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의 몸부림, 그리고 생일
7월 30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지만 이번 생일은 내게 유독 특별하고 의미 있다. 퇴사, 해외 이주, 임신 준비, 커리어 전환 등 인생의 전환기 위에서 맞이한 생일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삶의 거대한 전환과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앞에서 모든게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 다 가질 순 없는 건지
- 왜 나는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지
-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그러나, 7개월의 휴식기를 지나며 누구나 삶에서 멈춰가야 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멈춤의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를 만나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임을 느꼈다.
나를 안다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태어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때문에 스텔러스의 모토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지난호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정말 즐겁고 위안 받으며 읽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감정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동료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즐거웠고, “나의 설정과 드라마’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시시한 어른으로서도) 나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문장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글 말미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철저한 자기 인식이 기반이 되어야 우리는 진정한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자기인식>의 중요성과 <진정한 자기>를 찾는 방법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자기'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줄 여러 스승과 도구들을 소개한다.
천우희 배우의 인터뷰, 오디세이 플래닝 템플릿 등 ‘나의 이야기’를 되찾는 관점과 방법을 나눠 준 지난 글에 이어 나를 발견하는 여러 가지 도구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글은 지난 글의 후속편이다. 동시에 나를 발견하는 도구(방법론적인 HOW)를 논하기 전, 진짜 ‘자기'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탐구하는 일이 왜 선행돼야 하는지 탐구해 볼 것이기에, 지난 글의 서론이기도 하다.
주어진 삶을 진정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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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넘어, 자기의 이해
자기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우리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깊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혼돈의 전환기 위에서 나는 임상적으로 증명된 방법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찾은 스승이 분석 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융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MBTI의 기틀을 마련한 성격 유형론을 창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카를 융은 인간의 자아 통합을 위해서는 무의식을 이해하고, 이를 의식과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의식만으로는 무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멘토를 찾고, 독서를 하며 온갖 지식과 지혜를 구하려 다닐 게 아니라, 내 무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을. 나를 잘 알려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의식으로는 심연의 무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예컨대 얼마 전 친밀관계경험조사 테스트를 통해 나에게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 회피성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기 욕구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거나, 어두운 현실을 외면 또는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회피성 성향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융을 만난 후 (‘나’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면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회고하는 일기를 써봤다.
일기를 쓰는 특별한 방법을 찾아본 건 아니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무)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나에게 부정적이거나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 떠오르면, 그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활자로 뱉어냈다. 지난 30여 년의 삶을 돌아보며 엉엉 울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콤플렉스를 마주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련의 사건을 합리화하고, 억누르고 외면하며 만들어진 감정의 집합체, 즉 회피가 무의식 기저에 남아 있던 것이다.
비로소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부끄럽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도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하고 나아갈 수 있어서. 융은 콤플렉스 자체는 항상 부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설적인 자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대결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라도 내 안의 콤플렉스를 마주하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융에 따르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의식과 의식적인 자아를 통합한 온전한 <자기 실현>이다. 아쉽게도 이는 완벽히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과제이자, 삶의 과정이라고 한다.
진정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는 것은 결국 내 심연의 무의식에 말을 건네고, 치유가 필요한 콤플렉스가 있다면 보듬어 주고 의식의 세계로 꺼내주며, <자기 실현>에 가까워지기 위해 내가 노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자기 이해를 위한 9가지 도구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바라거나 겪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하는 일도 재미없고, 친구, 가족 등 인간관계까지 지치거나, 결혼 생활, 이주, 임신 등 급격한 변화가 생길 때다.
올해 내 상황이 딱 그렇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문제 앞에서 불안이 커지고 무기력함과 막막함이 몰려올수록,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생산적이어야 해’라며 무기력함과 막막함을 이겨내려고 나를 감정적으로 더 몰아쳤던 것 같다.
그때, 링크드인에서 『위대한 멈춤』이라는 책을 우연히 만났다. 인생의 전환기에는 목표를 세우고 생산적인 일을 하기보다, 직관에 귀 기울이며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실험을 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책의 핵심 내용과 책에서 배운 자기 이해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도구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다. 단 한 분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위대한 멈춤』은 인생에 의문을 품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 박승오, 홍승완 작가는 우리나라 변화경영 선구자인 (故)구본형이 세운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들로, 오랫동안 ‘인생의 전환기’라는 주제를 연구해 왔다.
저자는 삶의 변화가 필요한 전환기에는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 애쓰지도, 목표를 세우지도 말고, 멈추고 나의 주어진 삶을 돌아보고 귀 기울이며, ‘소명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소명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닌 ‘들어야 할 부름의 소리’를 의미한다.
