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회사 후배와 1on1 면담을 하였습니다. 제 직속 조직은 아니지만 저랑 1on1을 하고 싶다고 하여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분입니다. 커리어, 이직, 결혼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습니다. 1시간30분 정도 대화 끝에 그 분이 저에게 물으시더군요. "승엽님도 30대가 이렇게 힘드셨어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40대인 지금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닌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될진 알겠어요. 근데 30대는 모든게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그게 XX님만 그런게 아니에요. 저와 이야기 나누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더라구요."
퇴근을 하고 브런치에 "30대는 너무 힘들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아래 내용은 제 브런치 글에 숨은 이야기, 개인적 소회를 덧대어 좀 더 솔직한 버전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지난 10년을 꽤나 정신없이 힘들게 보낸 것 같습니다.
제가 1983년 생이고 올해가 2026년이라 제 나이 43세이니, 지난 10년은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을 지나는 기간이었습니다.
커리어 측면에서 살펴보면, 35살에 7년 간 일했던 첫 직장을 떠나 처음으로 이직을 하였고, 그곳에서 다시 5년을 일하다가 40살에 두 번째 이직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직장에서 팀장이 되면서 리더가 되었고, 처음은 3인 팀의 팀장으로 시작하여 제 직속 인력으로 가장 많을 때는 35명 정도까지 리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직속으로 제가 담당해야 하는 인력은 10명 규모이지만 180명 규모 회사의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책임 범위는 더 커진 것 같습니다. 30대 초반 저는 재무팀에서 자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 전략, 사업개발, IR, 인사 등으로 업무 범위 또한 비교도 못하게 늘어났습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게 되면서 더 그런 것 같고요)
개인 측면에서는... 30살에 결혼을 했고 41살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결혼은 조금 빨랐고 아이는 조금 늦은 느낌) 제가 서른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암 투병을 시작하셨고 6년 간의 투병 끝에 제 나이 36살일 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모님 건강/사별) 그 사이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운 좋게도 내 집 마련에도 성공하였습니다.
지금도 물론 정신이 없고 여전히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 입니다만, 그래도 지난 10년에 비해서는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을 헤쳐오면서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어차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나이고 결국 해결해 낼 것이다', '조금 덜컹거려도 인생이 큰 문제는 없다', '정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포기해야 한다' 등으로 마음이 단단해진 덕분입니다. 실제로 상황이 엄청 편해진 것도 아니고, 제 역량이 대단히 성장한 것도 아니지만... 결국에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근육이 생긴 느낌입니다.
저에게 조언을 구해오는 후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0대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제가 1on1 면담도 회사에서 많이 하고, 코칭 자격증을 취득하여 실제 코칭도 하고, 비공식적으로도 많은 인생의 후배들이 저에게 조언을 구하곤 합니다. 조언을 구한다기보다는 고민을 토로하고 들어주는 것에 좀 더 가깝겠네요.
각자의 고민들이 매우 다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각자의 고민들은 서로 간에 매우 닮아있습니다. 마치 '인생 고민의 템플릿'이 있는 느낌입니다. 주로 나오는 주제들은 커리어·이직, 리더십, 결혼·출산·육아, 그리고 부모님입니다.
남성 기준으로 보통 20대 후반에 취업을 하니, 30대 초반이 되면 3~5년 차 정도 됩니다. (여성분들은 보통 사회생활을 2~3년 먼저 시작하니 여기에서 2~3년을 빼어서 대입하시면 되겠습니다.) 3년 차 이전까지는 일단 첫 직장에서 업무를 배우고 적응하기에 급급합니다. 3년 차쯤 되면 머리가 조금 굵어지죠. 나에게 업무를 알려주던 선배, 리더들이 생각보다 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회사 바깥, 우리 팀 바깥 소식들이 점점 궁금해지게 됩니다. 3년/5년/7년 차에 이직을 많이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고민의 씨앗들이 자라서 빠르면 3년 차, 늦으면 7년 차에 이직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대기업이냐, 스타트업이냐 등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30대 초반 ~ 40대 초반 사이 대부분 리더가 됩니다. 대기업 팀장급이 되는 나이는 더 늦을 수 있겠으나, 보통 과장급이 되면 후배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면서 특정 업무를 리딩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나 혼자 일을 잘하는 것도 사실 만만치 않은 가운데 겨우 조금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누군가를 이끌어서 3인분, 5인분의 일을 해내라는 주문이 들어옵니다. 성과는 당연하고, 후배들을 성장시키고 이끌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도요. 본인이 잘하고 익숙한 업무 영역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업무 영역에까지 의견을 제시하고 업무를 리딩해야 한다는 피드백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리더십의 시작과 함께, 혼란도 같이 시작됩니다.
결혼, 출산, 육아 또한 대부분 이 시기에 집중됩니다. 내 인생 하나만 책임지기에도 벅찬데 배우자의 인생, 아이의 인생까지도 내 책임의 범위가 됩니다. 막상 결혼/출산/육아를 하게 되면 그 과정이 힘들고 정신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결혼/출산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하게 된다면 누구랑,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더욱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것도, 다시 돌아오는 결정 (이혼)을 하는 것도 너무나 무거운 고민인 것이고요.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냐 와는 별개로 무겁고 부담이 되는 시기입니다.
