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다가 무지개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 소리 내는 사람들. 어딘가 숨죽여 살던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열넷이었나.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엄마보다 한참 어리지만, 친구로 지냈던 대학원생 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다 결국 귀결되었던 질문은 그래서 언니는 남자친구 있어요 ?
"가현 씨. 사람을 처음 만나면 말이에요. 깊은 이야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니까 상대가 남자친구가 있을지 여자친구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잖아요. 이럴 때에는 혹시 모를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인있냐고 물어보는 게 좋은 것 같더라구요."
순간 머리를 댕, 하고 맞은 기분이 들었다. 맞네. 너무도 이성애적인 생각으로 내가 접근했구나. 그것이 일반적일 순 있지만, 당연한 일은 아니었지. 그녀도 나의 자연스러운 언사를 잘 못이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고마웠고. 내가 그간 저질러온 실수를 머쓱해하지 않으며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시절을 여중 여고에서 보냈으므로 이 집단 안에서 으레 떠도는 풍문을 나 역시 들어보았다. 그것의 진위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소문 안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음들을 나 역시 묵과하며 지나가곤 했다. 당사자도 드러내기 조심스러운 정체를 내가 먼저 변호하기란 어찌나 무안한 일이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도대체 왜 구설이 되어야 하느냐고, 쉽게 떠드는 말들 사이로 소릴 내었다면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힘이 되지 않았을까 후회하였다. 먼 훗날 어떤 일로 나는 진심으로 더욱 그리하게 되었고.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표현이 잘못된 사랑도 있다.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처벌을 받아야 하고,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사랑조차 같은 취급을 받는 걸 보고 있자면 슬프게 된다. 사랑을 응원받지 못하는 건 아프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이 설사 병이라 한다면 더더욱 이상하게 여겨선 안 되는 거 아닐까. 우리는 감기에 걸리거나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이상하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이 말에 동감한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말하는 거다.
감사하게도 나는 주변의 사랑을 많이 보며 자랐다.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 모습에도 노출되어있었고,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의 형태에도 익숙해져 있어 이 모든 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매 순간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어떤 사랑에는 분노하기도, 어떤 사랑을 인정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감정이 변모하며 사고가 전환되는 과정이 있었으므로 나는 사랑을 진정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보는 만화 배경에는 무지개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요즘은 무지개 마을에 사는 꼬미랑 베베와 가장 친한데, 20년도 12월에 방영을 시작한 만화 안에서조차 여전히 여자인 캐릭터는 분홍색 옷을 입고 엄마를 동경하며 화장품을 바르고, 남자인 캐릭터는 파란색 옷을 입고선 운동을 한다. 엄마는 요리를 한다. 아빠는 어쩌다 요리를 하지만, 서툴고 실수투성이며 그 모습을 엄마가 귀여워하다 이내 수습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화 속 캐릭터와 같은 양상을 띠는 지도 모른다. 성별에 따른 역할이 규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다고 해도 아직 다수가 만화 속 엄마아빠 같은 삶의 형태를 띠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이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노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동할수록 아이들은 다른 모습의 타인이나 눈치 보는 소수의 사람들을 다른 눈으로 보지 않고 익숙하게 받아드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은 교육이 중요하다. 가정에서건 사회에서건 우리는 살고 만나며 어울리고 부딪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다양성과 존재 가치에 대해, 또 모두의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한다.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소년과도 이야기한다. 내 아이가 조금 다른 색깔을 가지고, 다른 모양의 사랑을 한다면 우리는 어떨까. 슬프겠지, 아이가 반짝여서가 아니라 그 반짝임을 숨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까봐서. 반짝인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테니까. 아이가 자신이 조금 다르다고 본인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처음부터 가르쳐야겠지.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라고.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네가 너로 사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고. 우리는 항상 네 편이라고. 너를 너라서, 너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사랑하고 있다고. 네가 온전히 너로 살아야 우리도 행복하다고 말이야.
예전에 지인이 캐나다에 다녀오며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받은 물품들을 기념품이라며 잔뜩 안겨준 적 있었다. 무지개 팔찌, 무지개 부채, 무지개 장갑. 그 사이로 십자가가 있었다. 인상적이었어, 밴쿠버 교회 연합이라고 크게 적힌 배너와 십자가를 들고 그들도 함께 행진하고 있더라고. 충격적이었다. 괜시리 울컥하게 되었고. 박해받았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세상은 나아지고 있었구나,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가 들끓고, 다수가 모이는 행사들이 중단됨에 따라 내 친구들과 친구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열던 파티도 잠시 자취를 감추었다. 오는 7월 16일, 그들이 다시 함께 걷는다고 한다. 서울시에서는 과다 노출을 금지하는 조건을 걸어 허가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소수로 사는 사람들이 자신을 널리 드러내는 날이 하루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존재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과 언쟁하지 않고도 평화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년 만에 다시 떠오를 거리의 무지개를 응원한다. 다양한 색깔이 빚어내는 세상이야말로, 색깔을 또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해롭지 않을 테니까. 먼 곳에 있더라도 한마음으로 발맞춰 언제까지나 걷고 있다.
*언제나 사랑을 말하지만, 무성애와 무로맨틱도 존중하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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