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은 어떻게 '잊힌 랜드마크'에서 미술관이 됐나

테이트 모던·배터시·부르스 드 코메르스가 먼저 푼 질문

2026.06.04 | 조회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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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 한때 아시아 최고층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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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

수학여행 가면 꼭 들렀던 곳. 그리고 아쿠아리움이 있던 곳.

바로 63빌딩입니다.

 

그런데 그 아쿠아리움이 2024년 6월 30일, 리뉴얼 8년 만에 조용히 문을 닫고 철거됐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63빌딩은 점점 잊혀져 갔죠. 그리고 2026년 6월, 그 빈자리에 세계적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가 들어옵니다. 

Moreau Kusunoki, Frida Escobedo Studio와 협업
Moreau Kusunoki, Frida Escobedo Studio와 협업

근데, 이상하지 않나요? 왜 하필 미술관이었을까요. 미술관은 입장료로 돈 벌기 어려운 시설입니다. 티켓 2~3만 원으로 수백억 투자비를 회수하기란 쉽지 않죠.

그 답을 알려면, 먼저 63빌딩이 어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런던도, 파리도 같은 문제를 먼저 풀었습니다.

 


PART 2 — 63빌딩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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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드릴게요. 63빌딩은 몇 층일까요.

63층? 아닙니다. 정확히는 지상 60층, 지하 3층 규모입니다. 높이는 249m이며, 안테나를 포함하면 274m입니다. 

1980년 2월 착공해 1985년 5월 완공했고, 공사비는 1,800억 원이 들었습니다. 완공 당시 아시아 최고층 마천루였으며, 한국에서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가장 높은 빌딩 자리를 지켰습니다. 외관 설계는 미국 SOM과 건축가 박춘명이, 구조설계는 이리형 교수가 맡았고, 시공은 건물주 신동아그룹 계열 신동아건설이 했습니다.

 

'금으로 만든 유리?'

63빌딩 하면 골드바처럼 반짝이는 금빛이 특징이잖아요. 이 외벽 유리, 실제로 금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금의 뛰어난 열 반사율을 건물에 접목한 거죠. 다만 안전성 확보를 위해 외벽 유리 총 1만3,944장을 이후 전면 교체했습니다. 그 금이 어떻게 됐느냐는 궁금증도 많았지만, 상업용이라 대부분 폐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진짜 파격은 '높이'도 '금'도 아니었습니다. 전망대·수족관·쇼핑을 한 건물에서 다 할 수 있었다는 점. 건물 하나가 곧 목적지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걸 80년대에 완성했다는 겁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행사가 바로 앞에서 열렸고, 전국 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습니다.

 


PART 3 — 모두의 수족관, 그리고 몰락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약 400여 종, 2만여 마리의 해양 생물이 있던 곳. 63씨월드입니다. 1985년 7월 63씨월드로 개장했다가 2016년 7월 아쿠아플라넷 63으로 재개장했고, 국내에 현존하던 아쿠아리움 중 가장 오래된 곳이었습니다. 개장 무렵엔 중·고생이 가장 가고 싶어 한 수학여행지로 꼽혔습니다. 39년간 누적 방문객은 약 9,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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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63빌딩의 최고 무기가 '제일 높다'였는데, 그 무기가 무력화됐기 때문입니다. 롯데월드타워는 물론 여의도 파크원 타워까지, 더 높은 빌딩이 즐비해졌죠. 게다가 아쿠아리움과 전망대는 90년대 감각에 멈춰 있었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습니다.

 

결국 2024년 6월 30일 약 40년 만에 영업을 종료하고, 7월 3일 철거됐습니다. 운영사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남은 해양생물들을 일산·광교·여수·제주 아쿠아리움으로 옮겼습니다. 서울의 랜드마크 한복판에, 거대한 죽은 공간이 생긴 거죠.

 

자, 여기서 문제 하나 드리겠습니다. 낡은 랜드마크에 거대한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건물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화의 선택지는 네 가지였습니다.

 


PART 4 — 한화의 네 가지 선택지

63빌딩 외관에 '한화'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죠. 그런데 원 소유주는 한화가 아니라 신동아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생명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신동아그룹이 해체되고 대한생명이 한화그룹에 매각되면서, 63빌딩도 함께 한화 소유가 됐습니다. 한화가 노려서 샀다기보다, 기업을 인수하며 함께 떠안은 유산인 셈이었죠. 그래서 한화 앞에 놓인 선택지는 네 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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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수고 다시 짓는다. 하지만 비용도, 규제도, 여론 부담도 컸겠죠.

