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의 과학기술〉을 연재 중인 여원입니다. 한동안 뉴스레터를 쉬고 있었는데요, 이번 주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에 정기 뉴스레터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2022년 첫 글에서는 마다가스카르의 마스코트, 여우원숭이의 노래를 다뤄 볼게요.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여우원숭이는 오직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만 서식하는 영장류의 일종입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과 긴 꼬리가 여우를 닮아서 여우원숭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마다가스카르 섬에 100여 종의 여우원숭이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가장 큰 종인 인드리 여우원숭이도 최대 10kg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동물입니다. 종마다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어서 마다가스카르 섬의 마스코트나 마찬가지예요. 유명한 사례로는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줄리언 대왕이 있지요.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의 필명 “여원”은 여우원숭이에서 따 와서 지었습니다.
원숭이와 인간이 갈라지고 진화해 온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여우원숭이는 조금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여우원숭이의 고향인 마다가스카르는 8천만 년 전에 대륙으로부터 분리되어 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우원숭이의 조상은 약 6천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먼 과거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마다가스카르 해안 방향으로 해류가 흘렀기 때문에, 작은 원숭이가 해류에 휩쓸려 마다가스카르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파도에 실려 마다가스카르까지 떠밀려 간 불운한 원숭이들이 오늘날 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의 시조가 된 거죠. 2천만 년 전쯤 해류의 방향이 바뀌어서 더 이상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포유동물이 넘어갈 수 없게 되었고, 여우원숭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원숭이들과 갈라져 독자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여우원숭이는 영장목 동물들 중 인간과 가장 먼 친척입니다. 인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가장 “원시적인” 영장류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영장류 중 지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둥, 마다가스카르엔 뱀이 많지 않아서 복잡한 지능을 진화시킬 유인이 없었다는 둥 하는 모욕적인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 연구진이 2021년 10월 25일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여우원숭이는 영장류 동물 중 인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르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훨씬 가까운 침팬지나 오랑우탄도 리듬 감각이 없기 때문에 음악이야말로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가장 원시적인 영장류”인 여우원숭이가 뜻밖에도 홀로이 음악을 하고 있었던 거죠.
물론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하는 생물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듣고 거기서 음악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일은 잘 없지요. 리듬이 없기 때문인데요, 리듬은 특정한 길이를 갖고 반복되는 소리를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와 노래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리듬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똑같은 문장이더라도 특정한 비트에 맞추어,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단어를 뱉어내면 음악처럼 들리는 거죠. 음조를 전혀 붙이지 않더라도, 규칙적인 글자 수가 반복되는 시는 리듬감이 있기에 음악처럼 들립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요.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드리 원숭이(Indri indri)입니다. 인드리는 마다가스카르의 밀림 깊은 곳, 키 큰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나팔 같은 소리를 내며 우는 여우원숭이입니다. 멀리서도 들리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는 덕분에 울음소리를 듣기는 쉬워도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모습을 눈으로 관찰하기는 어렵지요. 때문에 현지에서는 ‘숲속의 유령’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인드리는 소규모의 무리 생활을 하고, 자기들끼리 노랫소리로 소통합니다. 워낙 목청이 좋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가족 구성원을 부르는 데에도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들은 원숭이는 화답하여 합창을 하곤 하는데, 연구진이 바로 이 합창에서 리듬과 패턴을 찾아낸 거죠.
동물이 부르는 노래에 리듬이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토리노 대학 연구진은 무려 12년 동안 비와 이슬을 맞으며 마다가스카르의 밀림을 누비면서 여러 인드리 가족의 노래를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인드리의 노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찾아냈는데요, 인드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박자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그림 위쪽에 검정색 굵은 선으로 표현된 부분이 인드리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입니다. 4분의 4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다섯 번 지른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여기서 연구자들이 측정한 것은 각 ‘소리 지르기’가 시작되는 지점 사이의 간격입니다. 매번 지르는 소리가 1초의 간격을 두고 있지요. 음 사이의 간격이 변하지 않고, 계속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런 박자를 1:1 리듬이라고 부릅니다. 일정한 드럼 박자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인드리의 노래 박자에는 이것 말고도 한 종류가 더 있었습니다.
이 패턴은 1:2 리듬입니다. 1초짜리 짧은 간격 두 개와 2초짜리 긴 간격 한 개로 이루어진 박자이지요. 영국 밴드 퀸의 명곡 〈We Will Rock You〉를 생각해 보세요. 인드리는 1:1 리듬과 1:2 리듬에 맞추어 노래하며 서로의 위치를 알리고 의사소통하는 겁니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의문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인드리의 노래를 12년 동안 반복해서 들은 바람에 없는 패턴도 있다고 착각하게 된 거 아닐까?” 우리 강아지한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견주들처럼요. 여우원숭이가 박자를 맞추어 노래한다는 주장만으로는 학술지에 투고할 수 없기에, 연구진은 인드리의 노래를 녹음하여 통계적인 시험도 곁들였습니다. “인드리는 아무 박자 없이 노래를 부르는데 우연히 1:1이나 1:2의 패턴이 얻어걸린 것 뿐이다”라는 가설과, “인드리는 1:1과 1:2의 패턴을 실제로 겨냥하여 노래를 부른다”라는 두 가지 가설의 통계적 가능성을 비교해 보았더니 압도적으로 두 번째 가설의 확률이 높게 나타났지요. 지금까지 이러한 통계적 시험을 통과한 영장류는 인간 외에는 하나도 없었고, 새 중에도 나이팅게일 한 종만이 1:1 박자 시험을 통과했을 뿐입니다. 인드리는 말 그대로 “리듬을 타는 최초의 영장류”입니다.
인드리의 리듬 감각은 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우원숭이는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진화적으로 거리가 먼 생물입니다. 여우원숭이는 거의 8천만 년 전에 인간과 갈라섰어요. 침팬지나 오랑우탄처럼 인간과 더 가까운 유인원들은 정작 리듬에 맞추어 노래하지 않습니다. 즉 리듬에 맞추어 노래하는 능력은 우리가 여우원숭이와의 공통 조상에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여우원숭이가 서로 다른 진화를 거치는 동안 두 종에게서 독립적으로 나타난 현상인 거예요.
이런 현상을 수렴진화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참새의 날개는 앞다리가 변형되어서 만들어졌지만 잠자리의 날개는 피부가 변형된 결과입니다. 참새와 잠자리가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진화했음에도 하늘을 날기 위해 같은 기능을 하는 날개를 만들어낸 것처럼, 인간과 여우원숭이는 노래하는 능력을 공통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어떤 필요에 의해서 리듬에 맞추어 노래하는 능력을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시킨 거죠. 인드리는 물론이고 우리 인간이 왜 음악을 듣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지는 아직 모르긴 하지만요.
우리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래서 다른 동물들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을 거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인간은 생물 진화의 특이점이어서 다른 어떤 동물에게도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지요. 복잡한 사회생활, 도구의 사용, 언어 체계, 리듬에 대한 감각 등이 그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동물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가 쌓여 가면서 이런 사람 같은 기술을 갖춘 동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결국 인간도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난 종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지요. 여건과 환경이 조금만 달랐다면 우리의 처지는 우림 속의 원숭이 사촌들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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