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러스 인터뷰

미국 이민, 40대 퇴사… 선택의 순간마다 ‘나다운 결정’을 하는 법

‘버티느냐, 버리느냐’ 퇴사/이직 하기 전 되새겨야 할  커리어 조언 5가지

2024.08.19 | 조회 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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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러스 다이어리

스텔러스 창업자|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40대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요즘, 종종 위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두고 크게 3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까닭입니다. 

  • 기대감 : 앞으로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걱정 : 앞으로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막막함 : 앞으로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과 막막함은 약간 다른 결의 감정입니다.

걱정은 말 그대로 불확실한 미래, 먹고 사는 문제, 진로와 방향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막막함은 번아웃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삶을 40대에도, 50대에도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럴 수 있을까 까마득한 겁니다. 사는 게 고단해서 막막해지는 거죠. 그러니 막막함이야말로 기대감의 반대 지점에 있는 감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40대에 내로라 하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무작정 쉬기로 결심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출처 : 한기용
출처 : 한기용

 

책 <실패는 나침반이다>의 한기용 저자는 쉼없이 일한 끝에 43살, 처음으로 기약없는 휴식기를 선택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달리다간 ‘큰일 나겠다’는 막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인터넷 기업 야후를 퇴사한 후 그는 커리어 공백기를 시작했습니다. 계획도 없이, 목표도 없이 일단 나를 추스르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기용 님은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기준을 세웠고, 주변 사람들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며 유데미, 폴리보 같은 초기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지금은 리더십에 관한 강연을 하면서 커리어 코치로 활동하고 있죠. 1000명 넘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를 얻었습니다.

30년 가까이 묵묵히 축적해온 기용 님의 이야기를 <실패는 나침반이다>라는, 하나의 책으로 엮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귀중한 기회이자 경험이었습니다. 

기용 님과는 (책이 나오기 전이었던) 2023년 가을쯤 화상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기용 님이 꾸준히 써왔던 글을 책으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하면서 저는 책의 편집자로 손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기용 님의 이야기는 명료한 맥락을 갖고 있었고, 책으로 만드니 수천 명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4쇄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4쇄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책이 세상에 나온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책의 편집자로서 한 번쯤 질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기용 님도 혹시 막막하셨나요?

책을 편집하는 수개월간 내심 궁금했던 의문이기도 했습니다. 30대에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40대에 야후를 뒤로 하고 커리어 공백을 택했을 때, 이후 ‘나다운 삶을 살겠다’며 다양한 결정을 내렸 때 기용 님은 막막하지 않았을까. 그 막막함을 어떻게 끌어안고 헤쳐왔는지 묻고 싶었어요. 지금 제가 마주한 질문이라 더더욱 그 답변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2024년 8월 역삼의 한 카페에서 기용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에서 기용 님은 커리어 휴식기, 커리어를 괴롭게 하는 고정관념,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 전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해주셨습니다. 50대가 된 기용 님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기사 형태로 다듬어 정리했습니다. 

[오늘의 글 한 눈에 읽기] 인트로 : ‘이대로 일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 1 : 쉬어도 될까? 커리어 휴식기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 2 : 삶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3 : 길어진 커리어 시계,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 변화 3가지 아웃트로 : 일과 삶, 가슴 벅찬 감동이 있는 50대를 맞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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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도 될까?’ 커리어 휴식기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 

 

Q. 기나긴 커리어에 한 번쯤 쉬어가야 한다, 공감하면서도 실천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독 한국이라서 그런 걸까요?

물론 미국에서도 쉬기로 결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일해보면서) 개인적으로 경력 단절이 삶의 일반적인 통과 의례로,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의로든 자의로든 쉴 수 있어요. 오히려 억지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혹은 자녀를 양육하면서 잠깐 커리어를 쉬고 삶 전반에 집중하는 시기가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사회가 건강합니다. 링크드인에도 ‘커리어 브레이크’(휴식기)를 하나의 커리어로 표기해둘 수 있는 것처럼요. 

