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레터 주제가 참 재미있습니다. '살면서 가장 쪽팔렸던 순간'을 기록한 팀라이트 작가님의 글을 소개할 예정이거든요. 주제를 듣자마자 구독자님은 딱 떠오른 순간이 있나요? 저는 있었습니다. 생각을 끄집어낼수록 사연이 계속 떠올랐어요. 한 둘이 아니더라고요(🤣) 덥고 습한 여름 장마철의 불쾌지수를 싹 몰아낼 수 있는 편지! 각양각색의 삶을 들여다보며 킥킥켁켁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7월 금요일 오전만큼은 현생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우르르 몰려와도,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유쾌한 이야기를 담아보겠습니다. (참고로 매거진 주제를 정한 이는 유쾌한 영글음 작가님이랍니다)
오늘 저의 원픽은 마마뮤 작가님의 글입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리조또와 영구의 만남이라니...! 읽는 내내 양념 치듯 들어있는 유머러스 함을 만끽하며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읽고 나서는 어딘지 모르게 묵직한 감동도 몰려왔어요.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실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시죠? 바로 소개하겠습니다.
✍🏻 writing한 글쓰기
리조또 안에 영구 없~다
글: 마마뮤 작가
서른을 훌쩍 넘겨 30대가 푹 익어 묵은지가 되어가던 그 언제였을게다. 누가 주선자였는 지조차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데, 어쨌거나 외로운 나를 측은히 여긴 어떤 고마운 양반의 주선으로 상당히 멀끔한 남성과 소개팅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키가 크기 때문에 사실 소개를 받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대한민국 남자들의 평균 키를 172.5cm(2022. 03월 기준)에 그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172~173cm를 넘나드는 나는 아무리 땅바닥과 절친인 납작 구두를 신어도 대게는 남성분들이 눈높이에 있기 일쑤였다. 눈높이면 다행이지 내심 나의 바람이 하나 있다면 그저 만나볼 사람의 정수리만큼은 목격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퇴근 후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소개팅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개팅은 왜 꼭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나름 분위기가 그럴싸하고 파스타 내지는 피자라는 음식 자체가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비교적 깔끔하게 먹기 좋은 음식이라 그랬을까. 이태리 사람들도 의아해할 만큼 넘쳐나는 파스타집에는 누가 봐도 그렇게 처음이라 어색함이 양념으로 올려진 만남을 쉽사리 마주할 수 있었다.
상대 남자분의 신상 정보도 지금은 단 한 가지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데, 다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세상 반갑게 키가 컸고 나름 인상이 서글서글하니 괜찮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 만남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당연지사.
일단 메뉴를 선택했다. 음식을 장식으로 두던 아님 맛나게 먹던 뭘 하건간에 주문은 해야 하니 말이다. 아무리 소개팅 자리라 긴장되고 머리가 평소처럼 차근히 잘 안 돌아갈지라도 경건히 메뉴 앞에서 떠오른 건 밀가루보다는 쌀이 좋잖아~라는 때와 장소에 맞지 않은 건강한 생각이었다.
나는 자신 있게 리조또를 콕 찍었다. 먹기도 편하고 건강에도 좋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피로 해소 물질인 타우린이 풍부해 간기능을 향상하고 뇌졸중 및 부정맥 예방에도 도움이 되며 비타민E, 아연, DHA 등도 많아 아동과 노인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는 데다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소화에 도움을 주는 뮤코다당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오징어 먹물'이 들어간 리조또였다! (구글에서 알려준 오징어 먹물 효능인데, 숨차다)

