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생생 월드 쏙쏙

제 53회, 끝

2022.12.30 | 조회 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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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마침내 끝이라는 주제로 돌아왔다.

 

 

  원고를 쓰기로 마음먹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에 왔다. 아담한 크기의 파란 상어를 마크로 삼은 카페인데 내부에 들어오니 의외로 파란색은 전혀 쓰지 않았다. 마크 하나 없다. 이렇듯 나의 기대를 통렬히 배반하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더 기대하게 하지만 사실 커피 맛은 그저 그랬다.

 

  마침내 시음회가 53회라는 회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주년을 맞이했군요... 마침내...

 

  1년은 52주이고 20211231일에 시음회를 시작했으니 152주보다 한 회가 더 많은 53회로 일 년째의 시음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52회를 넘긴 53회가 되었고 어찌보면 새로운 1년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주제는 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연말이면 으레 하는 말이지만 올해는 유독 더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물론 내 인생에서 올해는 유독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순간은 정말 많았다. 적어도 십년 이상을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올해도 어쩌면 으레 그런 한 해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든다. 수많은 변화를 가진 것 같지만 결국 어떤 일상성을 내포한 나의 생.

  어딘가 먼 곳의 산위에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바위틈에 쌓이고 하루하루가 지나며 조금씩 녹아내린 눈이 땅 속으로 스며들고, 물방울이 되어 스며든 눈이 산중계곡을 타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들고 언젠가 마침내 기화되어 어딘가에 비로 내릴 때, 그 비를 바라보는 농부의 기분 같은 것. , 마침내 비가 내리는구나. 어제도 엊그제도 지난 계절에도 내렸고 작년에도 십년 전에도 내렸던 그 비가.

  우선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올 한 해 모두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이지 가능하다면 일일이 찾아가서 악수라도 청하고 싶은 심정이다. 모두 개인적인 일들도 있고 인간적으로 성장하면서 생업을 위해 노력해야하는데, 올해는 특히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던 해여서 사회적 이벤트 발생만으로도 시간이 다 지나버린 느낌이다. 이맘때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정말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또 그렇게 품이 많이 들면서도 큰 의미도 값어치도 없어 보이는 때가 많은 일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도대체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상시 품는 나로서는 인간의 생이란 살아가는 내내 정말 궁금증 투성이 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곧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어떤 이들은 2023년을 목전에 둔 20221230일에 혹은 31일에 이 글을 읽을 것이다. ‘이란 결국 어떤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는 당연하면서도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했던 일 년 전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본다. (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것은 없다. 별다를 것 없는 한 해가 가고 별다를 것 없는 한 해가 돌아올 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어쨌든 우리는 아주 조금 더 성장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한 해 동안 어떤 의미로든 조금 더 성장했다. (나를 믿어도 좋다.) 그것이 업무의 숙련도이든 인생에 대한 고찰이든 부하를 갈구는 능력이든 누군가를 돕는 능력이든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이든 간에, 우리는 모두 성장했다 어떤 의미로든. (나를 믿어도 좋다.)

 

  시음회 첫 회 내 원고의 일부분을 다시 소개한다. (내용이 궁금한 이들은 1회를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몹시도 구태의연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전쟁도 미소도 사랑도 언젠가 끝이 나고, 마냥 영원할 것 같기만 한 1인 2만원 무한리필 소고깃집에도 제한시간이 있다. 끝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지금 읽고 계신 이 글도 언젠가 끝이 난다.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실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 우스터셔 주 잉크베로우의 작은 마을과 전나무를 여전히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영영 잊었다 해도 관계없다. 조금 무책임하게 말해서 당신이 그 작은 마을과 전나무와 어떤 노부부의 이야기를 잊는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단, 존재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것들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언젠가 늙고 병들 것이고 그런 과정 중에 꽤나 많은 사랑과 관계와 생각 따위를 잊어가고 잃어버리겠지만 이 역시 괜찮다. 실제로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잉크베로우의 전나무와 연말을 밝히는 작은 거리의 불빛들과 폭죽들은 여전한지도. 나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어째서 이 다만 녹록치 않고 서글프고 사랑으로 넘치며 한없이 외로운 생을 기꺼이 살아가는지. 당신과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어떤 표정으로 맞이하는지, 나는 궁금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해를 살게 되겠지.

 

  글 말미에 1회에 소개했던 뉴스를 다시금 소개한다그리고 1회의 마지막 말들까지도.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조금 무책임하게 말하자면 끝이라는 건 어쩌면 시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 같다. 구태의연한 이야기다. 어쨌거나 나는 내년 겨울이 오면 잉크베로우의 전나무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국 시골 조용한 마을 어귀에 찾아와, 커다란 전나무에 걸린 조명을 바라보며 한 해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사람들, 한적한 길가에 세워져 있는 다양한 색깔의 자동차들, 폭죽을 들고 소리를 치며 길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내 조금은 안심할 것이다. 아아, 올해도 끝이구나. 그렇지만 끝이 아니구나 하고.
the end.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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