두 번째, 그냥 오피스로 채운다. 안전하지만 '죽은 건물'이라는 이미지가 굳습니다.

세 번째, 또 다른 체험시설을 넣는다. 이미 한 번 실패한 모델을 반복할 위험이 있죠.

네 번째, 문화시설로 완전히 바꾼다.

이 네 번째가, 한화가 고른 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문화시설, 그중에서도 미술관이었을까요. 앞서 말했듯 미술관은 입장료로 돈을 벌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미술관을 택한 데는, 단순히 입장료로 환산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PART 5 — 왜 미술관인가, 왜 퐁피두인가

한화 63빌딩
한화 63빌딩

미술관은 입장료를 넘어, 건물·기업·동네의 '격'을 바꾸는 장치입니다. 크게 세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 브랜드 위상. 한화는 문화 사업에 낯선 그룹이 아닙니다. 2000년부터 여의도 한강에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26년째 이어오고 있죠. 다만 이건 1년에 한 번 열리는 일회성 이벤트입니다. 미술관은 다릅니다. 1년 내내 열려 있는, 건물에 박힌 문화 자산이죠. '1년에 한 번 불꽃을 쏘는 회사'에서 '세계적 현대미술관을 운영하는 회사'로. 기업 브랜드의 층위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겁니다.

 

둘째, 변하는 공간. 미술관은 큐레이션에 따라 매번 다른 컨셉으로 탈바꿈합니다. 오래된 유산에 미술관이 들어오면, 정기적으로 모습을 바꾸는 공간이 됩니다. 사람들에게 '또 와볼 이유'를 계속 만들어주는 거죠. 한 번 보면 끝인 전망대·수족관이 풀지 못한 재방문 숙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선택입니다.

 

셋째, 입지 속 앵커 역할. 여의도는 금융·업무 중심지이면서 더현대·IFC몰처럼 떠오르는 쇼핑 거점입니다. 그런데 문화시설은요? 이렇다 할 대표 미술관이 없었죠. 다리 건너 용산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같은 라인업이 있는데 여의도는 비어 있었습니다. 이번 입점으로 여의도의 앵커 미술관이 생기는 겁니다.

 

Julien Fromentin
Julien Fromentin

근데, 왜 하필 퐁피두였을까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타이밍'입니다.

파리 퐁피두 본관이 대규모 보수공사에 들어가며 방대한 소장품을 해외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됐고, 마침 2026년은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 명분까지 맞아떨어졌습니다. 한화는 이미 2018년부터 퐁피두 유치를 타진해왔으나 코로나 등으로 성사되지 못하다, 2023년 파트너십 협약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가져온 걸까요. 정확히 말하면, 이건 '분관'이 아니라 '파트너십'입니다. 이성수 한화문화재단 이사장은 "분관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퐁피두가 직접 운영하는 프랑스 메스 분관과 달리, 서울은 한화문화재단이 운영 주체가 되고 퐁피두와 장기 협력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입니다. 

 

조건은 이렇습니다. 한화문화재단이 매년 70억 원 이상을 브랜드 로열티·작품 대관료·컨설팅 비용으로 지불하고 4년간 운영권을 확보했습니다. 이 기간 매년 두 차례 퐁피두 컬렉션전을, 별도로 연 2회의 자체 기획전을 선보입니다. 로열티성 비용만 4년간 280억 원 이상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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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입된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5개 계열사의 기부금 규모만 537억 원에 달합니다. 리모델링·조성에 누적 300억 원대(보도에 따라 318억 원)가 들었다는 점까지 더하면, 웬만한 빌딩 한 채 값입니다. 그렇게 꾸린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에는 피카소 등 원화 112점이 걸렸고, 보험가액만 1조5,000억 원 규모입니다. 입체주의 작가 작품 91점에, 김환기·유영국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의 작품 21점을 함께 배치한 'KOREA FOCUS'를 더한 구성입니다. 

