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햇빛을 막아서 온난화를 멈춘다, 지구공학

2021.08.30 | 조회 2.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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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입니다. 2015년의 파리협정에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산업화 전에 비해 2℃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국가들이 '노력'하자는 합의가 있었지만 글쎄요, 회원국의 온실가스 감축량은 대부분 이 목표치를 달성하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후 대재앙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일부 과학자들은 최근 좀 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지구공학(Geoengineering)인데요, 온실가스가 더 이상 배출되지 않도록 하는 기존 접근법과 달리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없애거나 더 극단적으로는 햇빛이 지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튕겨내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최근에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지구공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후원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발표했는데요, 일단은 어떤 기술인지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왼쪽) 지난 50년간 지역별 온도 변화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지난 50년 동안 더 많이 뜨거워진 지역입니다. 출처: NASA (오른쪽) 온실가스는 태양에서부터 공급된 열이 지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지구의 온도를 점차 올립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Greenhouse-effect-t2.svg, CC BY-SA 4.0
(왼쪽) 지난 50년간 지역별 온도 변화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지난 50년 동안 더 많이 뜨거워진 지역입니다. 출처: NASA (오른쪽) 온실가스는 태양에서부터 공급된 열이 지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지구의 온도를 점차 올립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Greenhouse-effect-t2.svg, CC BY-SA 4.0

산업화 이후 진행 중인 지구 온난화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입니다. 석유나 석탄을 태우면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소와 양을 키우는 목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방출됩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가스는 자신을 때린 빛이 그냥 지나가도록 두지 않고 에너지를 일부 흡수한 다음에 주변으로 흩어놓습니다. 햇빛의 형태로 지구에 열에너지가 들어오면 그 열의 일부는 또 자연스럽게 우주 공간으로 나가 줘야 하는데, 대기 중에 온실가스가 많다면 밖으로 나가던 에너지가 온실가스에 붙잡혀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점차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는 거고요.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진행 중인 지구 온난화는 지구에 들어온 열이 온실가스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해서 생긴 일입니다. 그러면 지구 온난화를 멈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될 텐데요, (1)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2) 지구에 애초에 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지구 공학은 위에서 언급한 원리 두 가지를 아주 적극적으로 채택합니다. (1) 온실가스를 단순히 덜 배출하는 것뿐 아니라 이미 배출한 온실가스를 붙잡아서 어딘가에 가두어 버리는 기법, 그리고 (2) 태양 빛이 애초에 지구에 열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반사해 버리는 기법입니다. 1번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2번은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요? 아래 그림을 보시면 좀 더 이해가 될 겁니다.

(왼쪽) 태양복사관리 기법의 개요. 출처: Wikimedia Commons/Hughhunt, SPICE_SRM_overview.jpg, CC BY-SA 3.0 (가운데) 1991년의 피나투보 화산의 대폭발 장면입니다. 이 폭발의 영향으로 1991~1993년의 지구 평균 온도는 약 0.5°C 감소했습니다. 출처: USGS, Public Domain (오른쪽)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당시의 사진으로, 화산재 입자가 하늘을 가득 메워서 뿌옇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Tom Blackwell, https://www.flickr.com/photos/tjblackwell/4526300789/, CC BY-NC 2.0
(왼쪽) 태양복사관리 기법의 개요. 출처: Wikimedia Commons/Hughhunt, SPICE_SRM_overview.jpg, CC BY-SA 3.0 (가운데) 1991년의 피나투보 화산의 대폭발 장면입니다. 이 폭발의 영향으로 1991~1993년의 지구 평균 온도는 약 0.5°C 감소했습니다. 출처: USGS, Public Domain (오른쪽)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당시의 사진으로, 화산재 입자가 하늘을 가득 메워서 뿌옇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Tom Blackwell, https://www.flickr.com/photos/tjblackwell/4526300789/, CC BY-NC 2.0

위의 1번 그림 가운데에 풍선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서 흰 구름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지요? 이 구름은 인공적으로 성층권에 분사된 이산화황 에어로졸인데, 햇빛을 반사하는 효율이 높은 물질입니다. 성층권에 반사율이 높은 에어로졸을 대량으로 살포하면 햇빛이 지표면에 아예 도달하지 못할 테니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컨셉이지요. 이런 형태의 지구공학 기법을 특별히 태양지구공학(solar geoengineering), 혹은 태양복사관리(solar radiation management)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태양지구공학 기술은 화산 폭발에서 영감을 얻은 기법입니다. 대규모의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 거기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대기 중으로 흩어지면서 햇빛을 가리는데요, 이때 좁게는 화산 근처 지역, 넓게는 전 세계의 기온이나 기후가 일시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1991년의 피나투보 화산 대폭발 당시에는 무려 4년 동안 전 세계의 평균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도 했어요.