한 걸음 나아가 해고를 대하는 사회적인 인식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회사가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일하는 시기가 길어지다 보면 한 차례 멈춰야 하는 시점이 오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여러 요소로 경력 휴식기를 가지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Q. 기용 님처럼 휴식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저의 경력 휴식기를 두고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미국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이민을 가셨나요? 창업 팀에 합류했을 때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나요? 1년 가량 갭이어를 가질 때 어떤 계획이 있었나요?’

하지만 3가지 결정을 할 당시에 저에게 명확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갭이어 또한 피곤해서, 갈피를 못 잡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획 없이 일단 쉬기로 결정했던 겁니다. 도리어 모든 걸 계획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내 일과 삶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게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야후 재직 시절 기용 님의 사진, 출처 : 한기용
야후 재직 시절 기용 님의 사진, 출처 : 한기용

 

다만, 커리어 휴식기를 갖고 싶다면 본인의 ‘리스크 참을성’(Risk Tolerance)를 먼저 파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불확실성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평소 라이프 스타일이 저렴(!)한 게 휴식기를 결정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여행 다닐 때마다 비행기 1등석, 최고급 호텔이 반드시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이라면 한 소끔 쉬어가는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죠. 일상을 희생하기 힘드니까요. 역으로, 만약 평소 생활 패턴이 경제적이라면 6개월~1년 잠깐 쉬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Q. 흥미롭네요. 회사를 그만두고 갭이어를 가져야 할 타이밍인지, 아니면 괴롭더라도 지금 버텨야 하는 타이밍인지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본인의 자리에서 버텨낼지, 도망갈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분명 중요합니다. 저도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매니저와 영 맞지 않다는 걸 파악했을 때 빠르게 이직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반면에 희망’이 있다면 한 번 버텨보는 게 맞다고 판단해왔습니다. 

이때 희망은 저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리라 봅니다. 저에게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찮은 것, 우리가 뛰어가는 방향이 맞다는 판단이 (지금의 상황을) 버티는 근거가 됐습니다. 장기적으로 해볼 만하다는 믿음이 있는지, 본인을 다각도에서 객관적으로 고민해보길 권합니다. 

 

Q. 자기 객관화, 이 또한 당연하면서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릴 때 무조건 지금 상황에 대한 아쉬운 점만 부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딘가에 완벽한 곳이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하면 또 다시 실망을 반복할 뿐입니다. 버틸지, 접을지 판단하는 데 균형감을 갖고자 계속 연습해보길 바랍니다. 

 

Q. 결국 완벽하게 쉬어가는 공식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봐야겠네요.

그쵸. 공식은 없어요. 다만 기나긴 커리어 가운데 한 번쯤 훌훌 털고 가는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반드시 회사를 그만두진 않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과 내가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내게 어떤 상처가 있는 살펴보고, 이 상처가 오래 축적돼 왔다면 한 번쯤 보듬고 털어내는 시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결정에는 주변에 지지자(서포터)가 필요해요. 만약에 누구라도 ‘지금 놀 때냐’ 핀잔을 준다면 절대 못 쉬어갈 수 없겠죠. (그래서 좋은 의도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을 모른 채 훈수를 두는 건 그다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못하는 듯합니다.)

기나긴 커리어에서 나를 곁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주변에 서포터를 많이 만들고, 본인 또한 주변의 서포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평판을 쌓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만들면 커리어 휴식기에 생각지 못한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반대로 평판이 나빴던 사람은 덜컥 쉬었다가 다음 스텝을 정하지 못해 낭패를 겪기도 하죠. 그러니 금전적인 여건과 평판을 어느 정도 축적했다면 쉬어갈 타이밍을 생각할 만합니다. 계획을 세우진 않더라도 환경을 조성해두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후 퇴사 후 커리어 휴식기를 거쳐 유데미 초기 멤버로 합류했던 기용 님, 출처 : 한기용
야후 퇴사 후 커리어 휴식기를 거쳐 유데미 초기 멤버로 합류했던 기용 님, 출처 : 한기용

 

삶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Q. 최근 들어 커리어, 리더십 강연과 코칭을 자주 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거나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8월에 한국에서 한 대기업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팀원과의 어려운 대화’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때 제가 강조했던 핵심은 하나였어요. 

