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나 직무는 안 중요해요. 그냥 똑똑한 사람 뽑아주세요."
인사팀에서 현업 부서와 채용 포지션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사팀원이 듣고 와서 보고를 하길래... 요구사항 정의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사람을 뽑아달라고 한다고 제가 조금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포지션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번 들으니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바로 AI로 인해서 달라진 흐름입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AI 등장 이전에도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는 추세였습니다. 저성장 국면이 이어졌고, 정보가 확산되고 교육 기회가 균등해지면서요. AI는 이 흐름을 가속합니다.
가장 혹독한 구간은 70점 미만입니다. 딸깍 한 번으로 누구나 해낼 수 있게 된 영역이니까요. 과거 3명이 하던 일을 AI를 잘 쓰는 1명이 해내는 장면을, 이미 여기저기서 보고 있습니다.
70점 이상이라고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는 직군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마케터는 마케터끼리, 개발자는 개발자끼리 경쟁하면 됐습니다. 실력이 부족한 개발자도 '개발자'라는 우산 아래 보호받았고요. 그런데 그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이제는 통합된 직군 안에서의 무한 경쟁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경쟁하나요?
과거에는 직군별로 요구되는 전문 지식이 명확했습니다. 그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 전문가로 대우받고 연봉이 오르는 구조였죠.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 10년에 걸쳐 쌓은 전문성을 1~2년 만에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학습된 전문성과 맥락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가치는 과거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① 그냥 똑똑함 (Raw Intelligence)
똑똑한 사람이 AI도 잘 씁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AI가 학습과 문제해결에 날개를 달아주니 격차가 훨씬 벌어집니다. 과거에는 직군 장벽 때문에 다른 영역에 접근조차 어려웠다면, 이제는 경계 없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똑똑한 1명이 분야와 상관없이 엄청난 퍼포먼스를 내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회사는 전공도 직무도 아닌 '똑똑함'을 보려 하고, 개인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채용에서 Raw Intelligence를 강조했던 마크 주커버그, "천재 1명이 10~20만 명을 먹여 살린다"던 이건희 회장의 말이 떠오르는 지점입니다.
② 열정
AI를 검색엔진처럼 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려고 붙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딸깍 한 번에 70점은 나오지만, 그 70점을 100점으로 만드는 과정은 딸깍에 비해 한없이 비효율적입니다. 계속 수정하고 검증하고 깎아나가야 합니다. 종합적으로는 예전보다 빨라졌는데,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더 느리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결국 이 불편하고 느린 구간을 통과해내는 힘에서 갈립니다. 저는 이걸 "열정"이라고 적었는데, 얼마 전 만난 지인은 "끈기와 호기심"이라고 부르더군요. 단어는 달라도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③ 인간관계
현재의 AI는 텍스트로 된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코드를 다루는 개발자에게서 변화의 불꽃이 가장 먼저 타올랐고, 글을 요약·생성·해석하는 분야로 번졌습니다. 숫자를 다루는 일에도 능숙하니 데이터 분석과 회계도 크게 바뀔 겁니다.
뒤집어 보면, 텍스트화·숫자화하기 어려운 영역은 인간의 자리로 남습니다. 리더십, 신뢰관계, 네트워크 같은 것들이죠. 제가 하는 인사 업무만 봐도 프로세스 운영은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지만, 사람 사이의 맥락을 포착하고 그동안 쌓은 신뢰 자산으로 문제를 푸는 일은 오히려 각광받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막 AI 시대가 시작이 되었으니... 이 3가지 경쟁요소는 계속 변화할 것 같습니다. 점점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관계의 영역까지도 커버하려고 들 수도 있고, Raw Intelligence나 열정이 부족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내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하게 대두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이 3가지가 지금 시점에서 제가 느끼는, AI시대의 경쟁 요소입니다.
채용 기준도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력직 채용은 핀포인트 방식이었습니다. 콘텐츠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면 다른 회사에서 그 경험을 쌓은 콘텐츠 마케터를 뽑는 식이죠. 요구 수준이 높으면 더 많은 경력과 좋은 회사, 성공한 프로젝트 경험을 가진 사람을 뽑고요. 채용 공고에는 업무·자격요건·우대사항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좋은 채용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경력 무관, 직무 무관, 그런데 주요 업무의 수준은 매우 높은" 이상한 공고가 만들어집니다. 언뜻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 보이지만 요구 수준은 매우 높은 공고죠. 기존 관점에서는 잘못 쓴 공고지만, 앞으로는 이게 일반적인 공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별 기준도 옮겨갑니다.
"AA산업군에서 BB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본 사람"
→ "분야는 상관없고, 어디서든 성공을 해본 사람"
어디서든 성공해본 사람이라면 새 산업도, 새 직무도 빠르게 학습해서 그 성공을 재현할 테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한동안 덜 중요해졌던 학교와 회사 이름이 다시 대두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무 중심 채용에서는 학력·경력의 비중이 내려갔는데, 성공 경험과 Raw Intelligence 중심으로 가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이 글은 「일하는 사람의 AI 회사생활 노트」 시리즈로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앞선 편들은 브런치에 있습니다.
- AI시대의 성장 곡선 👉 https://brunch.co.kr/@seungyuppaik/59
- AI는 직군 간 장벽을 허문다 👉 https://brunch.co.kr/@seungyuppaik/60
- 이 글의 브런치 원문 👉 https://brunch.co.kr/@seungyuppaik/61
직무보다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Enabler)"을 뽑게 된다는 이야기는 따로 적어둔 글이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seungyuppaik/53
AI가 만들어내는 직장의 변화, 회사 생활의 변화는 담아내기는 턱 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제가 관찰한 것들은 솔직하게 적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승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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