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기가 맞아? 싶던, 간판도 잘 보이지 않던 곳. 망설이다 계단을 올라 철문을 열면 노란 불빛과 음악이 새어나던 곳. 최측근은 제일 싼 맥주를 시키고, 나는 그 옆에서 분다버그를 홀짝이던 곳. 사는 건 좋다가도 나쁘기 다반사였고 회사는 대개 때려치고 싶은 곳이었기에 대화가 끝나지 않던 곳. 그러다 어느 순간 말을 멈출 만큼 멋진 음악이 나오던 곳. 맘속으로 나 혼자 아지트 삼았던 곳.
그때 음악 들으면서 술이나 더 시킬 걸. 작고 소중한 그 곳은 이제 지도에서 사라졌다.
—
잘난 것 없는 내게도 자랑거리 하나가 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는 것. 그래 봐야 대단한 인기를 얻은 적도, 책을 낸 적도 없다. 제멋대로 혼자 쓰는 글이라 울퉁불퉁, 그래도 좋아하는 걸 써서 얼굴 모를 친구들에게 내미는 건 나만의 작고 소중한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6년 전부터 꾸준히 에세이 뉴스레터를 보냈다. 꾸준히는 아닌가, 매주 보내던 이메일인데 올해는 딱 세 통 썼으니까.
작고 소중한 즐거움,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아져서 결국 잃어버렸다. 무료 뉴스레터인데도 구독자 수는 늘 제자리. 매주 마감에 허덕이며 완성한 것치곤 재밌게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구독료를 받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많은데. 그 사람들이 인기도 훨씬 많고. 몰래 하던 시샘이 점점 커져서 이것저것 질려버렸다. 이럴 거면 혼자 일기나 쓰는 게 낫겠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2월. 날씨 좋아서 산책
3월. 점심에 먹은 제육 맛있었다.
4월. 오랜만에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서 일기를 써 본다.
몇 달 지나니 일기가 이상해졌다. 필요도 없는 문장부호가 찍히고, 은근슬쩍 문장이 꾸며졌다. 이런 식이면 그동안 쓰던 에세이나 다름없었다. 무언가 쓰고 싶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 보다. 이런 식이면 다시 공개 글을 쓰는 게 낫겠다. 그렇지만 예전 방식대로면 제풀에 나가떨어질 텐데 어쩌나. 세상에 볼거리가 많은데 감히 돈을 받진 못하겠고, 글을 공개하는 방식을 어찌해보기로 했다.
—
내 글이 누군가의 작고 소중한 즐거움이길 바랐다. 그리 대중적인 글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 몇 명 만나면 그걸로 충분하다. 간판도 달지 않고, 불빛도 음악도 새어나가지 않게 이메일로 글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도 일주일에 한 번 메일을 놓치면 보이지도 않는 글인데 잃어버렸을 거다. 더 자주, 더 많이 보여야 했다.
몇 년 전에 만들었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복구했다. 글을 썼다는 소식을 올리다 그만둔 계정이었는데 80명 남짓 팔로워가 있었다. 내 소식을 듣고 싶어한 분들이 있었던 거다. 소심하게 문을 열었다 머쓱해서 몰래 닫아버렸을 때도.
저 글 써요! 모르셨죠? 놀러오세요! 오가는 사람 많은 인스타 스토리에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대부분은 슬쩍 흘겨보고 스크롤을 바삐 올린다. 관종이 된 스스로를 언팔하고 싶지만 부끄러움을 미뤄두고 있다. 내 글을 작고 소중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많아지길, 내 글이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은 커지길 바라면서.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