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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영국에서 오히려 한류에 휩쓸리고 마는데...

돌고 돌아 다시 한국 대중문화로

2024.01.30 | 조회 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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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영국에서 워홀 2년, 취업 5년 살며 겪었던 문화충격 및 소소한 에피소드

안녕 구독자! 지난주에 한국에 잠시 급추위가 찾아왔는데 잘 버텼어? 난 영국 베프 나디아가 놀러와서 칼바람 맞으며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 나디아는 내 전 직장동료 겸 제일 친한 친구야. 사실 나디아가 오늘 주제와 관련이 깊은 친구지. 오늘은 내가 한국 대중문화를 무시하다가 영국에서 오히려 한국에 다시 빠지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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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국에서 'I'm from Korea'하면

2013년 처음 영국에 왔을 때 ‘I'm from Korea.’라고 소개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딱 하나였어.. "South or North(남한 아님 북한)?"

그러고는 어김없이 내게 북한에 대해 물어봤지. 신기했던 건 북한과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남한 사람들보다 멀리 떨어져있는 세계의 많은 이들이 오히려 북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어. 아무리 뉴스에서 핵무기 어쩌구저쩌구 해도 내게는 북한이 오히려 멀게 느껴졌기에 내가 너무 무지한 것이 뻘쭘했었지. 게다가 나의 출신 한 마디에 대화가 갑자기 너무 진지해지는 게 좀 어색했어.

2017년: 한류 지각변동의 시작😬

그로부터 4년 뒤 취업비자를 받고 다시 온 영국은 달랐어. 한국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점점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어. 솔직히 그동안 한국 콘텐츠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었어. 치열한 경쟁과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아이돌 산업은 지양되야 하고 어차피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비현실적이고 오글거리는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에서만 인기가 지속될 줄 알았고. 하지만... 내 예상은 100% 빗나갔지 뭐야.

 “나 한국 사람이랑 말 처음 해봐. 너무 부끄러워.”

러쉬 본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앞서 첫 문단에 등장했던 동료 나디아를 처음 만났을 때야. 나디아는 내게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인사를 건넸어. 나디아는 한국 드라마와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고 했어.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 단지 한류 때문에 나와 친해지고 싶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어째서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어. 반면에 영국은 오래 전부터 해리포터, 영국발음, 노팅힐 등 영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했잖아.한국인이 영국인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건 익숙하게 그려졌지만 한국 대중문화로 인해 영국인이 내게 설레며 다가오는 것이 너무 신선했어. 처음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힘이 내게 직접적으로 전달된 뜻깊은 경험이었어. 한류 덕분에 나는 나디아와 친해져서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였고!  

2019년: 두번째 한류충격

시간이 흘러 2019년, 새로 들어온 동료 알렉스가 있었어. 어느 주말 알렉스는 갑자기 내게 문자를 보냈어.

“흠... 블랙핑크 콘서트 표 살까말까 고민 중이야.” 

알렉스는 그냥 멀쩡해 보이는 20대 영국 백인이었어. 알고보니 대학교 때 K-pop을 많이 들었고 심지어 태권도 동아리 회장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소녀시대, 원더걸스 이후의 케이팝은 잘 몰랐기 때문에 알렉스가 말하는 한국 아이돌을 전혀 알지 못했어. BTS가 7명인지도 몰랐지. 그때까지만 해도 알렉스를 오타쿠라고 놀리면서 ‘블랙핑크 콘서트를 간다고?’하며 깔깔거렸지.

여기서 잠깐 내 음악취향을 얘기하자면 10대 때는 한국 아이돌 노래를 좋아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하우스와 테크노에 빠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마침 그런 장르는 영국이 본고장이더라고! 덕분에 현지에서 각종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다니며 그런 음악만 즐기고 있었어. K-pop은 유치하고 내가 듣는 음악이 진짜 힙하다는 이상한 힙스터 의식을 갖고 있었지. 이런 나의 취향을 180도 돌아보게 한 건 2019년 만난 ‘조쉬’였어.

