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채식하시나요? 저는 플렉시테리언(간헐적 채식주의자)을 지향하고는 있는데 그렇게 성실한 채식주의자는 되지 못해서 약간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채식 메뉴가 너무 부족한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메뉴 선택이 제한되는 것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고기 맛을 좋아해서 포기하기 어려운 점도 큽니다. 이런 사람들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르타 자라스카의 책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왜 사람들이 고기를 끊지 못하는지 생물학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을 들어서 분석하는 책입니다. 많은 논의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모든 사람이 완전한 비건 지향 생활을 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사람이 고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수많은 요인의 네트워크가 너무 강력해서 일시에 끊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채식을 지향해야 하는, 혹은 적어도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물론 이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이유지만요). 1960년대쯤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공장식 축산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흔히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하면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를 꼽지만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양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계산 방식에 따라 범위가 많이 달라지긴 합니다만, 햄버거 한 개를 먹을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자동차를 약 500㎞ 운전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비슷하다고 해요. 아래 그림을 보실까요?
그림 제일 위쪽의, 압도적으로 커다란 막대그래프가 육용 쇠고기 1㎏을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당량입니다. 이어서 양고기, 치즈, 젖소 순으로 이어지는데요,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은 살아가면서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특히 많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식물성 식자재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주 적지요. 심지어 그림 제일 아래쪽의 견과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오히려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은 단순히 탄소 배출량이 많은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시설을 만드는 데 녹지를 파괴하기 때문에 더 환경에 나쁩니다. 위의 그림을 보시면 예상치 못했던 항목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양식 새우(farmed prawn)의 탄소 배출량이 돼지고기보다도 많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새우 양식장은 동남아시아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맹그로브 숲을 밀어버리고 새우 양식장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동물성 식자재의 소비를 줄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당장에 많은 사람들이 획기적으로 채식 지향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긴 세월에 거쳐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 나간다면 성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기후변화가 당장 코앞에 닥친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좀 다른 접근법을 찾고 있습니다. 고기를 줄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탄소 배출량이 적으면서도 고기와 똑같은 맛을 내는 식품을 만들어서 파는 방향이지요. 바로 '대체육' 시장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위의 사진의 오른쪽은 제가 2019년에 미국에서 먹어 본 '임파서블 버거'입니다. (정작 버거가 잘 안 찍히긴 했지만요) 임파서블 버거는 미국의 대체육 기업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의 주력 상품인데요, '피 흘리는 비건 버거'로 유명합니다. 제가 먹었던 저 버거는 실제로 쇠고기 패티 맛이 굉장히 그럴듯하게 났어요. 게다가 콩고기 패티 주제에 스테이크마냥 레어, 미디엄, 웰던으로 굽기를 고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미디엄으로 주문했는데 레어를 주문해서 정말로 피를 흘리는지 확인해 볼 걸 그랬어요.
임파서블 푸드는 '쇠고기보다 더 쇠고기 같다(Beefier than Beef)'를 슬로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임파서블 푸드의 창업주는 스탠퍼드 대학의 생화학 교수였던 패트릭 브라운(Patrick O. Brown)인데요, 그는 사람들의 육류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경 운동과 캠페인으로는 부족하고 고기의 만족감을 충분히 줄 수 있는 대체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2011년에 창업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콩고기를 드셔 보셨나요? 요즘 나오는 콩고기는 대충 고기스러운 식감을 내기는 하지만 고기라고 하기에는 감칠맛이 부족하지요? 브라운은 이것이 '콩에는 피가 없기 때문', 즉 콩고기에는 육즙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성 피'를 만들어서 콩고기에 섞어 주면 좀 더 고기 같은 맛이 나겠지요. 브라운은 '피 맛'을 내는 핵심 성분이 헴(heme) 단백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헴 단백질은 동물의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이기도 하고, 피를 빨갛게 만드는 색소이기도 합니다. 브라운은 임파서블 푸드의 창업을 준비하면서 식물성 소재에서 헴 단백질을 합성하고 추출하여 콩고기에 섞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질감과 맛을 내기 위해서는 코코넛 오일을 섞었고요. 그 결과 콩고기 패티를 넣은 임파서블 버거가 탄생한 겁니다.
당연하지만 임파서블 푸드의 제품은 토마호크 스테이크의 모양과 질감까지 흉내 내는 수준은 아닙니다. 햄버거 패티는 쇠고기를 갈아서 만들기 때문에 동물성 고기나 지방의 아주 상세한 디테일을 재현하지 못하더라도 따라 할 만 하니까 이런 제품화가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그래도 타 경쟁사에 비하면 '맛'의 측면에서 상당히 앞선 업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공육의 다른 흐름은 배양육(cultured meat)입니다. 동물을 키우고 도축해서 얻는 고기가 아니라 시험관 같은 곳에서 인공적으로 배양되는 고기인데요, 그래서 인 비트로(in vitro) 고기라고도 부르지요. 배양육은 만드는 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이 없다는 점도 좋지만, 공간과 에너지를 크게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입니다. 2011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배양육은 전통 축산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을 적어도 78%, 많게는 96%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해요.
배양육에는 한 가지 장점이 더 있는데요, 바로 '고기 맛'을 인공적으로 내는 기술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건 그냥 고기니까요! 지금의 배양육은 보통 줄기세포의 분화를 이용합니다. 줄기세포는 위 그림의 오른쪽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특수한 세포입니다. 커다란 탱크에 줄기세포를 넣어 주고,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적절하게' 관리해 주면 거기서 고기 조각이 만들어지는 거죠.
다만 배양육 산업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거예요. 2013년에 최초의 배양육 패티를 만드는 데는 무려 3억 원이 들었고요, 지금은 가격이 상당히 많이 내려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1㎏에 수십만 원 정도 가격입니다. 배양육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용액인 배지(media)가 비싸거든요.
요약하자면 대체육 시장에는 크게 두 개의 흐름이 있는 셈이지요. 첫째, 콩고기는 값싸게 대량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아직 실제 고기의 맛과 질감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합니다. 둘째, 배양육은 말 그대로 실제 고기를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너무 비쌉니다. 그래서 요즘 시장에서 제안한 해결책은, 바로 둘을 섞어서 내놓는 겁니다.
2020년 12월 18일에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는 '블렌딩 배양육'을 다룬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아르테미스 푸드(Artemys Foods)가 주인공입니다. 아르테미스는 배양육과 콩고기를 혼합한 인공 고기를 만드는 업체인데요, 배양육에 '자연스럽게' 들어 있는 육즙과 지방 성분으로 고기의 맛과 질감을 내고, 어느 정도 고기 맛을 흉내 내는 저렴한 콩고기를 섞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혼합 인공육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의외로 3D 프린터 기술이 중요하게 작용했는데요, 배양 고기와 배양 지방, 콩고기를 잘 섞어서 소비자의 입맛에 이상하지 않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는 것보다 3D 프린터로 적당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편이 더 좋다고 하네요.
블렌딩 인공육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시장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KFC는 2021년 중으로 배양 닭고기 20%와 콩고기 80%를 혼합한 치킨 너겟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롯데리아나 버거킹을 중심으로 식물성 버거 상품을 팔기 시작했지요?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빠른 흐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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