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원숭이 두창, 얼마나 위험할까

2022.05.23 | 조회 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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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20153, 빌 게이츠는 TED 강연에 출연하여 인류는 다음 팬데믹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대단한 주목을 받은 강연은 아니었어요. 20225월 현재 유튜브 기준 해당 강연의 조회수는 3,500만 회가 넘지만, 90% 이상의 시청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에 이 영상을 보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코로나19를 물리치지 못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20224, 빌 게이츠는 다시 한번 TED 강연에 출연하여 전세계적인 감염병 대응 체계의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인류는 위협하는 세계적 규모의 감염병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빌 게이츠의 생각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아프리카 대륙의 풍토병 하나가 감염 경로도 알려지지 않은 채 세상으로 퍼져나갔을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원숭이 두창(monkeypox)입니다.

(왼쪽) 원숭이 두창이 최초로 발견된 필리핀원숭이입니다. Wikimedia Commons/Emőke Dénes, File:Em - Macaca fascicularis - 1.jpgCC BY-SA 4.0. (오른쪽) 원숭이 두창의 숙주 중 하나인 아프리카 겨울잠쥐(African dormouse)입니다. Wikimedia Commons/H. Osadnik, File:Graphiurus spec -murinus-1.jpg, CC BY-SA 3.0.
(왼쪽) 원숭이 두창이 최초로 발견된 필리핀원숭이입니다. Wikimedia Commons/Emőke Dénes, File:Em - Macaca fascicularis - 1.jpgCC BY-SA 4.0. (오른쪽) 원숭이 두창의 숙주 중 하나인 아프리카 겨울잠쥐(African dormouse)입니다. Wikimedia Commons/H. Osadnik, File:Graphiurus spec -murinus-1.jpg, CC BY-SA 3.0.

원숭이 두창은 천연두의 사촌격 되는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monkeypox virus)가 일으키는 인수공통 전염병입니다. 1958년 덴마크의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키우던 필리핀원숭이(Macaca fascicularis)에게서 처음 발견되어서 원숭이 두창이란 이름이 붙었어요. 하지만 이런 질병 이름이 으레 그렇듯 사실 원숭이는 원숭이 두창과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다람쥐, 도깨비쥐, 겨울잠쥐 따위의 설치류가 주된 숙주로 알려져 있어요.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킨 사례는 발견 후 12년이 지나 1970년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보고됐습니다.

원숭이 두창의 증상은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더 약합니다. 천연두의 치명률이 30~35%에 이르는 것에 비해, 원숭이 두창의 자연 치명률은 현재 3~6% 정도로 추산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누적 치명률이 0.13%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바이러스이긴 합니다만, 전염성 자체가 코로나19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하다는 차이가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던 대부분의 감염 사태는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을 요리하는 과정에서 생겼다고 추정됩니다.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500명 전후의 감염자만 생기고 사그라들곤 했어요.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사람이 감염된 최초의 사례는 2003년이었는데, 가나에서 수입한 애완용 겨울잠쥐로부터 프레리독이 감염되어 사람한테 넘어왔던 경우였습니다.

(왼쪽) 치명적인 천연두를 일으키는 대두창 바이러스(Variola major)입니다. (오른쪽)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입니다.
(왼쪽) 치명적인 천연두를 일으키는 대두창 바이러스(Variola major)입니다. (오른쪽)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입니다.

그런데 20225, 원숭이 두창이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어 전문가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달리 원숭이 두창은 무증상 전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고, 증상이 발현된 환자들 사이에서도 아주 밀접한 접촉이 있어야만 전파되곤 했습니다. 실제로 2003년의 미국인 감염 사건에서도 감염 경로를 거의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22년의 원숭이 두창은 양상이 조금 달라서,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발병한 원숭이 두창 감염자들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적도 없고, 감염된 동물을 수입한 적도 없고, 환자와 접촉한 적도 없었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감염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이미 어느 정도 전파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생기고 있습니다. 더 심각하게는 무증상 전파가 가능한 돌연변이가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의심도 있고요.

원숭이 두창의 전파 경로를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의심도 있습니다. 기존에는 정글 주변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 주민들이 야생동물을 잡아 조리하는 과정이 주된 감염경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발견된 환자들 중에는 남성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등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들(GBMSM)이 유독 많습니다. 그런데 원숭이 두창은 성병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었어요. 물론 성관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밀접한 접촉이기 때문에 감기도 성관계 과정에서 얼마든지 전파될 수 있긴 합니다. 때문에 아직 전문가들의 의견은 우연히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최초로 감염되었고 알려지지 않은 경로로 천천히 전파되었다쪽이 우세하긴 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파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미 발빠르게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역학조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2022520, 포르투갈 환자의 몸에서 분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이 온라인에 업로드되었어요.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2018~2019년에 나이지리아에서 유행했던 서아프리카 변종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중앙아프리카 변종에 비해 치명률이 낮아서 그나마 다행이지요.

전례 없던 상황이긴 합니다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대부분 코로나19 규모의 대유행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선, R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달리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입니다. DNARNA에 비해 훨씬 돌연변이가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급격한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요.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우연히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퍼져서 천천히 전파되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상황입니다.

한편,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던 코로나19 사태와는 달리 원숭이 두창에는 유효한 백신과 치료제가 이미 개발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천연두바이러스의 사촌격이기 때문에 천연두 백신을 접종받으면 원숭이 두창에 대해서도 85% 정도의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2019년에는 2회 접종받아야 하는 원숭이 두창 백신이 개발되어 당국의 승인을 받기도 했고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워낙 전파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자를 모두 선별해내는 게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때문에 전 인구 집단에 대한 광범위한 백신 접종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하지만 원숭이 두창의 경우 전파 속도도 느리고 감염자 추적도 비교적 쉽기 때문에, 확진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빠르게 백신을 접종하는 포위접종(ring vaccination) 전략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감염병을 상대로 한 싸움에 확실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데다가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던 코로나19 사태 당시에 비해 훨씬 유리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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