 

Centre Pompidou, Paris © Manuel Braun, 2018
Centre Pompidou, Paris © Manuel Braun, 2018

그래서 회수는 되나. 솔직히 입장료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한화의 계산은 미술관 자체 수익이 아니라 63빌딩 전체의 트래픽 회복, 상업시설 회전, 그룹 브랜드 가치, 동여의도 일대 부동산 가치에 있습니다. 미술관은 적자를 감수하는 앵커로 두고, 회수는 건물과 상권 전체에서 한다는 그림이죠. 실제로 한화생명은 63빌딩 상업시설을 전면 리뉴얼해 퐁피두 개관일에 맞춰 복합문화공간으로 함께 오픈했습니다. 다만 선례는 양면적입니다. 말라가 분관은 누적 300만 명을 넘기며 2034년까지 10년 연장에 성공했지만, 미국 저지시티는 재정 적자로 올해 초 협력을 중단했습니다.

자, 그런데 — 죽은 건물을 미술관으로 되살린다. 사실 한국이 처음이 아닙니다. 세계엔 이미 비슷한 사례들이 있죠.

 


PART 6 — 글로벌 ①: 테이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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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템스강변.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1981년 가동을 멈춘 뒤 방치됐습니다. 한때는 철거하자는 말까지 나왔죠. 하지만 테이트 재단이 국제 공모를 열었고, 이곳을 미술관으로 바꾸기로 합니다. 

 

148개 팀이 응모했고, 2단계 심사 끝에 당시 유럽 젊은 세대의 선두 주자로 꼽히던 스위스 헤르조그 & 드 뫼롱이 당선됐습니다. 안도 다다오, 렘 콜하스, 라파엘 모네오, 렌초 피아노, 데이비드 치퍼필드 — 이런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결과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까지 받으며 세계적 건축가로 올라섭니다. 참고로 국내 송은문화재단 사옥도 이들의 작품이죠.

헤르조그&드뫼롱
헤르조그&드뫼롱

전략은 단순하면서 과감했습니다.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속을 비운다.' 거대한 터빈홀을 텅 비워 압도적인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 산업 구조 대부분을 보존했습니다. 산업 유산과 대화하는 미술관입니다. 

전환 비용은 총 1억3,400만 파운드. 지금 환율로 2,000억 원대 중후반이죠. 그 결과는요? 연 방문객 500만 명.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현대미술관이 됐고, 낙후됐던 사우스워크 일대를 되살렸습니다. (그 터빈홀 커미션을 현재 후원하는 기업이 현대자동차입니다. 자본이 문화에 이름을 거는 방식은 한국 기업에도 이미 익숙합니다.)

 

그런데, 죽은 건물을 되살리는 데 꼭 미술관일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애플이 증명했죠.

 


PART 7 — 글로벌 ②: 배터시 + 부르스 드 코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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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ersea Power Station
Battersea Power Station

런던 배터시 발전소. 1983년 가동을 멈춘 뒤 30년 가까이 방치돼, 테마파크·축구장 계획이 줄줄이 실패한 곳입니다. '부동산계의 에베레스트'라 불렸죠. 

 

2012년, 말레이시아 컨소시엄(SP세티아·시메다비·직원공제기금 EPF)이 4억 파운드, 우리 돈 약 7,000억 원에 이곳을 인수합니다. 이후 소유 구조가 한 번 더 재편됩니다. 2018~2019년, 같은 말레이시아 자본인 PNB와 EPF가 발전소 건물의 상업 자산을 15억8,300만 파운드에 사들이며 합작 구조(PNB 65%·EPF 35%)로 묶었죠. 우리 돈 약 2조6,000억 원. 영국 가디언은 이를 영국 사상 최대 부동산 거래로 보도하며, 2017년 중국 자본의 워키토키 빌딩 인수(12억8,000만 파운드)를 능가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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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비뇰리의 마스터플랜 아래, 약 39에이커(약 5만 평) 부지에 80억 파운드대(약 15조 원)를 투입하는 초대형 복합 개발이었습니다. 그중 결정타는 단연 애플의 입점이었죠. 애플은 옛 보일러실을 런던 캠퍼스로 쓰며 전체 오피스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임차인이 됐습니다. 설계는 애플 캘리포니아 사옥으로 유명한 포스터 앤 파트너스. '애플 유럽 본사가 통째로 들어온다'는 상징성만으로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파리에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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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Boom
Design Boom

 

구찌·생로랑을 거느린 케링 회장이자 크리스티 소유주인 프랑수아 피노는, 20여 년간 파리에 자신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펼칠 공간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가 찾은 답이 18세기 곡물거래소였던 낡은 원형 건물입니다. 2016년 파리시로부터 50년 장기 임차권을 확보하고,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리모델링을 맡겼습니다. 안도가 원형 홀 안에 거대한 콘크리트 원통을 끼워 넣어 옛것과 새것을 공존시킨 이 미술관은 2021년 5월 22일 문을 열었습니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입니다. 

