승민 부원의 인상 깊었던상영작 소개글, 강시형 에디터와 함께 부국제로 살펴본 한국 영화 동향을 차례로 살펴봐요. 🎬
‘나누다’ 코너에서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해요. 구독자님에게 배제우 에디터가 소개하는 <프렌치 디스패치>와 최재혁 부원이 소개하는 <바빌론>을 만나보세요.
시험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힘차게 달려볼 시간이죠? 내일, 서강영화공동체가 주최하는 '작은영화제'가 열립니다! 🎉 10월 30일 오후 6시, J118에서 지난 학기 영공 부원들이 열심히 만든 4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 누구에게나 'FREE'하게 열려 있습니다. '자유롭고 찬란하게' ✨
그런데 카메라가 잘못된 곳을 보고 있는 것 같네요... 어? 바로 여기! 구독자님을 찍어야죠! 🎥 이번호의 주인공은 바로 구독자님입니다. 주인공의 마음으로 다양한 영화를 함께 읽어봐요. 😄
FEELM 편집장 김예빈
🍿[특집] 29회 부산국제영화제 📽️
✏️29th BIFF 상영작 한줄 감상
<여름날의 레몬그라스>, 2024, 뇌맹걸
김선아 로맨스 코미디의 집합, 애니메이션의 3D화.
유제원 삼연발 오른손 어퍼컷
이재혁 헛웃음 나오는 클리셰 대잔치
김상현
<혹시 저를 아세요?>, 2024, 아리아나 마르티네즈
로맨스 멀티버스라는 생소한 장르의 영화는 처음 등장한 세계는 소멸되고 반대쪽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린다. 과연 사라져버린 세계는 평행세계의 너인 것일까? 아니면 이별 후에 나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너인 것일까?
김예빈
<리모노프: 에디의 발라드>, 2024, 키릴 세렌브렌니코프
광기의 끝, 러시아의 초상화
<친애하는 8월>, 2008, 미겔 고메스
여긴 현실일까 환상일까
축제의 음악만 계속 맴돈다.
<토요일의 밤의 열기>, 1977, 존 바담
디스코로 자유롭게 뽐내기
김유진
<조용한 경청>, 2024, 로렌스 파자르도
소년의 삶은 조용한 것이었다. 누군가가 무언의 소란함을 경청하기 전까지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2024, 뤼도빅 부케르마, 조란 부케르마
아버지로부터도, 어머니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 소년들. 철도 없고 성장도 없었다.
<에밀리아 페레즈>, 2024, 자크 오디아르
‘그'일까 ‘그녀'일까. 스페인어의 매력을 대사로도, 노래로도 느낄 수 있었던 영화.
최재혁
<허밍>, 2024, 이승재
관악구와 동작구의 경계, 신림과 국사봉의 사이 그 어딘가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보다 투박한 휘파람에 더 쉽게 감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풍경드리프팅>, 2024, 황다은, 박홍열
잔잔하게 퍼뜩이는 어떤 빛과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그곳을 배회하는 사람들. 풍경은 언제나 드리프트를 하기 마련이고, 카메라를 가져간 그곳에는 영화가 있었다.
<봄밤>, 2024, 강미자
시적인 몽타주의 운율감이 이끌어내는 아릿한 정동, 고요 속에 아스라이 스러져가는 인간에 대한 동정.
<동물의 왕국 혹은 코미디 영화>
제목 : 사스콰치 선셋 (2024)
Sasquatch Sunset
감독 : 데이비드 젤너
미국 · 89분
이 영화는 예매부터 너무 힘들었다. 처음엔 겨우 A열을 예매했지만, 더욱 편한 감상을 위해 C열로 교환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의 기대를 와장창 깨줘서 너무 신선하고 더러웠다.
예고편을 본 사람은 <사스콰치 선셋>을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빅풋들의 여행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먼저 제작진으로 아리 에스터가 참여했다는 것. 그리고 빅풋의 행동을 많이 비춰주는 클로즈업이나 풀샷이 많이 없단 거다.