결혼과 육아로 새로 생기는 내 가족만 짐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시기부터는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시던 관계가 뒤집혀,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쪽이 됩니다. 대부분 이 시기에 부모님들이 노쇠해지기 시작합니다. 부모님들이 60대~70대 정도를 지나는 나이이신데, 건강이 안 좋아지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은퇴를 하시면서 경제적으로도 기존보다 덜 풍족하시고 과거보다 세상물정에도 어둡고 판단력도 흐려지시곤 합니다. 10대, 20대에는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셨다면 30대 초/중반 이후부터는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죠. 꼭 부모님을 챙기는 것뿐 아니라 가족 내 대소사에 대하여 내가 중심이 되어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지치고 힘들고 고민이 많으니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게 되는데,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인생 후배들 덕분에 저는 정말 많은 스토리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고민들은 물론 각각의 깊은 사연들이 있지만, (앞서 기술한 것처럼) 크게 봤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몇 가지 공통 주제로 집약이 되더군요. 그렇기에 저의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담들이 후배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언이 되곤 하였습니다. 때로는 제 직접 경험이 아니더라도, 후배 A의 경험담/인사이트/해결책이 후배 B나 C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직장 후배와 점심을 먹는데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더군요. 저 또한 이런저런 사정과 고민으로 인해 결혼한지 11년 만에 첫 아이를 나았기에 그 고민이 어떤 고민인지 너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감히 그 분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 혹은 낳지 마라라고 조언을 할 자격도 없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저 또한 그런 고민을 매우 많이 했다는 이야기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 그 후배는 조금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대화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선배님들도 그 시기에 그러셨더군요.
대학교 시절 International Finance Seminar ("IFS")라는 재무금융 동아리를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선후배 사이가 매우 끈끈하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동아리입니다. 제가 20대 후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재학 중인 후배들 활동하는데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저를 비롯한 20대 후반~30대 초반 졸업생들과 아예 40대 초중반이신 선배님들만 모임에 항상 나오시더군요. 30대 중반~후반 선배님들은 절대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왜 내 바로 위 선배님들은 잘 안 나오시지?'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내 바로 윗 선배님들, 당시 30대를 막 헤쳐가고 있던 선배님들이 동아리에 대한 애정이 없으신 게 아니라 그냥 바쁘신 것이었습니다. 커리어, 이직, 리더십,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주제로 말이죠.
제가 30대 중/후반이 되었을 때 그 선배님들이 다시 동아리 모임에 돌아오셨습니다. 바쁘신 10년의 시간을 보내시고 이제 조금 안정을 찾으신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회사에서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지만, 이제는 본인의 업무 스캐쥴을 직접 컨트롤하실 수 있는 지위와 역량을 갖추고 계셨습니다. 자녀들 나이가 10살 정도를 넘어가면서 상대적으로 부모가 덜 챙겨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과거보다 확실히 자주 나오시더군요. 이제는 선배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승엽이 왜 안 나오냐?"라고 저를 찾으십니다. 이제는 제가 모임에 못 나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헤처가시던 그 파도를 지금은 제가 헤쳐가고 있습니다. 저도 이 혼돈의 바다를 다 건너고 나면, 언젠가 다시 그 모임에 자주 얼굴을 비출 때가 오겠지요.
제가 30살 정도가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자유로울 때이다. 돈도, 시간도 적당히 있고, 어떻게 하면 네가 즐거운 지에 대해서도 잘 아는 때다. 즐겨라. 그 시기가 지나면 정신없이 바쁘다가 60대 후반 정도 되면 다시 또 자유로워질 거다"
그때는 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은 이제 이해가 됩니다. 20대 후반~30대 초반 가장 자유로운 시기 (물론 시간적으로는 더 어릴 때가 자유롭지만 경제적 여유도 없고, 세상 물정도 너무 몰라서 오히려 저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 종합적으로는 자유롭게 느껴집니다)를 지나니 10년의 혼란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그 구간을 지나고 있어서, 아버지 말씀처럼 60대 후반 정도 되어야지 다시 자유롭고 편안해질지 혹은 좀 더 일찍 올진 모르겠습니다 ㅎㅎ
힘든 30대를 건너가는 사람들에게
제가 30대 초반~40대 초반이라고 기술하기도 하였고, 30대라고도 기술하기도 하였는데요. 개인마다 당연히 조금씩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를 다른 분들의 평균보다 낮은 41살에 낳아서, 지금 시점 기준으로는 다른 과업들 보다는 육아 과업이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 이처럼 다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어떤 과업이 더 크거나 작기도 하고, 빠르거나 늦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굉장히 힘들고 정신없는 시기라는 것만큼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은 분들과 상담을 해보니 이 말이 그분들에게 가장 도움과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랬어."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들고 고달프면 견뎌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의해서 나만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면,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름 인생을 살아보니,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니... 이 시기의 많은 문제들은 특정 누군가만 겪는 고민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 어찌 보면 포기하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오히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부터 선배님들이 때로는 비틀거리고 좌절하면서, 때로는 슬기롭고 의연하게 헤쳐나가셨습니다. 저 또한 열심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고 몇 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저에게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 또한 고민이 많아서 저에게 토로하면서도 결국에는 이 시기를 꿋꿋하게 잘 이겨낼 것입니다. 거창한 해법이 있는 게 아니라, 그 한마디를 손에 쥐고 하루하루 건너는 것 — 그게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힘든 30대를 건너간 사람들, 건너고 있는 사람들, 건널 예정인 사람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혹시 주변에 30대를 힘겹게 건너는 분이 있다면, 이 글 하나 슬쩍 건네주셔도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또 뵐게요.
백승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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