 

패턴은 똑같죠. 자본이 문화를 입혀, 건물의 격을 바꿨습니다. 테이트 모던, 배터시, 부르스 드 코메르스, 그리고 63빌딩. 모두 같은 일을 했습니다. 오래된 유산을 되살리는 일이죠.

근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되살리는 게, 새로 짓는 것보다 어려울까요.

 


PART 8 — 결론 ①: 되살리기가 더 어려운 이유

새로 짓는 건, 사실 쉬울 수도 있습니다. 백지에서 시작하니까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죠. 진짜 어려운 건, 이미 있던 걸 되살리는 일입니다.

낡은 랜드마크는 세 가지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거든요. 모두의 기억을 되살리고, 낡은 구조를 개선하며, 이미 굳어버린 '한물간' 이미지를 바꿔야 하죠. 이 셋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걸려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오래된 관광호텔을 워케이션 호텔로 되살리는 작업도 정확히 같습니다. 과거 그 동네를 찾던 사람들의 기억을 깨우고, 노후한 객실·설비의 물리적 한계를 손보고, '낡은 관광호텔'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하죠. 셋 중 하나만 풀어선 사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주도 맹그로브 워케이션 호텔도 그런 과정을 제가 겪었죠..)

 

배터시가 30년간 여러 차례 주인과 계획이 바뀌며 가장 어려운 재개발로 꼽힌 이유, 뱅크사이드가 한동안 철거 위기에 놓였던 이유. 모두 되살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63빌딩은 어떨까요. 한화의 선택은, 잘한 걸까요.

 


PART 9 — 결론 ②: 63빌딩, 잘한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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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한화는 가장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답으로 세계적인 미술관 브랜드를 끌어왔죠. 그것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퐁피두를요. 수교 140주년이라는 명분과 본관 보수라는 타이밍까지 맞춘, 만만치 않은 과정을 풀어낸 겁니다.

 

다만, 끝난 건 아닙니다. 냉정하게 세 가지 리스크가 남습니다.

하나, 계약의 한시성. 한화와 퐁피두의 계약은 4년입니다. 게다가 부산에서도 퐁피두 분관이 별도로 추진돼, 부산시는 서울이 한시 운영, 부산이 영구 시설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죠. 즉, 여의도의 퐁피두는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화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이 4년 안에 63빌딩을 — '퐁피두가 있던 곳'이 아니라 '퐁피두가 없어도 사람이 찾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죠. 

 

둘, 입지의 한계. 개관전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찾아올까요. 미술관 하나로 여의도라는 업무지구의 한계를 넘어, 더현대처럼 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요?

 

셋, 회수 구조의 무게. 4년간 280억 원 이상의 로열티에 운영비가 더해지는 구조입니다. 미술관 자체의 적자를 건물·상권 트래픽과 브랜드 가치로 메운다는 가설이 맞아떨어져야 하죠. 말라가는 성공했고 저지시티는 멈췄습니다. 서울은 둘 중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하나 있습니다. 이제 63빌딩이 조금 다르게 보일 것 같다는 것이죠. 자본이 문화를 입혀 격을 바꾸는 그 오래된 공식이, 이번엔 여의도에서 작동할 차례입니다. 잊혀졌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한눈에 보는 핵심 숫자

  • 63빌딩 — 지상 60층·지하 3층, 249m, 공사비 1,800억 원, 1985년 완공, 외벽 유리 1만3,944장 교체
  • 아쿠아플라넷 63(舊 63씨월드) — 1985년 개장 → 2024.6.30 폐관, 누적 9,000만 명
  • 퐁피두센터 한화 — 2026.6.4 개관, 약 1,000평(전시관 2개), 운영권 4년, 연 70억 원+ 로열티, 계열사 기부금 537억 원, 개관전 원화 112점·보험가 1조5,000억 원
  • 테이트 모던 — 전환비 1억3,400만 파운드, 연 500만 명
  • 배터시 — 2012년 4억 파운드 → 2018~19년 상업자산 15억8,300만 파운드, 총사업 약 15조 원, 애플 최대 임차인
  • 부르스 드 코메르스 — 2016년 50년 임차, 안도 다다오 설계, 2021년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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