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는 나를 낳던 날 이혼을 결심했다.

2026.08.13 | 조회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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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당신이 생각한 방향과 다르게 내가 흘러가노라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엄마가 날 어떻게 키웠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숨 쉬고 살아 있는 엄마 양육의 증거물 아닌가? 난 사랑을 많이 받아 밝고 귀엽게 큰 내가 퍽 좋다. 엄마는 나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을 때 꼭 그렇게 말 문을 열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배꼽을 뚫었니,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니, 이혼한 남자 친구를 사귀니기타 등등. 그 말이 나오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에 힘을 주면, 귀도 닫히길 빈다.

    엄마는 나의 우상이다. 세상에서 나는 우리 엄마가 가장 아름답고, 세련되고, 지성적이고, 완벽하다고 믿는다. ‘완벽함은 좀 위험한 생각인데, 사실 그녀도 나처럼 완벽하진 못하다. 그래도 엄마의 영원한 골수팬에게 엄마는 완벽하다. 어떤 점이 그렇게 완벽하냐면, 일단 우리 엄마는 정말 예쁘다. 백옥 같은 피부와 서양인처럼 오뚝한 콧대 아래 살짝 콧방울이 아래로 떨어진 우아한 매부리코. 눈은 쌍꺼풀이 져 깊게 패 있고, 온몸에 티 한 점 없다. 무릎과 종아리도 정말 예쁘다. 무릎뼈 밑으로는 가녀리고 매끈한 종아리와 발목이 이어진다. 발도 작고 살이 없다. 그래서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정말 예쁘다. 반면에 내 발은 왕발에 살이 많아 하이힐은 금방 물집이 지고 살이 집혀 신지도 못한다.

    엄마는 외관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늘 정갈하며, 행동 하나하나에 세련됨이 곁들여 있다. 엄마가 가꾼 우리 집에 방문한 손님들은 감탄하고, 엄마가 다림질해 주는 내 옷은 늘 새 옷같이 향기를 내며 완성되었다. 엄마가 해 주는 밥은 조화롭고 맛있었으며 재료와 계절에 어울리는 그릇에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엄마는 나를 넘치게 사랑해 주었다. 독립하기 전 엄마와 함께 지내던 이십 대 중후반 때, 주말이면 늦잠을 자는 나를 깨우러 내 침대맡에 앉아 손과 발을 꾹꾹 만져주시고, 머리카락과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다. “내 아기라며 손바닥 냄새를 킁킁 맡곤 하셨다. 귀찮은 척했지만, 나는 사실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 잠결에 엄마가 깨우러 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꼭 내 옆에 잠든 남자 친구의 발과 손을 꾹꾹 눌러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오구 내 아기말하며 그 사랑을 되새긴다.

    엄마와 나, 그 단둘의 세계에서 자라다 보니, 나에게 엄마의 인정은 비대한 기준이 되어 버렸다. 때로는 내가 예상하는 엄마의 기준을 향해 맹목적으로 집착하며 버둥거리는 나의 모습이 가여웠다. 자기 연민이 반항심이 되어 일부러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허물처럼 텅 빈 엄마의 오래된 외로움이 보였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의 진짜 시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태어난 32년 전 그날,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엄마의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외로웠던 것 같다. 68년생. 네 살 터울 오빠, 내 외삼촌의 천방지축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그림자에 가려 엄마는 속으로종배 병신처럼 안 돼야지이를 갈며 유년기를 보냈다. 80년대 연희동 경기초등학교의 체육복이 여학생은 둥근 카라, 남학생은 각진 카라였던 것을 아는가? 나는 안다. 엄마가 외삼촌의 각진 카라 체육복을 물려 입고 뛰어 육상 1등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딸에게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셨다. 교회 찬양대에서 늠름한 테너 음성을 뽐내시던 그는, 엄마가 아주 어린 영아일 때부터 집에 피아노를 들여 그 뜻을 표현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예원학교, 서울 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대학 입시 심사 때, 실수를 했다. 형평성을 위해 무대 위 커튼을 가리고 심사하던 시절, 입시 곡 첫 음을 치고 피아노 의자가 뒤로 밀린 것이다. 엄마는 당연히 심사 위원들도 피아노 의자 밀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의자를 다시 당겨 앉고 첫 음부터 다시 쳤다. 그리고 서울대 입시에 떨어져 재수하게 되었다.

