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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고 붙는다는 것 (2)

2021.06.01 | 조회 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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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어떤 고민이 되돌아왔다는 건 생활이 궤도를 찾았다는 것이다.

나와 내가 힘을 내는 메모장(만물박사 김민지 혼자 있는 카톡방)
선생님, 정말 죽을 생각은 없으셨군요
선생님, 정말 죽을 생각은 없으셨군요

이것저것은 알아도 정말 중요한 건 모른다. 사실 알고 있는데 깜냥이 되지 않아서, 모르는 척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하루가 너무 많이 주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살면, 이걸로 된 걸까. 어떤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죽어도 해결되지 않을 어떤 문제. 그 문제를 평생 안고 갈 성질이라 답답한 고민을 멈출 길이 없다. 잠시나마 고민을 피할 방법이 있다면 문제와 상관없는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인정욕구는 내 삶의 답을 엉터리로 구하던 방식 중 하나였다. 잘 받을 줄도 모르면서, 칭찬을 받으면 그럭저럭 넘치는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을 핑계삼아 나도 어쩌면 좋은 곳으로 흐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올 초 한 문예지에 투고한 시들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업무를 보는 것이었다. 시보다 더 위중한 생활 앞에서 달라질 만한 건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달라진 건 무엇일까.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전후로 내가 썼던 시가 갑자기 달라졌을 리 없다. 그냥 그런 소식과 함께 알려진다면 더 좋아보일 수는 있겠다. 사람들은 검증된 것을 좋아하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무엇 하나 우길 것 없이 좋은 걸 묵묵히 하는 일에는 단순하고 정직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게 믿으면 될 일도 주변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니 의심만 솟구쳤다. 의심 끝에 운이 좋아 무언가 되는 일도 생겨났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죽어도 해결되지 않을 어떤 문제만 남아서 그 믿음 없는 시간 속을 다시 비집고 들어가는 날이 허다하다.

번번이 제 속을 뒤집는 나를 위해, 그 시간을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적어 놓기로 했다. 시드는 꼴을 지켜보기 싫어서 생생한 아름다움 하나 마음에 깊이 들여놓지 못했던 것. 시드는 걸 막아보려고 말려 두었던 나의 작은 수가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을 더 두고서라도 보고 싶은 아름다움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바닥에서도, 팔리는 모양의 과일과 조금 다르더라도, 아무렇게나 불쑥 손에 채이는 나쁜 일이 있더라도, 끝나지 않는 문제를 품고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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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이 놓인 과도를 하나씩 훔쳐 와 긴 칼날은 필요 없어 손잡이와 같은 길이면 적당할 것 같아 볕이 잘 들지 않는 바닥에 유자, 라임, 레몬, 오렌지, 자몽, 귤들을 쏟고서 주저앉아 가장 보기 좋은 단면을 찾아주자 열매에서 꽃 모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주어진 방향대로 쪼개진 일상이 하얀 줄들을 벗길 때 손금 읽는 법도 가르쳐줄게 오래 쓴 도마 같은 네 손이 피할 수 없던 악수들 썰리지 않은 환대가 파과처럼 섞여 있다

추신, 떨어지고 떨어지던 끝에 붙은 시 하나를 두고 갑니다. 이전 메일에서 보여 드렸던 「꿈의 꿈치들」은 고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그 시가 시집에 실리는 날에는 조금 더 나은 고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문제가 바뀌지 않아도 문제보다 먼저 저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보려고요. 유월이에요. 너무 힘들지 않게 생활하다가 다음 레터로 만나요.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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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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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가성의 프로필 이미지

    일기가성

    1
    about 3 years 전

    파란 신인상 당선작들 보다가 이곳까지 왔어요. 구독 하고 갑니다 :) 앞으로 쓰실 시들도 기대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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