‘(팀원과 어려운 대화를 앞두고) 그 대화를 실패하지 않고 한 방에 잘하려 하는 건 가장 좋지 않은 태도다’

 

Q. 오, 정확히 어떤 뜻일까요?

분명 팀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과 쓴 피드백을 하다 보면 팀장도 헤맬 수밖에 없어요. 헌데 이러한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고 어려운 대화 자체를 회피하거나 첫 술에 배부르려는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습니다. 한 번에 대화가 풀리지 않죠. 그러면 “실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재능을 탓하게 됩니다. ‘나는 재능이 없다’며 어려운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패턴을 보이죠.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나는 실패하지 않고 처음부터 잘할 거야’라는 태도는 커리어나 리더십 모두에서 제일 위험한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Q. 완벽주의와 위험(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이러한 잘못된 프레임을 만드는 듯합니다. 

‘공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곤 합니다. 

 

Q.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때로 ‘멘토링 잘하는 법’을 물어보는 연락을 받는데, 저에게는 이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멘토링은 타인에게 해줄 조언이 있어서, 혹은 서포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힐 때가 많습니다. 하다 보니 잘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식이죠. 

그러니 ‘잘하는 법’부터 찾는 건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흥미롭게도 이런 방법론을 물어보는 분들 중에 이제 막 주니어 연차를 벗어난 사회초년생이 적잖았는데요. 어쩌면 이들이 (최대한 실수하지 않고) 공식을 외워서 빨리 멘토가 되고 싶다고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닐까 짐작할 따름입니다. 

 

Q. 결과물은 완벽해야 하고, 누구보다 빨리 무언가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이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안타깝지만 그렇죠. ‘대기업 취업’을 또 다른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분명 큰 기대를 품고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내 커리어를 완성해줄 곳에 드디어 들어왔다는 기대를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 양면이 존재합니다. 이를 간과했다가 회사 생활을 이어가면서 큰 기대만큼 큰 실망에 치우치는 사례가 (꽤나) 많습니다. 

 

실패는 결국 나침반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는 우리들, 출처 : 이오스튜디오
실패는 결국 나침반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는 우리들, 출처 : 이오스튜디오

 

이처럼 (한 방에 해결하겠다는) 조바심과 비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나이에서 비롯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연차마다 정답지가 있다고, 그 나이에 하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지는 합격선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이를 따지고, 또래와 나 자신을 비교하고, 본인이 나이가 너무 많아서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 늦었다고 포기하게 되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이를 덜 신경 쓰면 꽤 많은 문제가 해소됩니다. (또래 집단을 포함해) 남과 나를 덜 비교하게 되고, 실패도 덜 두려워 하게 되죠. 나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답이나 지름길이 있을 것이라는 어림짐작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데 도움을 줍니다.

 

Q.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삶에 정답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고,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걸까요?

일단 평생 직장이 존재하던 세상과 그게 사라진 세상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평생 직장을 다녀본 부모 세대 입장에선 자신이 아는 최선의 조언(대기업에 가거나 전문직이 되라, 한 회사에 오래 다닐 수 있어야 한다)를 하며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평생 직장이 없어진 사회를 마주하며 혼란을 겪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사회나 교육 시스템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는 3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아이들을 미국에서 양육하고 교육시킨 케이스인데요. 설령 한국 교육 시스템이 훨씬 촘촘하게 고도화해 있더라도 한국에 없는 가치가 미국 교육 시스템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확실히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이 많다는 게 이 곳의 장점입니다. 

