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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월 마지막날이 되었네. 내일이면 이제 올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아. 시간 참 빠른 게 왜 이렇게 씁쓸한지😭 점점 더 어둡고 쌀쌀해지는 겨울 따숩게 맞을 준비 잘 하길 바라!
오늘은 교묘하게 다른 영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얘기해볼까 해.
너가 젓가락질을 한창 배우는 중이야. 근데 너의 젓가락질이 서툰 걸 보고 누군가가 반찬을 대신 집어서 밥 위에 올려준다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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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어. 나는 영국에 온 지 1년밖에 안 되서 여전히 영어 실력이 좋지 않았어. 어느 날 밤, 당시 동료 안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에이든과 함께 펍에서 술을 마셨어. 안나는 자그마한 덩치에 조막만한 얼굴을 가졌지만 사자갈기처럼 풍성한 곱슬머리에, 뿔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강렬한 이탈리아인이었어. 영국인인 줄 알 정도로 영어를 잘 했지만, 날 위해 일부러 느리게 말해주고, 내 서툰 영어를 잘 들어줘서 대화하는 게 가장 편한 친구였어. 펍은 보통 시끄러워서 영어를 알아듣는 게 더 힘들지만 이런 안나 덕분에 펍에서도 별 부담 없이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런데 다음날 아침 회사에서 만난 안나가 내게 물었어.
“혹시 내가 너한테 영어로 천천히 말해주는 게 기분이 나빠?”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고마워 죽겠는데? 고개를 휙휙 저으며 답했어.
“전혀! 왜?”
그랬더니 안나는 어젯밤 집에 돌아가서 에이든과 다퉜다고 하는 거야. 에이든은 “너는 왜 수수한테 그렇게 천천히 말을 해?”라고 하며 의문을 제기했다는 거야. 영국인인 에이든의 눈에는 안나가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뉘앙스였어.
이게 무슨 소리지? 그 당시에는 에이든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내게 천천히 말해주는 안나에게 무조건적으로 고마울 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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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두 번째 직장을 다닐 때였어. 회의에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첫 직장과 달리 두 번째 직장에서는 회의할 기회가 많았어. 영국인 한 명까지는 괜찮은데 여러 명과 동시에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어. 이해도 못했는데 내 의견까지 말해야 할 때면 땀이 뻘뻘 났고😥 분명히 회의 자체가 자유롭고 느슨한 분위기였는데도 아무 말도 못하고 늘 혼자 딱딱하게 굳어 있곤 했어.
그날은 5명이 모여 영상 콘텐츠 관련 회의를 한 날이었어. (참고로 난 영상디자이너였어ㅎ) 그 중에 기획하는 제시와 촬영하는 존이 있었어. 회의가 끝나고 존과 나는 비디오팀 부서로 돌아왔어. 오자마자 존이 의자바퀴를 드르륵 굴리면서 내 옆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구.
“아까 회의에서 제시가 자꾸 너 대신 말해서 너무 짜증났어. 왜 네가 말할 수도 있는 걸 걔가 말한대?”
머릿속에 물음표가 번쩍 떠올랐어. 그게 왜? 나 대신 영어로 유창하게 말해줘서 무척 좋았는데? 귀여운 연하남 존이 날 생각했다는 것에 설레는 한편으로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내 ‘권리’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어.
그러고 보니 영국인들이 내게 영어로 천천히 말한 적이 거의 없었어. 내가 못 알아들으면 여전히 같은 속도로 똑같이 말해주더라고. 영국인 눈엔 상대가 외국인이라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는 이유로 천천히 말해주거나 대신 말해주는 게 오히려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여기는 듯했어. 마치 내 능력을 존중하지 않고 ‘수수는 영어를 못하니까 천천히 말해줘야 해’라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 애쓰는 느낌이랄까? 이후 나 역시 영국인을 대할 때 그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어. 물론 이런 반대의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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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누군가를 배려한답시고 그 사람을 위해 다 해주는 경우가 많잖아. 엄마가 운동화를 서툴게 신는 아이를 위해 직접 아이 신을 신겨주거나 아이의 머리를 대신 감겨주지. 하물며 엄마가 아이 숙제는 물론 대회에 나갈 시까지 대신 써주는 경우도 있어. (사실 그게 우리 엄마🤣)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를 기를 때 아이 스스로 하게 해주고, 뭔가를 하기 전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유태인의 격언에도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더 현명하다는 말이 있잖아. 자율성을 사랑하는 나로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그러면서도 1번과 2번 시절의 나는 내 자신이 수동적이었던 점에 감사했어. 영어가 서투른 탓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고 생각했거든. 안나가 느리게 말해준 덕에 그들의 대화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제시가 회의에서 나 대신 말해줘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넘길 수 있었으니까. 난 그저 고마울 뿐이었어. 모든 걸 ‘빨리빨리’ 해결하려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배겨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내가 느리면 타인에게 피해가 될 터이니, 느린 나 대신 남이 빠르게 처리해주는 게 배려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어. ‘빨리빨리’ 문화가 없는 영국인 눈에는 이게 다르게 여겨졌던 것 같아. 한국에서도 느리더라도 기다려주는 일이 많아지면 ‘배려’의 정의가 달라지려나? 문화에 따라 배려의 기준도 다를 수가 있다는 게 참 놀라웠어.
어때? 허그에 이어 배려에 대한 문화 차이도 참 신기하지 않아?
오늘 얘기 재밌게 읽었기를 바라~!!
아, 그리고 한 가지 공지할 게 있는데 앞으로는 주 1회 화요일에만 발행하려고 해.
이제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할 때가 왔거든 🤯😨 당분간 프리랜서일을 공격적으로 구해야 할 것 같아서 아쉽지만 양보다는 질로! 주 1회 보낼게. 미안해 ㅜㅜ 생계가 좀 안정되면 다시 주 2회로 늘려볼게.
그럼 앞으로 매주 화요일 아침에 만나!
HAVE A FANTASTIC DAY💖
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수수로부터
혹시 런던에 살 예정?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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