이 책은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 · 학문 ·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18명의 평범했던 인물들(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리스 로마신화의 저자 이윤기, 심리학자 칼 융 등)의 전환기를 탐구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환기 소명을 발견하는 9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전환을 이끌어 내는 9가지 도구*
- 독서: 고착화된 인식을 깨는 것이 목적이며, 순수한 호기심에 이끌리는 책 읽기
- 글쓰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일기, 습작 등 내면을 돌아보기 위한 글
- 여행: 새로운 풍경을 보는 관광이 아닌, 목적지 없이 탐험하는 새로운 나를 마주하기 위한 여행
- 공간: 사회적 가면을 벗고 자신과 대면하는 공간 찾기
- 취미: 내가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활동 만들기
- 스승: 나의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스승 찾기
- 상징: 진정한 나 자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을 발견하고, 그것을 의미화하기
- 종교: 나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종교에 대한 이해
- 공동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 만들기
물론 책에서는 이 모든 것을 도구로 삼을 필요도, 부담을 느낄 필요 없으며, 도구에 끌리든 인물에 끌리든 자신에게 ‘끌리는 것'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전환기 동안 나는 독서, 글쓰기, 스승을 전환의 도구로 선택했다.
1. 평소 즐겨했던 활동도 전환기에는 다르게
독서와 글쓰기는 평소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는 꾸준히 해온 활동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은 읽어야 되는 책을 읽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썼다면, 이번에는 비생산적일지라도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내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 스승, 공동체 등 타인을 거울 삼아라
한편, 최근에 인생에서 깊은 내면의 고민과 삶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 놓을 스승의 부재를 깨달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간 스승/멘토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짐작했다. 내가 몰랐던 정보나 시각을 얻고, 막연한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3. 마음이 끌리는대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독서 후 삶의 변화는 실천에서 비롯된다. 완독 후 마음이 끌리는 책을 읽고, 마음이 끌리는대로 글을 쓰며, 마음이 끌리는 분들께 용기내어 대화를 신청하고 도움을 부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생각지도 못한 길을 발견하며,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힘과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조금은 진짜 ‘자기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 같다.
자기이해로 완성하는 나만의 인생 서사
전환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낸 현시대의 위인을 꼽으라면, 나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고 싶다.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 <1Q84>, <해변의 카프카> 등을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키고, 프란츠 카프카 상을 포함해 여러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그는 재즈바를 겸하는 카페를 운영하다 소설가로 전향했는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올라 집필을 시작한 일화와, 30여년간 꾸준한 달리기를 통해 창작의 영감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꾸준한 소설 집필을 위해 체력을 관리하고, 하루 1시간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기 위함’이었다. 하루키에게는 달리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자기 이해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였던 것이다.
하루키의 문학 인생과 달리기 회고록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곳곳에서 또렷한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내적 단단함이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하루키는 자기 이해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고, 융이 말한 ‘자기 실현'을 체화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강렬하게 느꼈다. 소설을 쓸 때도 달리기할 때도 자신만의 내적 동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두 손과 두 다리로, 자기 리듬에 맞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하루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다른 소설가와 러너와 일절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온 덕에, 하루키만의 색채가 뚜렷한 소설이 탄생했고, 유일무이한 인생 업적과 서사가 만들어졌다.
자기 이해를 위한 도구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루키에게는 달리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종교일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끌리는 도구를 선택하고, 가만히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을 갖는 그 사실 자체다. SNS를 통해 타인의 욕망과 삶의 방식에 너무나도 쉽게 휘둘리는 요즘이다. 외부로 향하는 시선과 에너지를 내부로 돌려, 여러분도 자신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나만의 도구를 찾아보길 바란다.
나를 위한 특별한 생일 선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은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죽는 날을 상상해 본다. 삶과 죽음은 맞물려 있으며,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을 하면 가장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가 고민하다, 특별한 생일 선물로 내 묘비명을 만들어 보았다.
하루키는 책 말미에서, 묘비명을 적을 수 있다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적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았다’라고 적고 싶다. 그러면 지긋이 미소 지으며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결혼, 경력 단절, 임신 준비, 이주 등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불안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다 내면으로 가라앉았다. 7개월의 시간 동안 책, 글쓰기, 스승 등의 도구를 통해 내 삶을 반추하고, 나라는 인간을 탐구하며 조금은 진정한 나에 가까워진 것 같다.
내 인생의 여정이 ‘자기실현'에 가까워지는 길이길 바란다는 생일 소원을 빌며 글을 마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께 선물 같은 글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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