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제 우리의 일상과 직업 생활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반드시 거창하고 복잡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AI가 아니더라도 과거의 패턴을 이용해서 자동화된 응답을 하는 기계라면 낮은 수준의 AI라고 부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스마트폰이나 PC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요즘은 세탁기나 냉장고에도 AI 기술을 썼다고 광고를 많이 하고 있지요.
구인·구직, 채용 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규모를 갖춘 기업의 채용 절차는 여러 단계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AI가 개입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 아직 AI가 최종적인 입사 결정을 내리는 위치까지 간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특히 해외에서는 초기 단계에서 서류와 스펙만 보고 지원자를 '솎아내는'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쟁률이 치열한 회사라면 더욱, 면접관들이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모두 읽어보고 모든 지원자를 면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AI에 의존하는 비율이 더 높을 테고요. 해외 대기업 취직을 노린다면 아마 AI 이력서 검토용 로봇을 통과해야만 인간 면접관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복잡한 AI는 소위 블랙박스라고 해서, 내부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지 짐작하는 것이 전문가들에게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자기소개서를 집어넣으면 채용 점수만이 출력되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시커먼 상자인 거죠. AI 면접관에게 이 사람이 왜 이런 점수를 얻었는지 물어봐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구직자는 답답할 수밖에요.
AI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마다 사정이 다를 거고, 물론 구직자마다도 사정이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AI 면접관을 통과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적용할 만한 팁이 있을까요? 얼마 전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는 "AI 면접관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그 내용을 토대로 한 "AI가 사랑하는 이력서 쓰기"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에서 소개한 네 개의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1.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쓸 것.
만약 지원하는 회사에 AI 채용 절차가 들어 있다면 십중팔구는 이력서 검토용 로봇일 겁니다. 이력서에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지원자의 '하드 스킬(hard skill)', 즉 지원자가 어떤 기술적인 역량을 갖고 있으며 왜 그 직위에 적합한지를 설명하는 정보이지요. 대개 이력서를 검토하는 AI는 지원자의 자기소개 항목보다는 그가 갖춘 하드 스킬이 어떤 것인지를 유심히 보게 됩니다. 그쪽이 알고리즘으로 처리하기 훨씬 쉽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지역 기반 채용정보업체인 ZipRecruiter의 이안 시겔 CEO는 이력서의 기술적 역량 부분을 쓸 때,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화려한 포맷, 복잡하고 정교한 문장을 썼다가 AI가 그 부분을 독해하지 못하면 자격증이나 경력이 누락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자격증의 취득 시기, 일련번호, 급수와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잘 학습된 AI라면 그런 정보를 따로 추출하여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을 테니까요.
국내 사정도 비슷합니다. 자기소개서 분석 AI를 채용 절차에 활용한다고 밝힌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직무나 인재상의 적합도를 키워드 중심으로 활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어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력서의 글 전체를 종합적으로 인식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수준에는 아직 오지 못했을 테고, 인사담당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쪽이겠지요. 따라서 AI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키워드 중심의 단순한 문장구조를 쓰는 편이 AI 면접관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데 유리할 겁니다.
더불어, 자격요건이 여럿 있는 일자리에 지원할 때 설령 그 요건을 100%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단 지원해 보라고 합니다. 어차피 AI가 판단을 내린다면 지원해서 손해 볼 것도 없다는 이야기지요. 채용공고에 나와 있는 요건과 실제 채용 기준이 다른 경우도 드물지 않으니까요.
2. 여러 가지 버전의 이력서 만들기.
AI를 겨냥해서 간결하고 단순하고 키워드가 반복되는 자기소개서를 쓰면 굉장히 지루한 글이 되곤 합니다. 이런 글은 AI 면접관을 통과하기는 쉬워지지만 인간 면접관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이런 경우에 대비해, 뉴욕대학교 커리어센터의 그레이시 사키시안 이사는 여러 버전의 자기소개서를, 특히 AI 면접용 버전과 인간 면접관용 버전을 따로 만들어 두라고 권합니다.
한국에서와 같은 대규모 공채 환경에서는 어렵겠지만, 해외에서는 채용 프로세스 도중에 인사담당자와 연락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AI 단계를 통과한 후에 인사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이력서를 교체할 수 있다는 거죠. 사람이 보기에 가독성 좋고 내용이 풍부한 이력서를 보낸다면 AI 단계 이후의 절차를 통과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3. AI 툴을 구할 수 있다면 실제로 테스트해볼 것.
기계학습 기반의 AI는 사용자는 물론 개발자도 그 판단 기준을 알아내기 어려운 블랙박스입니다만, 여러 가지 자기소개서를 AI에 넣어 보고 어떤 결과가 출력되는지 확인해 보면서 큰 틀에서의 작동 원리는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스타일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이것저것 AI에 입력해 줬을 때 AI가 어떤 평가를 보이는지 여러 차례 실험하다 보면 AI가 어떤 것을 선호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는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계속 실험하다 보면 어떤 스타일을 AI가 좋아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감을 잡을 수 있게 될 겁니다.
4. 가상 면접: 연습을 많이 할 것.
AI 채용의 최종 관문은 역시 면접입니다. 구직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도 가상 면접인데요, 대개의 경우 화면 저쪽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고 프로그램이 뱉어내는 지시만을 따라서 길게는 2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제를 풀고 말을 해야 하니 어색하고 지치는 과정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으로 비대면 및 가상 면접이 확대되는 와중에, 구직자들은 대부분 비대면 면접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는 조사도 있지요.
결국 연습만이 살길입니다. 취준생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인사팀 직원과의 면접도 연습을 많이 하지 않던가요? 해당 회사의 인재상이 무엇인지, 어떤 직군에 지원했는지, 업계의 트렌드를 잘 숙지하고 있는지 모여서 스터디도 하고 자료 조사도 많이 합니다. 여기에 투자하는 만큼 가상 면접에 특화된 연습도 해야 한다는 거죠.
사키시안 이사는 AI 면접도 리허설을 많이 해 봐서 그 환경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람 얼굴 하나 안 나오는 텅 빈 화면을 쳐다보면서 2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그런 활동에 익숙하지 않다면 더욱 불안할 테니 실수하기도 쉬워집니다. (장시간의 AI 면접을 도입하는 이유가 사실 여기 있겠지요.) 사키시안 이사를 직접 인용하자면, AI 면접 역시 "연습할 수 있는 일이고, 더 많이 연습할 수록 더 잘 하게 될" 테니 일정 비용을 내는 경우가 있더라도 AI 면접의 특수한 환경 자체에 익숙해지면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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