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의 조명이 어두워지면, 무대 위로 노란 불빛이 비친다. 관객들은 헛기침하고 손바닥을 다리 위에 펼쳐 놓으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긴장감이 도는 몇 초가 지나면 무대 위로 피아니스트 김희진이 나온다. 빨간색 새틴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발걸음에는 당당함과 겸손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웃으며 오르쪽 손을 왼쪽 가슴 위에 올리고 깊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피아노 앞에 비장하게 앉은 피아니스트는 한숨을 들이쉬고 첫 음을 친다.
연주회 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내 의상과 머리 모양부터 세심하게 신경 쓰셨다. 당일 입을 수 있게 나에게 새 옷을 사주셨으며, 스타킹에 구두까지 조심스럽게 코디해 놓으셨다. 머리는 핀으로 장식하고 헤어스프레이를 뿌려 고정했다. 무대 뒤에서 엄마가 화장을 받을 때 나도 메이크업 선생님께 볼 터치를 해달라고 했다. 연주회가 끝나면 ‘reception(리셉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는 엄마가 주인공이었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조명이 켜진 음악당 로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었다. 자줏빛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다리를 팔로 감고 있으면 “이 아이가 너의 딸이냐”라며 많은 관객이 놀랐다.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유창한 영어로 답변하면 아주 기특해 하시곤 했다. 또 리셉션에서는 엄마가 나의 음식을 제한할 틈이 없어, 쿠키나 포도 같은 과일들을 마음껏 주워 먹을 수 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엄마와 함께 양팔 가득 꽃다발을 안고 사진을 찍는 것도 나에게는 특별한 세리머니였다. 몇몇 하객들은 엄마의 꽃다발과 함께 내 선물로 헬륨 풍선이나 인형을 챙겨와 주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럼, 한참을 연주회장 로비에서 손목에 묶인 헬륨 풍선 끈을 동동 내렸다가 띄우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음악가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제2의 모차르트를 낳았다고 생각할까? 우리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귀가 좋고 음악을 알며,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쫙 피면 180도 일직선이 된다며, 피아노를 칠 운명이라 말이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당신의 지도 교수였던 Dr.Cass (닥터캐스)의 부인인 Mrs.Cass (미세스캐스)에게 나의 피아노 레슨을 부탁했다. 닥터캐스의 날카롭고 완벽주의적인 성향과는 다르게 미세스캐스는 그저 나를 귀여워하셨다. 내 손가락 하나 씩 짚어 주시며 자세를 낮춰 나의 눈을 올려다보며 속삭이듯 나의 첫 피아노 개인 지도를 해주셨다. 달걀을 쥐고 있는 듯 손가락은 둥그렇게 쥐고, 손목은 꺾이지 않게 들고 있어야 하는 자세가 무척 곤욕스러웠다. 미세스캐스는 피아노 악보 빈칸에 작은 동그라미를 열 개 그리고, 내가 한 번 곡을 연습할 때마다 동그라미를 한 칸씩 채우라고 하셨다. 나는 그 동그라미들을 수업하기 전 급히 한꺼번에 채워 가기 일쑤였지만, 미세스캐스는 나를 혼내지 않고 특유의 따뜻함과 온화함으로 나를 품어주셨다. 그러나 그녀의 온화함이 다음 시간에 숙제를 열심히 해올 동기가 되어주진 못하였다.
하루는 엄마가 내 피아노 연습을 직접 봐주셨다. 피아노 앞 가죽 벤치에 같이 앉아 첫 음으로 시작해 악보의 끝까지 연주했다. 그리고 엄마는 “one more time, (한번 더,)”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는 엄마를 보고 세 손가락을 피며
“Mommy, I do not want to repeat myself more than three times. (엄마, 나는 세 번 이상 내 자신을 반복하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피식 허탈한 웃음을 내뱉곤, 나의 등을 토닥이며 피아노 의자에서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했다. 엄마는 늘 피아노 앞에서 완벽함을 목표하며 자신을 깎아내는 수련을 하였다. 하지만 딸인 나는 그 수련의 가장 기본인 ‘반복’을 거부하였다. 그렇게 엄마는 나의 피아노 교육을 일찌감치 포기하셨다. 당신의 분신과도 같은 피아노로부터는 나를 그토록 쉽게 자유롭게 해 주셨으면서, 훗날 나의 일상이나 삶의 선택들에는 왜 그리 집착하고 통제하려 하셨는지 오랫동안 의문이었다.
내가 자라면서 주변 어른들께 가장 자주 듣던 말은
“선우는 어머님처럼 피아노 안 치니?”였다.
그러면 나는 “네, 제가 다섯 살 때 같은 부분을 세 번 이상 반복하는 것이 싫다고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왔대요.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셨어요” 하고 답했다.
어렸을 때는 지루하게 느껴지던 클래식 음악과 연주회도, 성인이 된 이후 들으니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십 대가 되어, 대학교 봄방학과 엄마의 연주회 날이 맞물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엄마의 연주회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어릴 적 관람한 엄마의 모든 독주회와 협연은 늘 지루했다. 나는 이미 징그러울 정도로 연습하는 과정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씨름하듯 연습하던 그 구간이 다가오면 나는 긴장이 돼 관중석에서 눈을 질끈 감곤 했다. 연습 과정을 듣지 않고 그 노력의 결실을 무대 위에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빨간색 새틴 드레스를 입었던 그 날, 그저 관중과 연주자로 엄마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으로 빚어지는 음악이 내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걸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주를 마치자 나와 모든 관객은 숨이 멎은 듯 바로 박수를 치지 못하고 그 여운을 느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영원한 것이 있구나. 이것은 충분히 평생을 바쳐 수련할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그러고는, 이 음악은 엄마에게 영원히 있을 벗이며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점점 더 둥지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 때 문득 ‘이제 나 없으면 엄마는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을 하고 있으면 엄마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우가 언제나 첫 번째고, 그다음엔 음악이 있으니까, 엄마는 외롭지 않아.”
평생을 바쳐온 음악이기에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던 걸까.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도, 음악만큼은 오롯이 당신 곁에 남아줄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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