이 영화는 동물의 왕국과 코미디 영화 사이 어딘가에 있는 영화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 아름답지 못한 가족들의 이야기로,욕망을 여실히 나타내는 빅풋 패밀리의 1년간의 일대기를 그린다. 빅풋 패밀리가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보는 관객은 마치 저들이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인간이 저기에서 저들을 도와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하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상당하다. 미지의 생물체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꽤 적나라한 포즈를 취하며 연기해야 했을텐데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특수 분장 자체도 훌륭했지만 분장의 특성을 잘 살린 연기도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즐길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영화를 감상한 후 영화감상플랫폼에서 확인한 후기들은 너무 웃기다. 반드시 영화의 코멘트는 영화를 감상한 후에 보기 바란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에서 수입을 했으니 25년도에 극장 어딘가에는 걸려있을 것 같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커플이라거나 어색한 친구와 보기는 추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보거나 너무나도 친해서 이 영화에 나온 액션을 따라 해서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과 보기를 바란다. 역겹거나 인간 본성에 대한 부분을 필터링 없이 보여주는 영화를 못 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추천하지 않는 영화다. 하지만 기존 영화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자극적인,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싶다면 반드시 보기를 권한다.
노 승 민
<부산국제영화제와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지난 2024년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가 진행되었다. 부국제는 ‘한국 최초이자 최대의 국제 영화제’로서 많은 영화계 종사자들과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이번 부국제는 총 7개 극장 28개 상영관에서 278편의 영화를 총 633회 상영했고, 좌석점유율 84%에 총 관객수145,238명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지는 못했는데 영화제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축소된 상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14일, 부국제를 포함한 국내개최영화제 측에서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에 반대하여 공동성명서를 배포하였다. 올해 국내외 영화제 육성 예산은 전년대비 약 51%수준이다. 단순히 국내외 영화제 육성 예산만 삭감된 것은 아니고 영화유통 지원 자체가 크게 감소했다.
예산 추이를 보면 현재 정부가 국내외 영화제 지원을 비롯하여 영화산업에 대한 지출을 꺼리고 있다. 이러한 정부 지원의 감소에도 올해 부국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은 긍정적인 일이나, 안타깝게도 현정부의 정책 기조가 정부의 지출을 줄이는 방향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전망이 밝다고 하기 어렵다. 특히 부국제와 달리 소규모로 진행되는 국내 영화제는 더더욱 명맥을 잇기 어려울 것이다. 문화예술이 더 발전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이를 토대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문화적 삶을 향상하고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자료 출처: 기획재정부 열린재정 재정정보 공개시스템 , KOSIS 국가통계포털 , ALIO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KOFIC (영화진흥위원회) 자체공시
- 자세한 내용은 실물 잡지 《FEELM 공동체》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에 디 터 | 강 시 형
🎬 영공소식
1. 지나간 영공
🎞️ 4회차 감상회 <앨리스> 🎞️
Něco z Alenky
영화 정보 | 1988 · 애니메이션/모험/판타지/스릴러
체코, 스위스, 영국, 서독 · 1시간 26분
🕰️ 일시 :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베스트 한줄 감상
박진영 영화의 기괴한 분위기와 미장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김준연 익살의 정지와 연속
양태현 상상 속에서라도 거역하고 싶은 운명이란
Anna Kalivodová 체코 영화였으니까 체코어로 할게요. Bylo fajn vidět po takhle dlouhé době nějaký film a hlavně můžu být pyšná na to, že byl zvolen zrovna český film. Poprvé jsem ho viděla jako malá holka, nic jsem nepochopila a bála jsem se, ale bylo super ho vidět znovu s odstupem času z nového, vyspělejšího pohledu. 오랜만에 영화를 보게 되어 반가웠고, 체코영화가 선정되었다는 점이 뿌듯합니다. 어렸을 때 처음 봐서 아무것도 모르겠고 두려웠는데, 좀 더 새롭고 성숙한 관점으로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가웠어요.
🎞️ 5회차 감상회 <구멍> 🎞️
Dong
영화 정보 | 1998 · 대만, 프랑스 · 1시간 33분
🕰️ 일시 :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베스트 한줄 감상
김윤서 적막을 채운 장마, 구멍을 채운 구원
김준연 세기말의 사랑은 하늘에 뚫린 구멍보다 큰 듯하다
이정민 구원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2. 다가올 영공
📽️ 작은영화제
🕰️ 일시 : 2024년 10월 30일 수요일 18:00~21:30
📌 장소 : 서강대학교 J118 (정하상관 118호)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무료로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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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다
배제우 에디터가 《프렌치 디스패치》를 소개해요.
