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一日)

[틂씨의 일일] 언어의 감각을 잃지 않고 싶어요

그래서 편지를 쓰게 되나 봅니다

2024.01.29 | 조회 133 |
0
|

틂씨의 일일

네덜란드의 일인 가구 생활자 <틂씨의 일일>을 글로 전합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처럼 영하 10도로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0도에 가까운 날씨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어요. (네덜란드는 겨울에도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비가 많이 오고요.) 얼마 전에는 눈이 와서 쌓이기도 했습니다. 보통 네덜란드의 눈은 내리다가도 영상의 기온 덕에 비로 바뀌거나 지면에 닿자마자 바로 녹아버리는 편이거든요. 

그날은 코트의 깃을 부쩍 세우고 목도리로 얼굴까지 둘렀는데도 써늘한 기운이 돌더라고요. 수리를 맡긴 자전거를 찾지 못해서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려고 메트로 정거장으로 향했습니다. 지붕만 있지 양쪽으로 뻥 뚫린 메트로 정거장에 칼바람이 들이치더라고요. 그런데 구석에 서 있던 어느 더치 할머니가 서있던 자리에서 비켜서시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을 끄덕이시는 거예요. 제가 서 있는 쪽은 바람이 들이치니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며, 추워 보인다고요.  

조금 달달 떨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은 젊으니까요. 할머니의 부름에 무슨 뜻인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괜찮아요, 거기 계속 계세요, 하고요. 그렇게 권유했다고 해도 제가 할머니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분을 저 대신 찬바람을 맞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감사하다고, 밝게 웃어드렸죠. 실제 동아시아인의 비율이 1%가 채 되지 않는 도시에서는 여전히 가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을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알게 모르게 항상 어느 정도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어요. 

할머니는 혹시 이 동네에 사느냐고, 만약 다른 나라에서 온 거라면 이런 추위가 낯설 수도 있지 않겠냐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두 가지에 놀랐죠. 첫째, 겉모습이 아시안이라고 해서 함부로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 않고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인지를 먼저 물어왔고, 둘째, '만약' 로컬이 아니라면 이런 추위가 낯설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추측하는 말투로 물어봤다는 점 때문에요. 생각을 아주 단순화시켜 본다면, 아시안-동남아 출신-일 년 내내 따뜻한 나라에서 온 사람=현지인이 아님,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는 편견의 회로를 멈추고, 혹은 실제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 것 자체가 배려로 느껴진다고 하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요? 하지만 외국인으로 오래 살다 보면, 이렇게 섬세하게 상대방의 배경과 상황을 판단하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껴요. 막상 제 자신조차 편견의 회로를 돌릴 때가 많거든요. 갑자기 마음이 엄청 따스해지더라고요. 할머니, 제가 사실 이 도시에 산 지 벌써 N년이 되어가요, 그래서 익숙해졌어요. 하고요. (한국이 이것보다 훨씬 더 춥다는 말까진 전하지 않았지만요)

 

코로나 내내 이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동안 꽤 오래 고립감에 허덕이는 시간을 보냈는데도 그게 순식간에 깔끔하게 사라지는 순간은 이런 낯선 사람들의 작은 친절과 다정함을 느낄 때였어요. 그런 마음을 받은 날엔 눈에 작은 하트를 달고 일상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냐며. 물론 길 가다 니하오 공격을 받은 날엔 또 금세 반대의 기분이 되지만요.  

앞으로 이 나라에 얼마나 오래 살든, 여전히 저는 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완벽한 더치를 할 줄 모르는 영원한 이방인일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다정함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면 조금은 더 온전하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저는 다정함 지상주의자가 되었고요. 

 

 

 

 

