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하지 않은 사람

벼르고 버리는 노력이 필요한 일들

2021.07.16 | 조회 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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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한 주 동안 쓰기를 멈췄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내가 보내는 시간이라면 내 시간이 맞겠지만,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나의 일을 하는 내 시간이라는 건 보통의 시간보다 조금 더 한정적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보다 약간씩 앞뒤에 놓인 내 마음을 위해서 쓰인다. 

한 달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 마감을 해야 하는 편집 노동을 하면서 한꺼번에 다양한 텍스트들이 이목구비 위에 놓였다가 안팎으로 도망가는 것을 느낀다. 마감을 하면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남아 있어야 적당한 끝을 맺었다는 확신이 든다. 홀가분하거나 들뜨는 감정이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일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온통 새기고 있다.

이때 어떤 텍스트에 영향을 받아 어떤 텍스트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이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을 두고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조용히 제 속을 고르고 골라내야 하는 시기일 수도 있다. 나직하게 떠 있는 흐린 날의 구름처럼, 그런 나지막한 가능성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어제는 또 한 번의 마감을 했다. 퇴근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많이 나갔던 책일수록 많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중고서점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던 책이 몇 권인지 수많은 진실을 헤아리다가 그중에서 세 권을 골라 가져왔다.

다 고르고 보니 말을 걸어주든 말을 들어주든 어쨌든 한동안 갈증을 느꼈던 어떤 대화의 연장 같았다. 

많이 쓰는 만큼 많이 버리고 또 버려지는 시간을 얻게 됐다. 이따금 다시 보는 기쁨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기쁨의 출처를 따져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소리가 오가든 오가지 않든 좋은 대화의 시간을 보내는 마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책으로 열어가는 대화는 생활하면서 무언가를 놓쳤던 순간을 되짚어볼 때 불현듯 깊어지곤 한다. 그게 어떤 대상이든 책을 읽을 때는 나 혼자서 조용히 그 대상을 호출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계속해서 간편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듯 오늘도 많은 책들이 세상에 나와 있는 게 아닐까. 더욱더 간편하게 나의 입장을 피력하는 글을 쓰는 일을 피하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포구 주택가에 거주 중인 아홉 살 소녀의 벽보
마포구 주택가에 거주 중인 아홉 살 소녀의 벽보

추신, 한 주 전 퇴근길에 마주한 벽보를 찍어 함께 공유합니다. 마포구 주택가에 거주 중인 아홉 살 소녀의 말을 여기에 옮겨 둡니다. "지구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되도록이면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놀고 간 곳은 꼭!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지구를 위해 힘써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저도 여기에 추신으로 한 마디 보태겠습니다. "간편하지 않은 사람이 마음으로 무언가를 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지구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 조심하시고, 폭염과 폭우 조심하시고, 일상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쉽게 무너지지 않기를 만물박사 김민지가 응원하겠습니다. (상당히 정치적이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진심입니다.) 다음 레터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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