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하루의 목표가 출근하기였어요

꾸준히 오래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2026.08.19 | 조회 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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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는 안 쓴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봅니다.

저는 10년 차쯤까지 번아웃이라는 걸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번아웃은 어떻게 극복하세요?"라고 물으면 늘 이렇게 답하곤 했습니다. "저는 딱히 온 적이 없어서요."

그 뒤 이야기는 글 끝에 이어서 적겠습니다.

오늘의 글은 번아웃, 혹은 회사 생활에 대한 힘듦과 권태, 의욕 상실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년 차 상무님의 위대함

2010년 말 두산그룹 신입사원 연수부터 제 커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몇 개월의 교육을 거쳐서 재무관리부문 자금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기억은 모두에게 강렬하듯이, 처음으로 제가 모신 상무님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저는 막내 신입 사원이라 직접 업무를 할 기회가 많진 않았지만, 저를 비롯한 팀원들의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항상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이해를 해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그냥 성격이 좋으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20년의 시간 동안 쌓아오신 경험과 연륜 덕분에 그런 여유가 있으셨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상무님에 대한 기억으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개념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제가 사회 초년생일 때만 해도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평생직장을 떠올리게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어찌 보면 '임원'이라는 것은 목표이자 꿈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천 명 규모, 수조 원 매출을 내는 회사에서 의사결정의 한 축으로 조직을 이끄는 모습이 저를 비롯한 후배들에게는 참으로 멋지게 보였습니다. 하나의 회사에서, 하나의 직무를 20년 동안 정진해 온 상무님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런 자리에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머리가 굵어지니 생각이 많이 달라지더군요. 보통 3년 차, 5년 차, 7년 차에 이직을 많이 한다고들 하죠. 초년생 때는 회사 생활에 적응하고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런 시기를 조금 지나고 정신이 드니 보이는 시야가 달라지게 됩니다. 존경했던 선배님들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하죠. 저 사람은 왜 저것밖에 못 할까, 내가 더 잘하겠다, 답답하다 이런 감정들입니다.

하지만 10년 차 정도를 지나면서 또 한 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처음 언급했던, 제가 모셨던 첫 번째 임원분처럼...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20년 동안 해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너무너무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17년 차 직장인이고 3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직무도, 환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변화가 있었음에도 지치고, 권태롭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물며 한 회사에서, 한 직무를 꾸준히 해오신 선배님들은 어떠셨을까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으로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 세대들, 많은 선배님들이 정말 다르게 보이더군요. 그 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물론 이제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시대입니다. 평생직장을 꿈꾸었던 저도 이직을 하고, 직무도 여러 번 바뀐 것처럼, 이제는 한 회사에서, 한 직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회사와 직무가 달라지는 것과는 별개로, '일'이라는 것을 10년, 20년 꾸준히 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힘듭니다. 건강이 상하기도 하고, 정신이 무너지기도 하고, 이상한 리더/동료를 만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회사가 고꾸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원치 않는 R&R을 맡게 됩니다.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내는 힘. 그것만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목표는 출근하기

제가 아끼고 좋아하는 어떤 동생이 있습니다. 이제는 창업해서 회사를 잘 키워가고 있어서, 동생이라는 말도 웃기네요.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제가 "너는 창업하고 나서 번아웃 온 적 없냐"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여러 번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으니... 그때는 그냥 하루의 목표가 출근하기였다고 합니다. 거창한 비전도, 목표 KPI나 OKR도, 멋진 프로젝트도, 번듯한 조직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루의 목표는 출근하기가 유일했대요. 일단 출근만 어떻게든 하면 나머지 하루는 겨우겨우 살아졌다고 합니다. 녹초가 된 상태로 퇴근해서 잠을 자고... 겨우 조금 생긴 에너지로 다음에 할 일은 또 출근하기입니다. 그렇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번아웃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회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 마케팅, 인력 관리, 자금 관리, 창업을 위한 용기 등 그 친구가 보여준 많은 미덕이 있지만... 그 대화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이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에게 요구되는 DNA 항목을 업데이트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인티그레이션"에는 "인티그레이션 DNA"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며, 일반 구성원은 10 Standards, 리더들은 3개가 추가되어 13 Standards입니다. 얼마 전에 이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10 Standards 중 "자기 동기부여" 항목에 아래와 같은 구절을 추가하였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회복력 있게 일합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수정하신 항목이었는데요. 왜 이런 구절을 넣었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나누진 않았지만 그 의도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위에서 제가 도달한 고민과 같은 지점에 대표님의 고민도 도달했던 것이겠죠. 대표님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는 것이 제 자리인데요, 언제나 열정적이고 지치지 않아 보이는 대표님도 결국은 인간이기에 지치고 동기부여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이 대표님에게도 필요했고, 대표님이 보시기에 우리 팀원들 모두에게 필요했기에 저 구절을 넣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열정", "동기부여", "노력"이라는 단어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기간에 열정과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3년, 5년, 10년 지치지 않고 지속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의 커리어도 3개월, 1년 만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큰 성과라고 말할 만한 프로젝트들은 최소한 6개월 이상 소요가 되고, 수도 없이 많은 실패 끝에 겨우 성공이라는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성공적인 커리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니까요. 똑똑함, 열정, 노력, 운까지 따라줘야 겨우 조금의 성과가 나고 그것이 쌓여서 정말 좋은 기업, 위대한 기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내는 힘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20년을 살아내는 지속성의 힘

본인이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에 정말 불살라 가면서 하는 후배에게 조언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너무 좋다, 좋은 미덕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네가 점점 정신도 건강도 잃게 된다면 너도, 회사도 손해이다. 일이라는 것은 오늘만 하는 것이 아니라 3년, 10년, 20년을 해나가야 되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회복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조언을 하였습니다. 저 또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와중에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지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었습니다.

내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 어제의 나보다 발전하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들은 너무나 소중한 마음입니다. 성장과 성공의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큰 사람들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한 만큼 반작용도 강합니다. 더 많이 노력한 만큼, 더 많이 지치곤 합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고, 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거든요. 꿈도, 욕심도, 책임감도 많고요. 이 글을 읽으시게 된 분들도 아마 그런 분들이실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 잘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꾸준히 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도 또한 중요합니다. 전자의 가치는 다들 이미 잘 알고 있지만, 후자의 가치는 가끔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속하는 힘의 가치를 보여주신 제 첫 상무님이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글을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부족한 이 글이 독자분들에게 지속 가능성에 대하여, 꾸준하게 10년을, 20년을 살아내는 힘에 대하여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기서만 — 앞에서 하던 이야기

서두에 10년 차 정도까지 제가 한번도 번아웃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드렸죠. 하지만 저도 10년 차를 넘기면서 가끔 그냥 쉬고 싶고, 그만하고 싶을 때가 오더군요. 본문에서 "10년 차 정도를 지나면서 또 한 번 생각이 달라졌다"고 적었는데, 사실 그 무렵이 처음으로 저 자신이 지친다고 느낀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했었습니다. 일을 조금 멀리합니다. 정말 딱 해야 할 것만 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미룹니다. 그리고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나는 사람의 종류를 바꿉니다. 업무로 엮인 사람은 적게 만나고, 오히려 개인적인 인연들을 만납니다. 제 경우에는 그렇게 하다 보면 나아지더군요.

본문에서 후배에게 "회복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썼는데... 정작 저는 루틴이라고 부를 만한 걸 만들어둔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보니, 이름만 안 붙였을 뿐 저도 뭔가는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답장으로 알려주시면 저도 좀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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