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의 <머물러요, 이곳에서>

그런 날도 있었다. 첫차를 타려고 카페에서 밤을 지새운 날. 책을 읽다가 꾸벅 졸기도 하면서 버티던 새벽에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제가 곧 끝나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아침을 먹을까요. ”

여러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이었을까. 거절의 말을 건네자 돌아서는 그에게 다가가 재차 그러자고 말했다. 능숙하게.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 사람이 마음에 든 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오래 지켜봤는데 마음에 들어서라던가. 번호를 달라는 말이 아니어서였을까. 마침 배가 고픈 김에 아침 먹자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져 시간을 내어주게 되었나. 그날 일을, 그날의 나를 잘 모르겠다. 어떤 연유로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다. 살다 보면 한 번은 뒤가 없는 용기 같은 게 생긴다던데,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서 그랬을까. 

서울 사람이 아닌 내가 아는 그 동네의 유일한 24시간 집이어서였나. 나는 그에게 분식 좋아해요 ? 물었고, 초면인 그와 나는 마주 앉아 떡볶이에 만두를 먹게 된 것이었다. 딱. 밥만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아쉬워하는 그에게 실은 나 애인이 있다고, 지금은 먼 곳에 있다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맛있게 먹었으니 부디 좋은 식사였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스름이 가시고 하늘이 밝아지며 이슬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축축한 아침이었다. 

그곳에 나를 처음 데려간 건 호였다. 정확히 말하면 호와 그녀들. 허나 앞장서서 나를 이끌었던 건 그녀였으므로 기억은 그리 완성되었다. 호는 모를 이야기지만,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친해지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때 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카멜 색의 케이프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우아한 자태에 걸맞지 않은 상큼한 웃음소리를 가져서 자꾸만 눈이 갔다. 나는 절로 돌아가는 고개를 앞에 붙잡아 두느라 혼났다. 

“ 홍대에서 공연을 보면 뒤풀이는 당연 여기죠 ! “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내 생에 아마도 청춘이라는 순간을 꼽아보자면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더없이 멋진 일이었다. 삶이 달라졌다. 살고 싶어졌거든. 내 친구들은 꽤 꼿꼿한 사람이어서 호들갑을 감당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게 됐고,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말하길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한참 주접을 떨고 나면 가끔은 부끄러웠다. 테이블에 쏟아져버린 마음을 서둘러 주워담으며 괜히 마른 목을 축이곤 했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죄다 흘리기에 바빴다. 제 손과 얼굴에 뭐가 묻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웃었다. 저기 얼굴 좀 보지그래, 야 너도 묻었어,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깔깔댔다. 그래서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느냐면요 ! 우린 그런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오직 사랑만을. 직업도 나이도 모른 채로 한참 사랑을 말하다 보면 몰라도 좋았다. 구태여 알 필요가 없어졌다. 

나만큼 먼 곳에 사는 그녀의 버스가 마침 이 부근에 섰으므로 우리는 시간에 맞춰 가게를 나섰다. 정류장 앞에는 언제나 사람이 줄지어 있었다. 그녀는 운이 좋으면 앉아서 갔지만, 대부분 서서 집으로 갔다. 마지막까지 우리가 보이면 차창 밖으로 손 흔들던 호의 다정함에, 우리가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나는 더욱 자랑스러워지곤 했다.

뒤풀이 장소가 근사하지 않아서, 고작 분식집 !? 이어서 오히려 좋았다. 내겐 이보다 적합한 낭만은 없었다. 뻔한 카페도 아니고, 술집은 더더욱 아니라 떡볶이와 오뎅과 만두로 장식하는 하루라니. 성공한 어른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더구나 만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 갈비만두 ’ 는 진짜, 진짜, 진짜 맛있었다.

어릴 적 우리집에는 만두소와 만두피가 자주 냉장고 안에 있어서 언제든 빚어다 쪄먹을 수 있었다. 내가 만두를 얼마나 잘 빚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사실 나는 ‘갈비 만두’ 를 처음 먹은 날 너무 맛있어서 호를 데려다 주고, 사람들과 헤어진 후에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혼자 먹기 너무 아까워서 가족들에게 가져다줄 만두를 포장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모조리 다 먹어치웠다. 엄마를 만나자 마자 “ 만두를 포장해서 오는데 못 참고 그만 다 먹어버렸어. “ 멋쩍은 고백을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실패했다. 기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검은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빈손이 되고 나면 내가 너무 싫었다. 고개를 들면 막차 타고 내려온 날 데리러 온 엄마 아빠가 있었다. 

긴 시간의 텀을 두고 다시 그곳을 찾은 날에는 혼자였다. 그동안의 갈급함을 채우기라도 하듯 앉은 자리에서 두 판으로 시작해 열 판을 먹었다. 보다 못한 이모님이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나는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네 팩을 포장했다. 그마저도 몇 시간 뒤 어느 거리에서 다 먹어버렸을 때 나는 조금 울 것 같았다. 한판에 열 개, 무려 백 마흔 개를 먹어치운 것이다. 남편은 아직도 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허기가 졌다. 그 후로 오늘까지 마포만두에 가지 못했다. 

그 말인즉슨, 홍대에서 공연을 본지가 무척 오래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을 사랑하는 눈빛인 네가 얼마나 반짝이는지 너는 모르지 ? 친구가 말했다. 평소 거울도 안 보는 내가 내 표정을 알 리 만무하다.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머릴 모은 채로 공연이 어땠는지 말하고, 오빠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내 얼굴을 기억할테지. 아마 호도 반짝이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살아있었단 게 믿기 힘든 날이 찾아온다. 노래를 듣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되었다. 내 플레이리스트가 몇 년도에 멈춰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던 오빠들이 이제는 조금 우습고, 그래서 나도 빛나지 않는다. 

꿈 같다. 어느 밤 내 목소리가, 가게가 떠나도록 머물기도 했었다는 게. 

노래를 듣기 위해 모두가 고요해지는 순간의 공기. 공연장의 자욱한 냄새와 무대 위로 떨어지는 조명 주변으로 흐드러지는 먼지들. 하나가 되어가는 박수 소리에 늘 울고 만다고. 그 속에 내가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하다 보면 벅차올랐다. 다시 그 순간으로, 컴컴하고 더운 곳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별로인 매일을 살아서, 장면이 절실한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살아갈 수 있었다. 살 힘을 얻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죽고 싶었던 그날들이 실은 제일 빛났더라고. 살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을 해서 반짝였다고.

정열의 빨간 테이블, 빨간 의자에 우리가 앉아있다. 축축하고, 뜨겁고, 달콤한 (만두 !?), 내가 기억하는 그녀들의 얼굴이 곧 내 젊음이다.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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