대화는 그럭저럭 오갔다. 상대 남자분도 꽤나 매너 있게 대해 주시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내일의 출근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만 정리하고 퇴장하는 게 당연한 수순. 그 순간이 애프터로 이어질 것이냐 말 것이냐까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 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 뭔가 파투 나는 사인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던 나의 속마음 말이다.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남자분께서 친절하게 웃으시며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는 분위기였다.
소개팅남: "저는 그럼 지하철 역으로 가야 해서 이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나: "아... 저도 그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같이 가시죠... (한껏 미소)"
소개팅남: "아... 아아... 예... 그러시죠 그럼... (뭔가 떨떠름한 미소)"
그렇게 끊어질락 말락 하던 만남의 시간을 지하철 역까지 연장시키며 걸었던 기억이 마지막이다. 아마도 지하철 역에서 각자 갈길을 갔겠지.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또 만감이 교차했었을 테다. 실패의 향기를 진하게 맡으며 또다시 외로운 신세를 한껏 타령하며 걸었을지도...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울 앞에 앉았다. 이만하면 크게 하자는 없는데 왜 나는 잘 안 되는 걸까 속상한 마음이 또 찾아왔다. 한없이 자존감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또 쭈글하면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마음을 고쳐 먹었다. 웃자 웃어! 화알짝!
거울 속에 웬 영구가 한 명 앉아 있었다. 화알짝이 화들짝이 돼버린 순간.
오. 징. 어. 먹. 물. 리. 조. 또!
그 좋다는 오징어 먹물이 음식에 들어가 이런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했던 그 밤. 다시는 소개팅에서 검은색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인생사 뭐든 첫 시도 한방에 성공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나. 특히나 만남에 있어서, 더구나 평생의 인연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라면 더더구나 실패와 흑역사가 난무하기 마련 아닐까. 처음 만난 소개팅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상황에 뭐라 알려주지도 못하고 그 상황을 참아내느라 그 남자분도 고역이었을 수 있겠으나, 아닐 말로 이어질 연분이라면 이빨에 김이 아니라 고춧가루가 도배되어 있어도 잘 되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인연이 아니니 그렇게 제 갈길로 가는 것일 뿐.
그 덕분에 이빨에 김을 붙이고라도 마주 보며 깔깔 웃을 수 있는 최고의 반쪽을 만났으니 지난했던 그 모든 과정 역시 감사한 경험일 뿐. 이렇게 나의 영구스러운 흑역사를 만방에 내 손가락으로 다 찍어서 밝히게 될 줄은 몰랐으나 덕분에 현재의 소중함을 새삼 또 깨닫는다. 그날 영구가 없었어서 참 다행이다.

지난달부터 팀라이트 레터 <글 쓰는 마음>이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혹시 느껴졌나요? 저희는 구독자님께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고정되지 않고 계속 흘러가보기로 했어요. 아주 미세한 변화지만 레터유닛 작가님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콘텐츠를 바로 여기! 작은 코너에 담아보기로 했습니다.
'내 삶에 지혜를 주었던 그림책 속 문장들이 구독자님께도 닿기를'
저에게는 삶에 지혜를 줬던 수많은 그림책들이 있어서 그것을 풀어볼까 합니다. 그런데 막상 풀어보려 하니 제목을 정하는 것부터 어렵더라고요~ 정말 정직하게도 저의 닉네임인 '글향'이 추천하는 그림책이므로, 향기로운 큐레이션을 떠올렸고, 더 정직하게도 앞글자를 엮어 '향큐'라는 코너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인 느낌은 상당히 토속적이지만(🤣) 구독자님께 향기롭게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말이 너무 길었죠. 이번 달 레터 주제가 '실수'로 인한 쪽팔림이니만큼, 실수를 통해 성장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캔버스에 찍은 얼룩 한 점이 위대한 생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이야기, 그림책 <아름다운 실수>를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천천히 느껴보실까요?



우리의 삶은 여러 조각의 경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들 중에는 어쩌면 얼룩진 실수처럼 내 것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은 것도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실수도, 실패도, 그 모든 쪽팔림의 경험들도 모두 다 내 것인걸요. 그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내일의 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훌륭한 글감이 되어, 멋진 글을 작성할 수 있게 해 주니까요!
아름다운 실수를 기록하며, 글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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