최재혁 부원이 《바빌론》을 소개해요.
배제우 에디터가 구독자에게 소개하는 영화 정보
제목 : 프렌치 디스패치 (2021)
The French Dispatch
감독 : 웨스 앤더슨
미국 · 코미디/드라마/로맨스 · 103분
<영화와 다시 만나다>
영화를 사랑해온 시간이 꽤 길어졌다.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는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너무 많은 영화를 본 후부터는 그 열정이 점차 무뎌지는 걸 느꼈다. 스크린 앞에 앉아도 예전만큼 두근거지 않았고, 새로운 작품도 그저 또 하나의 영화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때 나를 다시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인 영화가 웨스 앤더슨 감독의 <프렌치 디스패치>다. 이 영화는 내 안의 열정을 되살린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 삶 속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프랑스에 소재한 가상의 미국 잡지사 ‘프렌치 디스패치’의 폐간호를 다룬 작품이다. 편집장의 부고와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그의 유언에 따라 폐지된 잡지의 마지막 호 기사를 섹션별로 소개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종합예술로서의 영화가 지닌 매력을 담아냈으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함께 녹여냈다.
영화 속 잡지의 폐간호가 완성되는 과정은 실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응된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각 섹션은 삶 속의 시네마적 순간을 포착한다. 예술 섹션은 예술적 영감이 삶을 스쳐가는 순간을, 정치/시 섹션은 젊은이들의 청춘이 약동하고 명멸하는 순간을, 맛과 냄새 섹션은 소외된 이들이 연대하고 공감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기사의 내용은 흑백으로 처리되지만, 이러한 순간들이 지나갈 때 화면은 컬러로 바뀐다. 여기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철학이 드러난다. 영화는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스쳐가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각 섹션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은 첫 번째로 등장하는 새저렉 기자의 지역색 섹션이다. 이 부분은 다른 섹션들과는 달리 흑백 화면 없이 전부 컬러로 구성되며, 분량도 가장 적다. 새저렉은 잡지사가 위치한 앙뉘라는 소도시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소개하는데, 그의 따뜻한 시선과 달리 실제 앙뉘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도시는 쥐와 길고양이들로 넘쳐나고, 밤이면 매춘이 성행하며, 아이들은 어른들을 습격한다. 그럼에도 새저렉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앙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영화는 삶의 한순간을 포착할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고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각 섹션이 끝날 때마다 편집장인 아서와 기자들이 기사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마지막 섹션인 맛과 냄새 섹션이 끝난 후의 장면은 다소 묘하다. 이전의 기사들에 대해서 아서는 별다른 말없이 기자들의 요구를 수용해주고 최소한의 수정을 가했다. 마지막 섹션 에서의 대화 이후 아서는 로벅 라이트가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빼놓았던 네스카피에와의 인터뷰를 다시 기사에 실으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아서는 사무실에 ‘No crying’이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눈물을 보이는 직원을 가차 없이 잘라버릴 정도로 감정을 통제하는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해당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아서의 행동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인터뷰에서 로벅 라이트는 네스카피에와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결핍을 공유한다. 로벅 라이트는 미국인이자 동성애자로서 프랑스에서 고립감을 느꼈고, 네스카피에 또한 동양인이자 이방인으로서 외로움을 겪고 있었다. 아서가 편집장으로서의 원칙을 굽혀가면서 이 인터뷰를 실으라고 한 이유는 자신도 같은 결핍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서 역시 25세에 캔자스를 떠나 50년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죽어서야 다시 캔자스에 묻힌 인물이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계획적인 아서가 남몰래 가지고 있던 외지인으로서의 결핍을 인터뷰가 건드렸을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이 장면을 통해 영화의 개인적 측면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때로 개인적인 경험, 감정과 조응하여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를 만나곤 한다. 그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그 영화는 그 사람에게 완벽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기에 어떤 관객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의 구조는 독특하다. 영화는 쇠락과 사망 섹션에서 나레이션이 아서의 부고를 읽으며 시작한다. 폐간호 기사가 완성된 후 에필로그에서는 죽은 아서를 기리며 기자들이 다 같이 아서의 부고문을 한 문장씩 이어가며 작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고문이 바로 영화가 시작할 때 쇠락과 사망 섹션에서 나레이션이 읽게 되는 글이다. 결국 영화는 엔딩에서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간다. 이 영화가 웨스 앤더슨이 사랑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은 개인적인 영화임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구조는 웨스 앤더슨의 소중한 추억을 담아놓는 타임캡슐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개인적인 것인 만큼, 감독에게도 개인적인 셈이다.
