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주 개발은 정말로 비즈니스의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미국 정부가 주도해서 거의 군사적·과학적 용도로만 우주 사업이 진행되던 과거와 달리 민간 기업이 대규모 자본 투자도 받고 실제 계약도 따내면서 나름의 경제적 생태계를 이루어가고 있으니까요. 선발주자 스페이스X를 예로 들어 보면 아르테미스 계획에 로켓을 공급한다거나, 민간인의 달 관광 상품을 만든다거나 하면서 적극적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업이 매출을 올린다는 건 그에 걸맞은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스페이스X 외에도 여러 스타트업이 설립되고 자본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시장이 크다는 뜻이겠지요? 가장 중요한 시장은 인공위성 발사 대행업인데요, 이전에 뉴질랜드의 '로켓 랩(Rocket Lab)'을 소개한 글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인공위성 발사 시장은 점점 규모의 경제를 갖춰 가는 중입니다. 발사 수요가 늘어나니까 여러 기업이 경쟁하며 로켓 발사의 공급을 늘리고 있고, 그러다 보니 가격이 낮아져서 더 저렴하게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게 되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식으로요. 이제는 아예 수백, 수천 개의 인공위성을 묶어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버리는 '인공위성 메가군집(satellite mega-constellation)'이라는 기술까지 준비되는 와중입니다.
그간 인공위성 발사 대행업의 주류는 일종의 '위성 합승 서비스(satellite rideshare)'였어요. 우선 인공위성을 100개쯤 쏠 수 있는 커다란 로켓을 만들어서 발사 일정과 궤도를 공지합니다. 그리고 이 로켓의 '좌석'을 판매하는 거죠. 인공위성 한 개를 올리고 싶은 고객은 한 자리를, 열 개를 올리고 싶은 고객은 열 자리를 예약하는 겁니다. 마치 택시를 합승하는 것처럼, 저렴한 비용에 많은 위성을 궤도로 올려보내는 거예요.
하지만 오늘 소개해 드릴 스타트업 "팬텀 스페이스(Phantom Space)"는 이 주류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형 로켓에 여러 고객을 실어서 한 번에 발사하는 게 아니라, 고객을 위해 커스텀 제작된 소형 로켓을 여러 번 발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자세한 기사가 실렸는데요,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스페이스X는 2002년에 설립된, 이쪽 업계에서는 원로 격인 기업입니다. 스페이스X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대부분의 로켓 기술이 미국 국방 산업 쪽으로 엮여 있었고 민간 기업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스페이스X는 창립자 일론 머스크의 자금력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서 거의 모든 로켓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도박을 했습니다. 엄청난 적자를 내면서 버티다가 이제 업계 선두가 되었죠.
반면, 팬텀 스페이스는 훨씬 후발주자이고 이제 로켓 부품은 '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엔진, 로켓 설계, 반도체 부품 같은 것들을 기존 업체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팬텀 스페이스는 이것들을 모두 직접 개발하는 대신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사 버리는 전략을 택합니다. 생산 설비의 대부분을 외주로 주니까 로켓 제작 속도가 빨라지고 대량생산도 쉬워지겠지요.
물론 이렇게 부품을 아웃소싱해서 제작한 로켓의 생산 단가는 전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비쌀 거예요. 로켓의 개당 단가가 비싸지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상품'인 로켓 발사 비용도 올려잡아야 수지가 맞겠지요? 그래서 팬텀 스페이스는 기존 인공위성 발사 대행업 시장의 빈틈을 노립니다. 바로 합승형 로켓이 아닌, 개인별 커스텀 로켓을 판매하는 거죠.
위성 합승 서비스는 2차 탑재(secondary payload)라고도 부릅니다. 스페이스X의 합승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하면, 최대 830kg의 화물을 60개까지 실어올릴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X는 약 4개월에 한 번씩 팔콘9 로켓을 발사해서 인공위성에 올려보내지요. 경우에 따라 1회 발사당 100만 달러(약 11억 원) 정도까지 가격이 나온다고 해요.
하지만 합승 서비스는 마치 기차처럼 사전에 정해진 궤도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서 가기 때문에, 내가 올려보내고 싶은 시간이나 위치가 따로 있다면 좀 곤란합니다. 궤도상에 올라가 있는 인공위성을 교체하고 싶은데 스페이스X의 로켓이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인공위성에 별도의 추력 장치를 달아서 목적지까지 천천히 이동한다거나 하는 별도의 조작을 해야겠지요.
팬텀 스페이스에서 노리는 시장의 틈이 여기 있습니다. 기존 발사 프로그램과는 목적지가 너무 다르다거나, 화물의 크기가 합승 서비스 로켓의 규격에 맞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특수한 기술 장치를 실험하고 싶은 등 커스텀 로켓 발사에 대한 수요가 분명 있을 거라는 거예요.
게다가 팬텀 스페이스는 로켓 제작 공정을 단순화하고 빠르게 만드는 것도 목표하기 때문에 연간 발사 횟수를 100회 정도까지 잡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규 발사 일정 외에도 고객이 원하는 타이밍에 발사하는 것도 커스텀 설정에 포함할 수 있을 테지요. 같은 무게의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가격은 물론 합승 서비스에 비해 높아지겠지만, 합승 프로그램에서 제공할 수 없는 이점을 함께 주겠다는 겁니다.
팬텀의 포트폴리오에는 450kg을 실을 수 있는 중형 로켓 데이토나(Daytona), 그리고 1,200kg을 실을 수 있는 대형 로켓 라구나(Laguna)가 있습니다. 1회 발사 비용은 데이토나가 400만 달러, 라구나가 80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네요. 확실히 스페이스X의 100만 달러에 비하면 비싼 비용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입이 떡 벌어지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도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희망찬 이야기지만 사실 팬텀 스페이스는 아직 로켓을 궤도에 진입시켜 본 경험이 없어요. 데이토나 로켓의 최초 발사 예정은 2023년입니다. 그러니까 팬텀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로켓 포트폴리오는 아직은 계획 단계인 거예요. 당장 2006년에 최초 발사를 했던 로켓 랩과 비교해 봐도 격차가 좀 있긴 합니다. 그래도 로켓 기술 시장이 갈수록 성숙하고 있는 와중에, 팬텀의 로켓은 기성 제품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만큼 시장에 자리를 잡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릴 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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