 

Q. 자유 시간이 많다는 건 어떤 점에서 장점이 될까요?

아이들이 선행 학습을 하거나 과외로 무언가 더 배우진 않지만, 대신에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집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네 인생은 네가 결정할 문제’라면서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 보니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뛰지 않고, 본인 꿈의 크기를 정해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차차 배워가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에 비춰 봤을 때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현격히 적습니다. 이러한 고민이 미뤄지면서 사회에 나서는 자체를 두려워 하는 모습마저 보이기도 하죠. 학업, 군대 문제 등으로 취업이 늦어져 20대 후반~30대 초반에서야 사회 속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혼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겹쳐 진퇴양난에 빠집니다.

정답이 명확하게 정해져있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나이를 따지고 남과 비교하는 기류가 흐르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도전하길 기피합니다. 어찌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반응 같습니다. (나를 고민해보지 못한 채) 조급함과 두려움, 나이에 대한 강박과 비교 심리가 더해져 명확해 보이는 만병통치약을 찾는 경향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Q. 원래도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쉽지 않은데, 여러 요인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된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무작정 ‘노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아예 인센티브(유인)가 잘못 설계돼 있는 겁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할 수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 과거를 답습하도록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 않나 돌아봐야 합니다. 그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는 그 세대의 눈으로 바라봐야죠. 

실제로 지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끼리 만나면 다들 고민이 많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가이드를 줘야 할지 부모 입장에서도 막막한 세상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끼리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것 같으니 그냥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Q. 멘트에서 ‘희망을 버리고 힘내’라고 위로하는 낙관적 허무주의가 떠오르네요😂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도통 모르겠고, 그럴 때는 결국 나 말고 믿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의견이 모였던 겁니다. 정답이 없다면 지금이야말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맞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격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이 됐다고,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꾸준히 커리어 멘토링과 코칭을 진행하는 기용 님, 출처 : 한기용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꾸준히 커리어 멘토링과 코칭을 진행하는 기용 님, 출처 : 한기용

 

길어진 커리어 시계,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 변화’ 3가지 

 

Q. 만약 20대 기용 님으로 회귀할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가장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는 제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 멘토라 부를 만한 존재를 만나지 못 했던 겁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고, 필요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고민했죠. 사실 잠깐 생각하다가 그냥 포기했을 뿐, 진짜로 고민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혼란스러울 때 조언을 구할 롤모델을 주변에서 찾아보려 했을 것 같아요. 내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일과 삶을 살아가는 멘토를 구했다면 분명 큰 도움을 받았겠죠. 젊은 시절에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었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Q. 그렇다면 지금 기용 님을 롤모델로 삼는 요즘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계신가요?

현혹되기가 너무 쉬운 세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나의 장점을 믿어줘도 모자란 인생에, 나를 흔드는 요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나 타인의 행복이 부각되는 소셜미디어에 둘러싸여 그 이면을 간과하고 비교, 조바심, 나이 강박에 사로잡힐 심산이 큽니다. 

단적인 예시로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부캐나 부업이 없으면 뒤처진다’는 착각과 강박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커리어 초반에는 본캐, 부캐를 따지지 말고 하나에 올인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시간이 유한한데 (남들이 부캐를 키운다 해서) 이것저것 동시에 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또 재능을 탓하며 보수적으로, 방어적으로 웅크리게 되죠. 

‘생각보다 잘 안 되네. 역시 내 능력 밖의 일이야.’

 

Q. 이러한 사고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달의 이면, 실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의 이중성을 직시해야죠.

과연 소셜미디어에 보이는 그 사람의 모든 상황을 내가 알고 있을까요? 그 사람이 부캐를 키워 지금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과정을 보지 못하고 좋은 면만 보며 부러워하고 있진 않나요? 내가 자꾸만 열등감을 느끼는 그 사람은 마냥 행복해서 아무 고민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다들 아실 겁니다. 

