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생생 월드 쏙쏙

제 49회, 탄생

2022.12.02 | 조회 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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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탄생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내가 왜 이 세상에 탄생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 때, 나는 이유도 없이 종종 우울했다. , 오해는 마시라.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어쨌든 난 이따금씩 우울해질 때마다 골목길을 걸었다. 길 건너 조용한 학교 내부와 근처를 걷고 짙은 덤불 사이를 넘나들었다. 이유 없이 친구의 집 문 앞까지 가거나 살 것도 돈도 없으면서 문구점을 기웃거리고 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달려가고, 어떤 날엔 이유도 목적도 없이 아주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종점까지 가거나 문득 어딘가 모를 하천 근처에 내려 그 주위를 저녁 늦게까지 걸어 다니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생각들과 너무 많은 일들과 그것들을 해야만 하는 너무나 많은 이유들과 반드시 배워야할 무언가와 공부와 그러면서도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무언가와 그러함에도 나도 모르게 알게 되어버린 무언가와 내리막길과 오르막길과 어떤 언덕과 노을과 바람과 이빨들이 있었다.

  별다른 이유도 별다른 목적도 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어떤 길에 내려 낯선 골목과 벽들을 지문 사이사이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을 때까지 더듬으며 걸었다. 음악을 아주 많이 들었다. 음악의 세계엔 나처럼 스스로의 탄생과 존재이유에 대해 모른 채,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았다. 나도 그들처럼 무언가 소리쳐 부르고 말로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소리로 나타내고 싶었지만, 나는 다만 음악적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지독한 음치인 동시에 박치라는 점을 고백한다) 대신 무언가 끊임없이 썼다. 그 쓰는 행위 또한 사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지 못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사촌동생이 태어났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나에 대한 고민과 생각 같은 건 모두 잊어버리고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순간에 그녀는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자라던 몇 해 동안 나를 비롯해 사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은 그녀에게 간단한 어떤 것들을 알려주려고 애썼다. 더 큰 슬픔과 존재 이유를 쫓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생존해야했고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생존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걷는 법을 몰랐고 깔끔하게 먹는 법을 몰랐고 자신의 신체를 잘 다루지 못했고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고 기쁨의 단계를 나누는 법을 몰랐다. 강아지를 무서워했고 여느 아이처럼 시끄러운 것들을 싫어했다. 나는 이유도 없이 그녀가 좋았고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좋아하면 그것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얼굴을 있는 힘껏 구기며 환하게 웃었고 터무니없이 시끄럽고 밝게 웃었으며 때론 육체를 다루는 법도 잘 모르면서 무언가에 기쁨을 느끼면 팔다리를 사방으로 힘껏 흔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춤처럼 보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가 넘어지지 않게 그녀의 보드라운 작은 팔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주곤 했다.

  사실 언젠가 나의 아이를 가지는 일이 두렵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거대한 사랑을 애인을, 나와 아내가 직접 탄생시킬 것만 같은 확실한 예감. 내가 가진, 지금껏 가졌던 모든 사랑보다 더 큰 어떤 압도적인 그 존재가 나를 바닥의 어떤 한 점으로 짓누를 것 같은 예감. 그 사랑이 나를 나의 존재라는 껍질에서 호두 알맹이처럼 파내어 바닥에 던지고, 다져서 원래의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뭉개버릴 것 같은 예감. 그 모든 것을 해낼 것이 분명한 어떤 탄생이 사실 나는 두렵다.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거기엔 아마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겠지. 나는 그 사랑을 영영 감히 표현하지 못할 것이고 그 사랑은 마침내 나를 시인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영원히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꿈을 그 아이 때문에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어서도 그 사랑을 끝내 전부 표현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짧은 평생동안 온통 생각하고 골몰해온 나의 탄생과 존재이유를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두렵다.

 

  UN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선 지 불과 11년 만에 80억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큰 폭으로 증가한 인구 증가율은 조금씩 둔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어쨌든 인류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예측에 따르면 90억 인구에 도달하는 데 15년 정도가 걸릴 수 있으며 UN2080년 쯤 세계 인구는 100억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시기 동안 UN50, 60, 70억 번째 인류를 대표할 아이들을 선정해왔다. 19877Matej Gaspar는 그가 태어난 지 몇 분 후, 그와 그의 어머니를 둘러싼 정치인들과 번쩍이는 플래쉬 세례에 둘러쌓였다. UNAlex Marshall은 여러 가지 예측을 통해 크로아티아 Zagreb 교외 작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Matej Gaspar50억 번째 아이 중 하나로 선택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살펴보고 세계 인구가 198750억을 넘을 것이란 예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계 상 그 날짜는 711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세계의 50억 번째 아이에게 세례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5년 후 현재, 인류의 50억 번째 아이는 이러한 사실을 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그가 Zagreb에 살고 있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화학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그뿐 그는 BBC를 포함한 어떠한 인터뷰도 거부했다.

  방글라데시 Dhaka 외곽에서 Sadia Sultana Oishee는 그녀의 어머니를 도와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Oishee는 세 딸 중 막내이자 가족의 행운의 부적이다. 2011년 태어난 그녀는 세계 70억 번째 아기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20101231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 그날은 출산예정일도 아니었고 의사 방문 후 그녀는 갑작스런 사태에 응급 제왕절개를 위해 분만 병동으로 보내졌다. Oishee는 그날 밤 자정 1분 전 쯤 세상밖에 나왔다. TV 취재팀과 지역 관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Oishee가 태어난 이후 방글라데시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 현재 그때를 기준으로 1,700만 명의 인구가 늘어났다.

  지난 23년 동안 지구의 인류는 대략 20억 명 증가했다. 약 20억 명 분의 고뇌와 상념과 우울과 기쁨과 행복이 지구에 더해졌다. 이 수치는 너무나 아득해 듣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떠올릴 수 없게 만든다. 사실 그 하나하나의 생명이 모두 너무나 아득하다. 우리는 매일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오늘을, 각자의 생으로, 우리 모두 각자의 고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영영 수치로 표현되지 못할 것이다. 탄생.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느리고 너무도 영원 같은 탄생. 그 탄생들 속에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마침내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가현에게 끝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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