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친환경 건설 자재를 향해, 그린 시멘트

2022.04.04 | 조회 1.1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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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시멘트는 아주 일상적인 재료입니다. 건축이나 건설 분야에 직접 종사하지 않더라도 시멘트를 싣고 다니는 레미콘 운반 차량은 언제나 볼 수 있지요. 사족입니다만, 보통 반죽 시멘트를 운반하는 차량을 레미콘이라고 부르는데 레미콘은 사실 미리 배합된 콘크리트(ready-mixed concrete)를 일본식으로 줄인 표현입니다. 레미콘 차량안에 담겨 있는 시멘트 반죽의 이름이 레미콘인 거고, ‘레미콘 차량은 믹서차 혹은 애지테이터(agitator)라고 불립니다.

인간의 대규모 활동이 으레 그렇지만, 시멘트 역시 기후 변화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시멘트 산업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의 약 8%에 해당합니다. 이는 세계 4위의 탄소 배출 국가인 인도의 연간 배출 총량과 비슷한 수준인데요, 시멘트 산업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중국과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3~4위 수준의 탄소를 배출하는 국가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이지요.

이렇게까지 배출량이 많은 것은 일차적으로 시멘트 사용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매년 인류는 한 사람당 530킬로그램에 해당하는 시멘트를 생산하고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 주변의 모든 건물, 다리, 방파제, 항만 따위에는 다 시멘트가 들어갑니다. 사실상 현대 건축의 근간을 떠받치는 재료이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시멘트 생산 공정 자체가 대량의 탄소를 방출하는 화학 반응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멘트는 사용량도 많고 탄소 배출량도 많기 때문에, 시멘트 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기후 변화를 큰 폭으로 늦추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당연히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시멘트의 사용량과 공정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 중이지요.

우선 시멘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봅시다. 시멘트의 주원료는 석회석(limestone)인데, 이 물질은 화학적으로 탄산칼슘(CaCO3)으로 이루어집니다. 석회석을 모래와 함께 섞어서 섭씨 1,400 °의 가마에서 구우면 탄산칼슘이 열에 의해 분해되면서 산화칼슘(CaO)과 이산화탄소(CO2)로 나뉘는데, 이산화탄소는 기체이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산화칼슘만이 남지요. 남은 산화칼슘은 모래의 주성분인 산화규소(SiO2)와 결합하여 규산칼슘(xCaO-SiO2)이라는 물질이 됩니다. 이 과정을 하소(calcination)이라고 합니다.

시멘트 제작 공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이산화탄소 발생기인 셈입니다. 실제로 시멘트 산업에서 발생되는 전체 이산화탄소 중 약 50%가 하소 과정의 화학 반응에서 발생합니다. 35%는 석회석을 굽는 가마를 섭씨 1,400°의 온도로 유지하는 데 소비되지요. 석회석 채석장이나 시멘트 타설 작업, 시멘트를 수송하는 연료 따위를 다 합쳐 보아도 전체 배출량의 15%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시멘트 산업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하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처리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 이산화탄소를 직접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시멘트 그 자체에 주입해 버리는 거예요.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포틀랜드 시멘트는 수경성(hydraulic) 시멘트로 분류됩니다. 수경성이란 물을 섞었을 때 굳어지는 특징을 말합니다. 시멘트 공장에서 제작한 반죽은 믹서차에 담아서 계속 저어주며 공사 현장까지 수송하는데, 현장에서는 이 반죽에 물을 섞어 주면서 시멘트를 굳힙니다. 규산칼슘은 물과 만나면 단단하게 굳으며 수산화칼슘(Ca(OH)2)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지요.

수산화칼슘은 염기성 물질입니다. 그래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가스를 흡수해서 다시 탄산칼슘(CaCO3), 즉 석회석으로 되돌아가는 성질이 있어요. 석회석은 수산화칼슘보다 훨씬 단단한 물질이기 때문에 공사 현장에서 타설한 시멘트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문제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에 불과하고, 시멘트 표면을 통해 조금씩 확산해서는 시멘트 내부까지 단단하게 굳히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기술자들은 하소 공정에서 대량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미리 모아 두었다가 현장에서 타설할 때 시멘트 반죽에 함께 주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자연적으로 노출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시멘트에 섞어줄 수 있고 따라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일부 잡아두는 한편 시멘트의 강도도 높이는 효과가 있지요.

이처럼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시멘트에 섞어 주면 크게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론 탄소배출량 자체를 저감하는 효과입니다. 현재 기술로는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약 5%를 시멘트에 섞어서 저감할 수 있는데, 기술을 더 발전시키면 최대 30%까지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두 번째는 최종적으로 타설된 시멘트의 강도가 강해지면서, 같은 크기의 건물을 만들 때도 더 적은 시멘트를 쓸 수 있다는 겁니다. 현대의 건설 현장에서 시멘트는 보통 철근을 둘러싸서 건물의 강도를 책임지는 뼈대입니다. 당연하지만 더 적은 양의 시멘트를 써서 같은 강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재료를 덜 쓰는 편이 건물 자체의 하중을 관리하기에도 유리하고 건설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겠지요. 시멘트 소비량이 줄어들면 당연히 온실가스의 총 배출량도 감소합니다. 시멘트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이중으로 감소하는 효과를 갖는 거예요.

로마의 판테온도 콘크리트 기술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NikonZ7II, CC BY-SA 4.0.
로마의 판테온도 콘크리트 기술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NikonZ7II, CC BY-SA 4.0.

시멘트는 대단히 오래된 기술입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시멘트는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에서도 사용되었고, 로마 제국은 시멘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2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다리와 건물을 만들었지요. 현대에 널리 사용되는 포틀랜드 시멘트도 19세기 중반에 개발된 기술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200살을 맞는 오래 된 기술입니다.

이렇게 나이 많은 기술은 보통 완전한 수준의 최적화가 이루어져서 더 이상 연구하고 개선할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다가오는 기후 재앙을 늦추기 위해 인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고, 시멘트 산업은 그 중에서도 연구와 개선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비교적 큰 영역으로 보입니다. 환경 친화적인 그린 시멘트가 하루빨리 시장의 지분을 늘려 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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