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정의 <그때의 우리>

안녕. 지금 여기는 3월 2일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은 이제 막 3월 3일 금요일이 되었다. 3월 1일 아침 10시에 출발해 3월 1일 아침 9시에 도착한 이곳은 뉴욕. 어쩌다 보니 뉴욕에서 글을 쓰는 허세이자 낭만을 이루고 있다.

5일밖에 주어지지 않은 뉴욕 일정 중 원고 쓰기를 끼워 넣었다. 마침 이곳에서 글을 보낼 수 있으니 온전히 뉴욕에서 다 써보자고 다짐했다. 앞으로 이 글이 어떻게 흘러갈지, 어떻게 마무리될지 전혀 모르겠다는 고백이자 양해의 부탁이다.

조금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벅차서 울컥하고 말았다. 딱 4주 전,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갈 때에는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 ‘무섭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어 옆에 앉았던 H가 “손 잡아 줄까?”라며 농담을 건넬 정도였는데.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어느새 7년 전이다. 여러 번 말했듯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다시금 20대 초반 홀로 떠났던 한 달짜리 여행을 들먹이려는 거다. 사실 그때도 비행기 안에서 숨죽여 울었다. 어릴 적엔 환상에 가까운 꿈을 이뤘다는 설렘과 벅참에 가까운 눈물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왜일까. 물론 환상을 실현했다는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홀로 해내는 모든 것에 여전히 떨리는 탓 같기도 하다.

겁이 많다는 말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열네 시간을 날아오며 잠이 들지 않는 틈에는 온갖 무서운 상상을 했다. 실제로 일어날 법한 공포를 그렸으니 더욱 무서워 적지 않겠다. (조심하라는 말을 열 번 넘게 한 엄마에겐 비밀이다. 어차피 말도 다 통하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허세를 잔뜩 부리고 왔다.)

그때와 지금의 달라진 점은 무얼까. 그때 꿈꿨던 모습을 얼마나 이루었지?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이긴 하다. 아니, 그땐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줄조차 몰랐다.

언젠가 당신께도 적어 보낸 적이 있던가? 나는 서울을 참 사랑한다. 웬만한 곳으로 여행을 가도 결국은 서울을 그리워하는 편인다.(이번 여행 첫날도 유효했다.) 정신없는 대도시가 좋고, 현란한 무채색의 내 도시가 편안하다. 뉴욕은 서울과 비슷한 빛의 색을 가졌다. 심지어 지금은 날씨도 비슷해 빛과 온도만으로는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게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건물의 색감이나 높이, 사람들의 옷차림, 공기의 냄새는 전혀 처음 겪는 것들이다. 게다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수백 개를, 말 그대로 늘어놓고 전시하는 도시. 길만 건너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술관이 앞다퉈 자리한 곳. 매일 밤이면 지하 재즈 클럽에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연주를 선보이는 음악가들. 부러운 것투성이다.

뉴욕에서 단 다섯 밤, 네 번의 낮을 보낸다. 짧디짧은 여행도 10년 가까이 되새기는 유통기한을 가지게 될까. 그때-하며 시작하는 문장을 자꾸만 적 어내려가게 될까. 이 글들을 묶는 데 ’그때의 우리‘라고 이름 붙일 때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는데, 되새길수록 참 미련 많은 문구다. 아직 두 번째 날이다. 뉴욕에서 맞은 첫 번째 아침이기도 하다. 남은 며칠 동안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미련을 흘려두고 갈까.

‘그때‘를 말하기에는 주저 없지만 ’우리‘라는 말을 꺼내기엔 겁이 난다.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니 언제, 어디에,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붙여야 할지도 고심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이곳엔 ’우리’라 칭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그 빈틈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을 조심히, 안전히, 마음껏, 행복하게 보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친구들의 마음이 ‘우리’를 채워주고 있을지도. 아이, 참. 또 눈물이 나려 한다.

분명 뉴욕 이야기를 적으려 했는데 또 나의 시답잖은 단상만 늘어놓았다. 여행 이야기는 막상 여행 중일 땐 할 것이 별로 없는 탓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현재는 과거일 때보다 찬란해진다. 이 또한 미련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뉴욕에서 보내는 글이라는 시작에 다소 기대했을 분께는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이곳에서 목요일에 글을 쓰고, 그곳의 금요일 밤 열한 시를 맞춰 보낸다는 게 늦어진 점도 사과드린다. 조금 전 들어와 저녁을 먹고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 금요일 밤 열한 시가 되어간다. 결국 여기 시간에 맞추기로 한다. 뉴욕 이야기는 서울로 돌아간 뒤 다시 적어 보내드릴 거란 약속도 남긴다. 마지막엔 사진을 몇 장 남겨두려 한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것의 묘미란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