완벽하게 보이는 구조 속에도 흡집을 남긴 부분이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부고문을 같이 완성해 나가는 기자들의 모습이 멀어질 때, 영화의 규칙을 어기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물이 있다. 화면 가장 오른쪽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정치/시 섹션 기사를 쓴 기자 클레멘츠다. 웨스 앤더슨은 이 작은 파열음을 통해 영화가 결국 관객에게 닿아야 함을 상기시킨다. 그의 바람은 끝나버린 시대의 향수가 관객들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를 매듭짓는 방식조차 웨스 앤더슨답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단순히 독창적이고 화려한 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세심한 손길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정교하게 엮어내며 영화라는 매체가 세상을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깊이 탐구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느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재미’라는 영화의 근본적인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영화는 복잡한 메시지를 담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 점에서 내가 영화에 처음 빠졌던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작품이다. 과거의 나처럼 영화에 대한 회의로 멀어지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서 영화를 다시 만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에 디 터 | 배 제 우
최재혁 부원이 구독자에게 소개하는 영화 정보
제목 : 바빌론 (2022)
Babylon
감독 : 데이미언 셔젤
미국 · 코미디/드라마/역사 · 188분 · 청불
<영화의 모든 순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그대에게>
무언가를 애달프게 사랑해 본 적 있는가
당신은 사랑을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혹자는 사랑이 아름답고 고결한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사랑의 형태나 정의가 그러한 규명을 띄어도 괜찮을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머리에 맴돈다. 사랑은 분명 아름답지만 동시에 비열하며, 한없이 치가 떨려 오면서도 결코 잃을 순 없는 그 무엇이었고, 이렇게 묘사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게 만들곤 하는 그 무엇이었다.
군에 입대하기 하루 전, 극장에서 <바빌론>을 보았다. 그리곤 체감했다. 이 영화를 사랑이라 칭하지 않는다면, 세상엔 사랑이라 이름 붙일 게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염없이 영화를 고대하던 나, 숨 막히게 영화를 보아내던 나,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영화관에서 나오던 나. 영화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함께 느끼며 자연스레 체감한 투철한 사랑.
<바빌론>은 감독의 전작인 <라라랜드>에서처럼 결코 아름답거나 행복한 순간들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플래쉬>의 숨 막히는 호흡으로 영화를 압박한다. 이곳에는 찢어지는 재즈, 난잡한 이미지, 망가지는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사랑을 단지 아름다운 무언가로 규정한다는 건, 파렴치한 오만에 불과하다. 사랑은 어쩌면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하다. 원초적인 <바빌론>의 현장에서 자행되는 위태로운 몰락을 지켜보며 나는 차오르는 사랑을 느낀다. 영화 속의 모든 것은 사랑을 노래했고,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나는 <바빌론>을, <바빌론>이 연주하는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의 격동과 바벨탑의 몰락
<바빌론>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1920~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영상에 소리가 입어지며 영화는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워졌지만, 빛이 있는 곳엔 역시 어둠도 있는 법. 영화가 찬란히 빛나던 순간, 그곳에 드리운 그림자는 자욱해지고 있었다.
원초적인 본능이 남발하던 바빌론의 시대는 사운드의 등장에 저물어가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도태됐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잊혔고, 그들을 대체할 사람들은 언제나 넘쳐났다.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바빌론>은 화려하게 지독한 시대의 초상을 분절된 시퀀스로 구성한다. 연도별로 나뉘어 있는 시퀀스가 모두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하다. 혹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영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립하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각각의 시퀀스들은 사건의 연쇄 속에서 반복되는 지점을 포착해 내며 ‘영화’라는 바벨탑을 훌륭히 쌓아나간다.