최근에 <사랑한다고 말해줘>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데, 정우성이 작품을 보고 무척 감동해서 판권을 사 두었다가 드라마화된 거라고 해요. 초반에 아주 인상 깊은 씬이 있는데요. 여주인공 모은이 남주인공인 진우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는 순간이에요. 이게 왜 특별하냐면, 진우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거든요. 늘 청인들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먼저 노력하고 다가서야 하는 쪽은 진우였는데요, 그런 그의 세상에 불쑥 모은이 수어로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그렇게 내 방식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드라마에서의 특별한 점은 수어를 '청인들이 쓰는 한국어를 보조하는 통역 수단'이 아닌, 아예 다른 언어로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모은과 진우의 사랑은 청인과 농인,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사랑보다는,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일이 되고요. 실제로 수어는 단순히 한국어를 시각적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표현법이나 어순 등도 다를 때가 많아서 아예 다른 언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올바르다고 합니다. 알고 계셨어요? 저는 몰랐거든요. 여튼, 그래서 모은은 처음으로 수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요. 다른 언어를 가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수어를 외국어로 바꾸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경험한 외국어는 그랬거든요. 노력해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고요, 계속 애를 써도 손에 완전히 닿지 않는달까요. 모은과 진우도 처음엔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누구보다 서로에게 가까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계속되는 일상을 마주하면서 종종 어떤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모은이 기껏 노력해서 수어가 늘어가는데도 막상 급한 마음에 들거나 답답한 때엔 속시원히 말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저도 평소에는 일상의 대화를 영어로 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거든요. 하지만 지치고 피곤한 날엔 영어를 한 마디도 꺼내고 싶지 않아요. 더치(네덜란드 어)는 더하죠. 

이 드라마에는 또 다른 특이점이 있어요. 수어를 쓰는 주인공들 덕분에 덩달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까지도 화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놓쳐요. 수어는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요. 일부러 켜 둔 한국어 자막은 금세 지나가버리고요.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보아야 소통이 가능한 현실처럼 시청자마저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보통은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한 시간 내내 화면 앞에 앉아 있지 않잖아요. 조금은 한눈을 팔고 잠깐 자리를 떠도, 귀로 듣고 있으니까 내용이 끊길 일이 없죠. 하지만 수어는 얄짤이 없습니다. 항상 눈앞에 집중! 해야 하는 거죠. 

모은은 처음에 말을 알아듣기 위해 상대의 얼굴에 집중하는 진우가 좋았다고 말해요. 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잖아요. 진우는 모은의 얼굴을 열심히 바라보고요, 모은은 진우가 하고 싶은 말을 노트나 핸드폰에 적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서로 같은 언어를 썼다면 너무 당연하고 쉬웠을 일들이, 에너지를 들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할 수 있는 일이 되죠. 외국어를 쓰는 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온 신경을 곤두 세워도 일상을 늘 80% 정도의 이해도로 살아내는 일이, 어떻게 항상 기쁘고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시력이 나쁜데 안경을 쓰지 못하고 흐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과 비슷합니다. 언제 100% 소통이 될지 알 수 없어요. 그런 날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고요. 처음엔 괜찮을 것 같지만, 결국 힘든 날이 오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이방인의 삶처럼요. 그래서 드라마 속 간극을 지켜보는 일이 흥미로웠어요. 공감이 가서 슬프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영어도 완벽하지 못한 데다, 더치는 더더욱 까마득한데요, 장기적으로 보자면 둘 다 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어쨌든 이 나라의 기본 언어는 더치니까요. 그런데 제 두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더치를 더 잘하려고 애를 쓰면 대신 영어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뒤늦게 배운 언어들에 올인하면서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잃고 싶지도 않고요. 제3의 언어는 정말이지 쉽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엔, 친구가 we're friend 가 한국말로 뭐냐는 거예요. 그런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우리는 친구!

우리는 친구지. 

우리는 친구야.

우리는 친구다. 

어떤 어미를 가르쳐줬어야 옳은 표현일까요? 그건 맥락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영어로 번역하면 결국 다 같은 뜻이겠지만, 엄연히 뉘앙스가 다른데. 그걸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제가 가진 언어의 한계 안에서는.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저도 평소에는 '우리=친구'라는 커다란 덩어리의 뜻 정도는 언제나 파악하고 있지만, 아마도 세세한 맥락까지는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거겠죠. 처음엔 그 정도만 알아들어도 만족스러웠어요. 그것도 못 알아들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더 바라게 됩니다. 맥락까지 선명한 소통에 대한 갈망이 제 안에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긴 편지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자신 있는 한국어에 대한 감각을 놓고 싶지 않아서요. 이 기분과 느낌을 곡해되지 않게 아주 고스란히, 어딘가에는 전하고 싶어서.  

 

 

 

 

한국도 갑자기 추워지는 날들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각자의 자리에서 추위를 잘 이겨내고 계시길 바라면서, 전해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틂씨의 일일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틂씨의 일일

네덜란드의 일인 가구 생활자 <틂씨의 일일>을 글로 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