조쉬는 나를 고스팅(잠수)한 남자 중 한 명으로 고작 세 번 만났어. 이 짧은 만남이 내 삶에 거대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그의 직업은 그래픽 디자이너 겸 대학교 강사였어. 나같은 경우 대학교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하는 중에 그래픽 디자인을 스치듯 배웠어. 그래서 평소에 그래픽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을 동경하고 있었어. 이런 내 눈에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와 명문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쉬가 반짝반짝 빛나 보일 수밖에 없었지. 더욱이 그는 모델처럼 키가 훤칠하고 늘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어서 신비해 보이기까지 했어. 내가 좋아하는 외모에 유능함까지 더한 그에게 반해버리는 건 순식간이었지... 그런 그가 첫 데이트 때 케이팝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거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 그는 삼성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서 한국을 다섯 번이나 방문했다고 하더라고. 자연스레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결과 케이팝을 좋아하게 되었대. 심지어 잠들기 전에는 아이돌 군무 영상을 본다고 하는 거야. 여러 사람이 박자에 맞춰 똑같이 춤추는 게 너무 완벽해서 만족감을 준다나? 특히 방탄소년단의 칼군무를 극찬했어. 스포티파이에서 자기가 직접 만든 케이팝 플레이리스트도 보여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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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팽글팽글 돌았어.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내가 ‘무시’하던 걸 ‘멋있다’고 하다니. 나만의 세계에서 알 수 없는 삼각관계가 형성됐어. 내가 무시하는 케이팝과 케이팝을 좋아하는 조쉬, 조쉬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나. 머릿속 복잡해진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최신 케이팝을 들어봤어. 여전히 이게 왜 좋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크게 꿈틀거린 순간이었어. 

2020년: 드디어 확실히 빠져들다

연기처럼 증발한 조쉬 따라 내 머릿속의 혼란도 사라질 무렵이었어. 2020년 2월, 더 큰 파도가 날 강타했지 뭐야! 갑자기 러쉬 코리아의 높으신 분께서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어. 

 “수수야 혹시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 있니? 런던 슈퍼엠(Super M) 콘서트 표가 생겼어. 이수만 선생님께서 못 가게 되셔서 남은 표를 러쉬 영국 직원들에게 주셨거든. 혹시 가줄 수 있겠니?”

😮 슈퍼엠? 슈퍼주니어는 알아도 슈퍼엠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어. 알고 보니 슈퍼엠은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남자아이돌 그룹 중 몇 명을 뽑아서 만든 스페셜 그룹이더라고. 유일하게 내가 아는 멤버는 샤이니의 태민이었어. 케이팝에 무관심했던 나는 슈퍼엠보다 전설적인 기획사 대표 이수만 회장의 자리를 대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더라고😆! 재밌게 즐기기 위해 슈퍼엠 노래를 열심히 들었고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검색해보았어. 그 중 멤버 ‘카이’를 검색했을 때였어. 카이는 그룹 ‘엑소’의 멤버라고 하더라고. 그 유명한 엑소를 잘 몰랐을 정도니 내가 얼마나 케이팝에 무지했는지 알겠지? 유튜브에서 엑소의 대표곡인 ‘러브샷’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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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순식간에 덕.통.사.고🚑🚨🔥 빨간 정장을 입고 느린 박자에 매혹적인 표정으로 춤을 추는 그에게 영혼을 호로록 뺏겨버렸지 뭐야! 핸드폰으로 유튜브영상을 직접 찍어서 지하철에서 두고두고 볼 정도로...😳

슈퍼엠 콘서트는 런던 그리니치역에 있는 거대한 O2 아레나 공연장에서 열렸어. 생각보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 기다란 줄을 스윽 지나쳐 VIP표를 내밀고 바로 입장했어. 짜릿하더라😆 나와 동갑이지만 단 한 번도 케이팝의 흐름에서 벗어나본 적 없는 한국친구 한 명, 게이 직장동료와 그의 남자친구 이렇게 넷이서 VIP 전용 라운지에서 여유롭게 공연을 기다렸어. 좌석은 발코니석이었는데 발코니 뒤쪽으로 휴게실까지 달려있는 구조였어. 원하는 음료나 음식은 버튼을 눌러서 주문할 수 있었고. 역시 대표님의 자리여서 그런지 무대 멀리서 신처럼 공연장을 한눈에 바라보기에 좋은 위치였어. 하지만 한편으로 열정적으로 응원봉을 휘두르는 팬들 위에서 고요한 귀족처럼 공연을 본 게 조금 아쉽더라. 함성을 지르는 팬들 사이에 있어야 내 고함소리가 묻힐 것 같은데 이곳은 너무 조용해서 내가 내지르는 소리가 좀 민망하더라고~!! 처음에 신났던 이유와 다르게 이제는 진짜로 팬이 되고 있었던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SM 아이돌 속으로