전통적인 지구 온난화 방지책은 온실가스의 배출 자체를 줄이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지요.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전통적인 석탄·석유 산업을 강하게 규제하거나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보조금을 주는 등 다양한 기술적 혁신이 필요한데, 당연히 이런 모든 일에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겠지요.

각국 정부 입장에서는 남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해서 지구온난화는 막아 주고, 우리는 화석 연료를 계속 태우는 상황이 제일 이득이에요. 문제는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온실가스 감축 현황이 영 지지부진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온실가스 감축만으로는 지구 온난화가 더 진행하지 않게만 할 수 있고,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어찌하긴 어렵습니다. 더 이상 기후 변화를 돌이킬 수 없게 되는 '티핑 포인트'가 아주 가까이 다가왔거나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태양지구공학은 아예 지구로 유입되는 에너지를 줄여버리는 기술이기 때문에, 상당히 빠르고 효과적으로 기후변화를 역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지구로 공급되는 태양 에너지 자체를 줄여버린다면 당연히 온실가스가 아무리 많더라도 기온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겠지요. 비용과 시간이 비교적 적게 드는 편인 데다가, 전 세계적인 협력이 없더라고 소수 국가의 합의만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렇다면 지구공학은 마냥 희망적이고 아무 위험이 없는 꿈의 기술인 걸까요? 설명을 읽으며 눈치챈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지구공학은 너무 위험하다고, 혹은 아직은 너무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영상을 하나 볼게요.

태양지구공학 기술의 문제점이 아주 잘 정리된 영상입니다. 영상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정부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하버드 대학교 데이비드 키스(David Keith) 교수도 "태양지구공학은 온실가스 감축의 보조 수단이지, 대체 수단이 아닙니다."라고 아주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지구공학 기술이 너무 주목을 많이 받다 보면, 온실가스를 줄이기는커녕 경제적 목적으로 탄소와 석유를 더 많이 태우게 될 수도 있어요. '어차피 기후 변화는 지구공학으로 막으면 되잖아?'라고 주장하면서요.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듯이, 미국 국립과학원은 최근에 태양지구공학 기술을 정부에서 후원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이 보고서를 발표한 이유도 재미있는데요, 바로 트럼프 정부가 이 기술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트럼프 정부는 안 그래도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데다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면 얼씨구나 하고 그 기술을 이용해서 자국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고 했을 테지요. 반면 바이든 정부는 과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런 제안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2.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은 정치적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다.

위에서는 지구공학의 장점으로 소수 국가의 힘으로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단점이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키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략 연간 10조 원 정도의 비용으로 지구관리공학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 비용이면 미국을 포함한 몇 강대국이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지구공학의 영향으로 기온이 떨어지는 효과는 전 세계가 느끼게 될 거예요. 성층권의 기류 흐름이나 각 지역의 기후 특성과 맞물려서 지구공학의 효과가 어떤 지역에서는 아주 이상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강수량이 급감할 수도 있고,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추워져서 농업에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지요. 갑자기 수많은 난민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정치적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요?

3. 너무 불확실성이 많은 기술이다.

간단히 언급했지만, 역시 태양지구공학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까지 지구공학의 결과를 예상한 연구는 대부분 (1) 기후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의존하거나, (2) 과거의 화산 폭발 자료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는 수많은 가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실제 상황을 100% 모사할 수는 없고, 화산 폭발은 일회성 사건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에어로졸을 뿌릴 것을 상정하는 지구공학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지요.

무엇보다 태양 빛은 지구에 열만 공급해 주는 게 아닙니다. 당장 식물의 광합성에는 태양 빛이 필수적이잖아요? 그런데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뿌려서 태양 빛을 일부 차단해 버리면, 식물의 광합성 효율이 어떻게 바뀔지 짐작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당연히 전 지구적인 생태계에 굉장히 복잡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요.

결국은 아직 한참 더 연구를 해 봐야 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지구공학 기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당장 에어로졸을 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연구를 확대해서 구체적인 효과를 분석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기기에는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지구공학 기법의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위험성이 관리 가능한 범위에 들어온다는 확신을 얻고 나면, 지구공학 기술은 분명 기후변화를 막아낼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기술이 될 겁니다. 하지만 충분한 연구 없이 무작정 강행했다가 오히려 지금까지 보다도 훨씬 격렬한 기후 대격변을 맞게 된다면 끔찍한 재앙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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