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찾으셨다고요?
네,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생각했거든요.
저랑요?
사실 좀 미안한 것도 있고...
뭐가요? 아! 알겠어요. 근데 너무 늦은 사과 아닌가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언제쯤 제자리로 되돌아가려나 생각하다가 그 생각도 관뒀어요. 가끔은 예상치 못한 자리에도 불려가보고, 그런 경험도 필요한 거죠. 그보다 예전에 제 옆에 있던 문샤인 산세베리아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알고 계신거죠?
네, 이번에도 과습이에요.
물을 많이 줬어요?
아뇨... 제때 적당히 줬는데... 이 집안 환기가 잘 안 돼요.
알아요. 화분을 밖에 내어두고 제때 챙겨올 여유 없는 거. 환기를 해도 미세먼지의 순환일 뿐이다, 생각하는 것도 다 알아요.
그렇게 듣고 보니 정말 제가 생각해도 저 자신이 한심하네요.
상태를 바꾸는 게 어려우면 바꿀 수 있는 환경부터 조금씩 바꿔보면 어때요.
제 상태가 안 바뀌면 어떤 환경이든 똑같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렇겠죠. 그래도 계속 이런 식으로 말만 바꿔가면서 그대로인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그렇네요. 부쩍 왜 나는 변함이 없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땐 내가 아닌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영향을 받는 게 제일 빠른 길이긴 하죠. 그래도 너무 다양한 것에 영향을 받으려고 기를 쓰지 말아요. 하나에 목매지도 말고요.
그럼요?
저 뭐처럼 보여요?
갑자기요?
뭐처럼 보이는지 말해봐요.
돌... 이겠죠?...
맞아요. 저 이렇게 보면 돌이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근데 제 비밀 그쪽도 알고 있잖아요.
아, 그래도 돌은 돌이죠.
뭐 때문에? 용도 때문에? 내가 돌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럼 돌로서 이용가치가 없다면 돌이 아니겠네요.
아뇨. 그냥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진짜 돌 같아요. 만들어진 돌 같이 안 보여요.
방금 만들어졌다고 했죠. 진짜 돌도 만들어진 거 아니에요? 자연이 만들었다.
그렇죠...
그럼 만들어졌다는 말을 태어났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잖아요. 저도 그들도 결국 만들어진 거예요. 태어난 거예요. 그게 자연스럽든 자연스럽지 않든.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우리 모두는 돌이 될 수 있죠.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 계산된 저도 어느 순간 그런 기회를 선물 받기도 하니까.
맞아요. 제가 처음 봤을 때 돌멩이님은 문샤인 산세베리아와 정말 둘도 없이 잘 어울리는 돌이었어요. 영락없는 돌 그 자체. 지금도 그래요.
아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마음에 놓인 기분이 드네. 이제 정말 어디에나 놓여 있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나는 돌이니까. 그래도 계속 옆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필요해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빠른 시일 내에.
서두르지 마시고 잠깐 저를 들어서 보실래요.
물결이 있네요.
맞아요. 저는 멈춰 있지만 흐르고 있다는 확신이 있는 돌멩이처럼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제 표정 좀 따라 해보실래요.
제가 어떻게... (억지 웃음)
(웃음) 제가 미안해요. 우리 같이 아는 돌멩이 이야기 좀 해볼까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봤죠? 거기서 해리가 어디에서 돌을 꺼냈는지 기억해요?
소망의 거울?
그래요. 그 거울이 하나의 방벽이었어요. 해리가 그 돌을 꺼낼 수 있었던 건 절실하게 찾았지만, 그것을 이용할 마음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저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뭐예요? 론이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가 싸주신 간식을 꺼내면서 멋쩍게 웃는 거?
아 그 장면도 좋고요. (웃음) 소망의 거울 앞에 선 해리에게 덤블도어가 꿈 속에 사느라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당부하는 그 장면, 그 장면 좋아해요.
저도 그 장면 좋아해요. 그러고 보면 '꿈'에는 정말 많은 것들을 포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판타지 같기도 하고...
맞아요. (미소) 그런데 방학이면 해리가 지내야 하는 벽장이나 좁은 방이 현실의 해리에게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사실이 좀 웃프달까요...
근데 한번 잘 생각해봐요. '현실'에도 충분히 포갤 수 있지 않을까요.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절실하게 찾고 싶은데 이용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게 언젠가 우리를 어떤 뒤통수로부터 구해줄 거예요. 그리고 그건 우리가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의 거울 속에, 우리 자신에게 있을 거예요.
추신, 만물박사가 만난 여섯 번째 인터뷰이는 돌멩이었습니다. 인조돌이지만 이 돌은 최근들어 제 책상에 아주 오랫동안 있던 돌 중에 하나입니다. 원래 있던 자리는 제 부덕함으로 이별한 문샤인 산세베리아 옆, 화분 위였는데요. 대화 끝에 드디어 사과를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중한 돌의 은유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제목에 각자 구독할 당시 적어주신 이름을 보태어 보았답니다. 앞으로 여기에서 함께 본 돌의 의미와 가치를 각자의 힘으로 찾아낼 수 있길 응원합니다. 오랜만에 인터뷰 콘텐츠를 보내면서 살짝 긴장한 탓에 오늘도 오탈자가 눈에 안 들어왔을지 몰라요. 그건 구독자 여러분의 마법으로 바로잡아주실 거죠? 뻔뻔하게 마무리하려다가 코로나19로부터, 폭염과 폭우로부터 안전하시라는 당부 보탭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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