 

Q. 기용 님의 답변을 곱씹다 보니 다시금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을 체감합니다. 이걸 절로 얻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는 제 50대를 더 긍정적으로 보내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제는 남과 저 자신을 비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20년 전에는 확실히 내 또래를 보며 비교를 많이 했어요. 나보다 잘난 것 같은 사람을 시기하고, 타인이 잘 되는 데 박수 쳐주지 못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헌데 지금 50대에 접어들어선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서로 각자의 삶을 산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남의 호사(기쁜 소식)을 축하할 줄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을 했을까 헤아리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니 과거에 비해 타인을 덜 신경 쓰고 비교하게 됩니다. 

 

Q.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가 핵심인 것 같네요. 하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인 관점을 갖추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장기적인 관점은 결국 나 자신을 믿어주는, 긴 호흡으로 봤을 때 내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것처럼 초반에 좌충우돌을 겪을 뿐, 결국 여러 경험을 통해 내가 나만의 길을 찾으리라는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삶에는 종종 이러한 정신 승리(!)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Q. ‘정신 승리’라는 표현이 재밌네요😆

(나 자신을 돌이켜 보는) 회고에도 정신 승리의(!)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회고를 하면서 나의 장점과 약점을 모두 이해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아쉬운 점 나열하기’로 그칠 수 있거든요. 나쁜 점만 살펴보는 회고는 역설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은 경험이 됩니다. 

그러니 (나의 일과 삶을 되돌아보는) 회고에서 나의 장점을 충분히 나열해서 그걸 발전시키는 방향성을 고민해야 하고, 아쉬운 부분을 되짚어 볼 때는 유체이탈(!) 하듯이 제3자의 시각에서 회고해야 합니다.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는,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회고의 목표가 아니니까요. 

 

Q. 결국 자기 객관화는 무작정 냉정하게 보는 게 아니라 ‘균형 감각’의 영역 같네요. 나를 믿어줘야 장기적으로 균형감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밸런스를 꾸준히 연습한다면)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는다면 실패는 나침반이 될 수 있거든요. 그 경험으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지금이야말로 내가 하고픈 걸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응원해주는 서포터가 주변에 있다면, 롤모델이자 멘토가 돼 줄 누군가 있다면 흔들리기 쉬운 세상에서 굳건하게 가슴 벅찬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출처 : 월간 인재경영
출처 : 월간 인재경영

 

일과 삶 : 가슴 벅찬 감동이 있는 50대를 맞이하려면

 

그때 기용 님도 막막하셨나요?

이 질문, 사실 뻔했습니다. 막막했던 아니던 ‘앞으로 너라면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혹은 나의 막막함을 해결할 특효약이 있지 않을까 내심 바랐던 걸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우리는 치트키가 있다고, 그걸 나만 모른다고 조바심을 내고 있으니까요. 

허나 기용 님과 쭉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금 체감했습니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정답'이 아니라는 걸. 다만 (남이 정해준 답은 없더라도) 적어도 나의 ‘추구미’를 정할 순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올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 내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를 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기용 님의 50대는 그래서 좋은 레퍼런스(참고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질문에 기용 님은 이렇게 답했거든요. 

“책에 적은 대로 (강연이나 멘토링, 코칭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막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일과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벅참이랄까요.”

“물론 당장 무언가 이뤘다는 성취감과는 다른 감정 같습니다. 그보다는 지금의 일과 삶을 5년, 10년간 도전해서 더 잘 해내리라는 예감이 들어서 기쁜 듯합니다. 새해 계획을 세워놓고 1년 안에 잘 되길 바라는, 그런 마음가짐은 아닙니다 🙂”

기대감과 걱정과 막막함이 교차하는 지금 시대에 자신의 말을 삶으로 실천하는 기용 님의 진심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사했을 듯합니다. 50대를 가슴 벅차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정답이 아닌, 정답보다 더 귀한 삶의 희망을 발견해 보면 어떨까요?

우문을 안고 간 인터뷰 현장에서 현답을 얻을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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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스텔러스(Stellers)|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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