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부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서는 제6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세 개의 실무그룹이 각각 평가보고서를 발간한 다음 그 내용을 종합하여 2022년 9월에 종합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인데요, 2022년 4월 4일에 제3 실무그룹의 평가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제3 실무그룹의 보고서는 기후 변화의 완화(mitigation) 전략을 다루고 있지요.
완화란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 변화를 막아내기 위한 모든 형태의 활동을 말합니다. 온실가스가 생겨날 수 있는 인류의 활동을 줄이고 개선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되겠지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이미 배출되어 대기를 차지하게 된 온실가스를 다시 붙잡아 어딘가에 격리해 버리는 탄소 제거(carbon removal) 전략도 포함됩니다.
이전에 지구공학(geoengineering)을 다룬 글에서 간단히 언급했습니다만, 탄소 제거 전략은 전통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핵심 전략으로 꼽히지는 않았습니다. 기술 자체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지요. 탄소 배출을 줄이는 과정에서는 기존 산업이 어느 정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탄소 배출을 외면하는 대신 제거 전략에 집중하면서 자국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2년의 IPCC 제3 실무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적극적인 탄소 제거 전략이 없다면 인류는 아주 확실하게 기후 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합니다. 산업화 이전의 온도와 비교해서 평균 온도가 1.5°C 오르는 것은 이미 피할 수 없고, 2°C 상승을 막아내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예요. 코로나19 팬데믹이 직격한 2020년을 제외하고서 인류는 지난 10년간 단 한 해도 빼먹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려 오고 있었거든요.
늘어나기만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추세를 감안하면, 이제 국가 단위의 탄소 제거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그것도 한두 가지 기술에 투자해서 될 일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며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IPCC 제3 실무그룹 보고서의 제언이지요. 앞으로 몇 편의 글에서 다양한 탄소 제거 기술을 다룰 것인데, 여기서는 대략적인 윤곽을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생겨나기도 하고 붙잡히기도 합니다. 지각과 생태계와 대기를 포함한 모든 곳의 탄소 총량은 일정한데, 지각과 생물의 활동에 따라 탄소의 형태가 바뀌며 순환하고 있거든요. 식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서 스스로를 구성하는 바이오매스로 바꾸고, 바다도 이산화탄소를 일부 빨아들여서 깊은 바닷속에 잡아두기도 합니다. 반면 동물은 식물을 먹고 소화시키면서 이산화탄소를 뱉어내고, 죽은 동식물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역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요. 탄소가 여러 단계를 거치며 돌아다니는 이 과정을 ‘탄소 사이클(carbon cycle)’이라고 부릅니다. 탄소 사이클의 여러 항은 대체로 균형이 맞아 왔기 때문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총량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산업화 전까지는요.
산업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획기적인 에너지원을 찾아냈는데, 바로 석유나 석탄처럼 지각 깊숙이 갇혀 있던 화석 연료를 꺼내서 태워 에너지를 얻는 겁니다. 절묘한 균형을 맞추고 돌아가던 탄소 사이클에 갑자기 대량의 탄소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추가된 거예요. 이산화탄소의 발생 원인은 하나 늘어났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산화탄소를 붙잡을 원인이 새로 생겨나지는 않았으니, 탄소 사이클의 균형은 깨지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이제 본격적인 기후 변화로 나타나기 시작한 거고요.
그간 IPCC를 비롯한 기관들에서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인간 활동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면서 탄소 사이클을 깨고 있으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서 조금이라도 사이클을 덜 깨야 한다는 접근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뱉어낸 온실가스의 양이 너무나도 많아서, 앞으로는 단순히 배출을 줄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인 흡수와 격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입니다. 탄소 사이클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항을 추가하자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대기 중으로 한 번 빠져나간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기본적으로 탄소 사이클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인 탄소 사이클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붙잡는 원천은 식물의 광합성이예요. 모든 식물은 잎을 만들고 생장하는 과정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붙잡습니다. 나무를 많이 심어 숲을 만들면 그 숲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붙잡을 겁니다. 이를 인공 조림(artificial afforestation)이라고 합니다.
식물은 지상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에는 다시마를 비롯한 수많은 해조류가 자라고 있는데, 이들은 환경이 잘 맞으면 하루에 60cm씩 성장하는 대단한 생물이예요. 게다가 이 해조류의 일부는 조금씩 뜯어져서 해류를 타고 흘러다니다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심해로 가라앉은 해조류 조각들은 700년 이상 그곳에 갇혀서 올라오지 못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바닷속에 격리됩니다. 최근에는 해조류를 길러서 인공적으로 심해에 빠뜨림으로써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기술의 흐름 역시 살펴보겠습니다.
바다 그 자체를 탄소 저장고로 쓰겠다는 구상도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녹으면 탄산이 되기 때문에 알칼리 수용액에 잘 녹습니다. 만약 바다에 염기성 물질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주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자연스럽게 바다에 녹아 흡수되겠지요. 감람석(olivine) 가루를 바다에 뿌려줘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잡아내겠다는 접근법이지요.
이상의 기법들은 식물이나 해조류, 바다와 같은 자연적인 탄소 저장고를 활용하는 기법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좀 더 적극적인 기법도 있는데, 널리 연구되고 있는 탄소 포집 및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 기술입니다. 시멘트 공장이나 화력발전소에서 생겨나는 이산화탄소를 걸러내고 정제한 다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굳힌 다음 지각 깊은 곳에 주입하여 격리하는 거죠. 이 기법을 더욱 확장하여, 식물성 폐기물을 발전소의 연료로 사용하고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바로 포집하여 즉각 격리하는 형태의 기술도 각광받고 있는데 이는 바이오에너지를 사용한다 하여 BECCS라 불립니다.
이런 방법들은 모두 제각기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류는 여태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주로 해 왔고, 탄소 사이클 자체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는 그렇게 많이 연구되지 않았어요. 실험실 수준에서 괜찮아 보이는 기술이라 하더라도 국제적인 규모로 실시했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고, 이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할 상황까지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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