    강남 대성학원 재수반 교실에는 에어컨도 없고, 육십 명의 재수생들이 바글바글했다. 남학생들의 땀 냄새와 남성 호르몬 냄새가 엄마에게는 역겨웠지만, 그때 만난 삼촌, 이모들은 지금도 엄마의 절친들이다. 그렇게 치욕스럽게 재수하여 서울대에 갔건만, 막상 가보니 실망스러웠다. 서울대 캠퍼스 어떤 절벽에서는 학생들이 뛰어내려 자살 시도를 하였던 것이 공감될 정도로 서울대 산길의 스산함과 수업의 따분함이 싫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이 교수가 되어 보낸 교직 생활 26년간, 학생들에게 그렇게 따뜻하고 진심으로 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서울대에서 만난 교수들의 고리타분함과 차가움이 아직도 엄마에게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대학 시절,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는 남학생은 많았지만, 어쩐지 엄마는 그들이 시시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을 보고, 일곱 살 연상의 차갑고 정제된 변호사였던 아빠에게 반했나 보다. 나는 신혼여행에서 생긴 하와이산 허니문 베이비이다.

    양가에서 달가워했던 결혼은 아니었다. 양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 중상층 이상의 재력, 피아니스트와 변호사, 조건만 보면 괜찮은 조합이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각각 너무 귀히 자란 탓일까? 양가 모두 내 딸이, 내 아들이 더 귀하다며 상대 가족을 헐뜯고 비판했다. 지금 와서 보면, 나의 부모님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이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공부만 잘했지, 사회적, 정서적 지능을 쌓을 경험은 좀 부족 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이혼한 뒤로 십수 년이 지날 때까지 오랜 시간 엄마의 이혼을 용서하지 못했다. 친가에서 혼수로 보내주신 빨강, 초록, 파랑 빛깔의 보석이 담긴 보석함을 두고 그렇게 끔찍하고 촌스러운 선물은 처음 보았다고 하셨다. 어린 나는그래도 루비고, 사파이어이고 에메랄드면 비싼 것일 텐데생각하였다. 보석이 아니라 아빠와 아빠의 가족이 싫어 치를 떠는 할머니의 마음을 느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추석에는 외할머니가 친할머니께 구운 김을 보내왔다고 한다. 스테인리스 상자에 든 고급 김이었는데, 아빠는 그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엄마의 배를 향해 그 김 상자를 던졌다고 한다. “너희 엄마는 이딴 선물로 우리 가족을 모욕하냐라며 아주 화를 많이 내면서 말이다. 그 순간 엄마는 이 남자와는 안전하게 아이를 키우지 못하겠다 단념했다.

    1994 2 28, 서울 용산구 이촌동 금강병원에서 나는 태어났다. 평생 윤년에 태어났냐고 질문받는 나의 생일, 삼일절 공휴일을 맞아 전문의들이 골프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본 엄마는, 절대 인턴 손에 출산하지 않겠다며, 전문의들을 붙잡아 나를 낳았다. 엄마는 출산이라는 감정과 고통의 정점 속에서 카타르시스처럼 그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진통으로 땀범벅이 된 얼굴로김 변호사, 이혼하시죠.”라고 말이다.

    나라는 생명체는 엄마가 홀로서기를 감행하게 만든 용기의 원천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제대로 앉혀놓고 아빠 이야기를 해준 적은 없지만, 외할머니와 엄마가 툭툭 던진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 만든 이 탄생 서사는 내가 왜 엄마에게 그토록 애달픈 '양육의 증거'인지를 보여준다. 엄마가 쏟아부은 그 용감한 보호와 애정은 나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지만, 동시에 나를 옥죄는 거대한 이분법의 틀이 되기도 했다. 엄마의 인정을 끝없이 갈구하며 순종하는 나와, 거기서 벗어나려는 극단적인 반항. 그 양 끝은 모두 위험하다. 이제 나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 균형의 출발점은 바로 수용이다. 나와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를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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