파티에서 죽은 여자, 영화 촬영장에서 창에 꽂혀 죽은 남자, 카메라가 내뿜는 고온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남자. 계속된 죽음에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리듬은 방심할 새도 없이 새로운 시퀀스로, ‘사운드 만세’로 시작하는 흥겨운 연주로 바뀔 뿐이다.
이렇게 쌓아 올려진 바벨탑은 영원하지 못했다. 수많은 죽음을 자재 삼았던 바벨탑은 점차 기울어가고 있었다. 시장과 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은 소모적인 존재가 되어 그들의 고유한 가치를 상실하며 도구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바벨탑 신화에서 인간들은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파멸을 맞이한다. 영화의 초반부 파티에서 죽은 여자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등장한 코끼리는, 영화의 후반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괴수로 진화된다. 이는 시대가 진행될수록 자극과 쾌감에 매몰되어 가는 인간 군상을 슬며시 은유한다. 환상 속에서 관객의 꿈을 창출하던 영화는, 각박하고도 매몰찬 현실에 점점 파묻혀 그 가치를 점차 잃어간다. 그렇다면 영화는,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그들이 영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영화에서 언급되었듯, “먼 미래에 한 아이가 나를 스크린에 부활시킬 것”이라는 단 한 마디의 말뿐이다. 언젠가는 다시 스크린에 현현할 우리의 모습을 그리는 수동적인 기대 이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더 이상 자신이 필요하지 않음을 절실히 체감한 스타는 쓸쓸히 무대를 퇴장하지만, 그 죽음마저도 ‘테크니컬러’라는 새로운 영화 기술의 등장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한 시대는 저물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새로운 세대를 마주한다.
1952년, 영화계를 떠난 매니가 운명처럼 마주한 <사랑은 비를 타고>와 그곳에서 포착한 미장아빔은 <바빌론>의 정수이며, 이 영화가 구구절절하게 설파한 진심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유성 영화로의 전환기에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의 군상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는 하여금 매니가 사랑했던 영화의 모든 것을 상기하게 해준다. 이곳에 자생하는 미장아빔을 통해,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영화로써 비로소 부활한다.
이토록 노골적인 엔딩은 거스를 수 없이 발전해 온 예술과 사회 너머에 있는, 스크린 바깥에 실존하지만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희생을 암시하는 동시에, 이 모든 순간들을 거쳐와 지금에 이르게 된 영화에 대한 깊은 감동을 내포한다.
결국 <바빌론>은 말한다. 영화는 이토록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하다고. 그럼에도 당신은 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 <바빌론>은 운명을 바쳐내 영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구구절절한 편지이자, 광란의 음악이다. 영화의 모든 순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랑해 내는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란 영 힘든 일이다. 영화는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이 존재하는 한, 그 언제까지나 말이다.
최 재 혁
- 여기서 소개된 글은 이번 겨울에 실물 잡지 《FEELM 공동체》로 발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영공 부원 대상 자유 기고도 받고 있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2024년 11월 30일 23:59까지 '[기고] 학번_학과_이름_영화 제목'으로 '공백 포함 1000자 이상', 포스터, 영화정보를 sogangfc.drive@gmail.com로 보내주세요.
- 영공 부원 대상 영화와 관련된 글도 받고 있습니다. 영화제 후기, 독립 영화관 소개, 영화 제작기 등 '공동체'와 관련된 영화 관련 활동이면 모두 괜찮아요. 2024년 11월 30일 23:59까지 '[기고] 학번_학과_이름_글 제목'으로 '공백 포함 1000자 이내' 써서 sogangfc.drive@gmail.com로 보내주세요. 검토 후 퇴고 과정을 거쳐 실물 문집에 실릴 예정이에요.
FEELM NO.5 만든 사람들
편집장 | 김예빈
교정·교열 | 김유진 박소영
에디터 | 강시형 배제우
객원 에디터 | 노승민 최재혁
함께 참여한 사람들 | 김상현 김선아 김예빈 김유진 유제원 이재혁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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