그 이후 바로 코로나가 터졌고 거의 집에만 있게 되었어. 집콕생활동안 내 활력소가 된 건 아이돌 콘텐츠였어. 처음엔 카이였다가 서서히 NCT 태용으로 넘어갔어. 태용이 또 춤을 겁나 잘 추는 거야. 그렇게 그 난해하다는 NCT 그룹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고 멤버들을 번갈아가면서 좋아하게 됐어. 나중에는 NCT U의 Make A Wish 춤까지 집에서 따라추게 되었어. 다음으로 에스파의 Next Level에 빠져서 중국애들이 가르쳐주는 케이팝 원데이 클래스까지 듣는 경지에 이르고야 말았어. 1년 전까지만 해도 케이팝을 무시하던 내가 듣는 것을 넘어 춤까지 추지 않고 못 배길 정도로 열혈 케이팝 매니아가 된 거야... 주변 한국친구들은 고개를 저으며 어이 없어했지😂. 내게 '아니 이런 노래가 뭐가 좋은 거지?'였던 케이팝은 이제는 테크노보다도 더 에너지를 주는 음악이 되어버린 거지 ㅋㅋㅋ

 

한국 드라마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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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나아가 나는 한국 드라마에도 빠져버렸어. 넷플릭스에 한국 드라마가 많이 들어오면서 영국에서도 최신 드라마를 접할 수 있게 된 거야. 여전히 오글거릴 때도 있어서 피식 비웃다가 몇분 뒤 눈물 콧물 흘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지... 특히 전세계 히트작이 된 ‘오징어 게임’은 영국 친구들이 하도 재밌다고 해서 보게 되었어. 근데 진짜 재밌는 거야. 오징어게임이 영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을 때 정말 짜릿하더라. 그해 할로윈 분장을 오징어게임 참가자로 할 정도로 나는 자랑스러운 코리안🇰🇷이 되어버렸지 뭐야😂

 

길티 플레져에서 힙한 문화가 된 한류

 내가 한참 등 돌린 사이 한국 대중문화는 퇴보는커녕 오히려 더 발전하고 있었어. 이제 영국에서 'I'm from Korea'하면 북한보다 대중문화와 관련된 얘기를 더 많이 해. BTS, 블랙핑크부터 기생충, 오징어 게임까지... 한류 덕에 대화거리가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있어. 케이팝은 팝송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련되어졌고, 드라마는 전개속도가 빨라지고 담백해졌어. 몇년 전까지만 해도 동양문화에 관심있는 소수층에서 유명했던 한류가 이렇게 힙해지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워. 혹여나 케이팝 노래 하나에 꽂히거나 드라마에 꽂혀도 혼자만 간직하는 길티 플레져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당당하게 소개까지 하게 되었지. 

확실히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한류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 것 같아. 그 덕에 한국인인 내가 오히려 영국인들로부터 한국 대중문화를 알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한류의 생생한 진화를 지켜보는 건 참 흥미로웠어. 

유럽에는 일본에 대해 큰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일본’ 하면 초밥, 기모노, 애니메이션, 후지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이미지가 떠오르잖아.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음 여행지 얘기를 할 때 어김없이 일본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떠오르더라. 한국도 이제는 정치 외에 대중문화 이미지가 생겼지만 일본만큼 국가적으로 개성있는 이미지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 일본은 심지어 장인정신 마케팅을 참 잘해놔서 일본상품이나 일본 음식은 정말 비싸게 팔려. 우리나라도 대중문화를 넘어서 떠올릴 수 있는 분야가 더 풍부해지면 좋겠어. 이제는 등 돌리지 않고 나부터가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보려고 해. 외국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 걸까 하하. 아무튼...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할게!

아 그리고 공지사항이 있어!

다음 2주동안 집중할 프로젝트가 있어서 뉴스레터를 쉬어가야할 것 같아ㅜㅜ 뉴스레터를 급하게 대충 만들고 싶지 않아서 과감히 두 번 쉬어가도록 할게. 미안해🙏 다음 뉴스레터까지 잘 지내고 있어! 설 잘 보내구!🧧💗

 

2024년 1월 29일 월요일

수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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