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스러움을 정의하는 것들은 많다. 오후의 티타임, 안개 낀 런던의 거리, 왕실 등. 그러나 내겐 이 모든 것들 사이에서 유독 특별히 빛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케임브리지를 가로지르는 캠 강 위에서 긴 장대를 든 사람이 평저선을 밀어가는 모습, 바로 펀팅(punting)이다.
케임브리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캠 강에서의 펀팅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긴 장대 하나로 평저선을 밀며 수백 년 된 케임브리지 대학교 건물들을 지나는 그 경험은 단순한 뱃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국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전통과 여유, 우아함과 어설픔이 공존하는 그 특별한 무언가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느린 물살을 타고 흐르는 펀트 위에서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은 수백 년간 철학을 논했고, 시를 읊었으며,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물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지기도 했고 말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캠 강(River Cam)에서 시민들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펀트를 타고 한숨의 다리(Bridge of Sighs) 아래를 지나는 모습. 한숨의 다리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속한 다리로, 베네치아의 탄식의 다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다리를 건널 때 마다 한숨을 쉰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케임브리지의 상징적인 풍경 중 하나다. 출처: Diliff CC BY-SA 3.0
실용에서 낭만으로
펀트배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그 시작은 지극히 실용적이었다. 평평한 바닥을 가진 이 배는 원래 템즈 강과 그 지류의 얕은 물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물건을 나르기 위해 고안되었다. 중세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이 소박한 배는, 말하자면 영국 수로의 픽업트럭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의 여유와 낭만주의가 꽃피던 시절에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1860년대부터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학생들이 펀팅을 여가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도시가 팽창하고 삶이 분주해지자,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느림과 자연을 갈망하게 되었다. 학문에 지친 젊은이들은 책을 내려놓고 장대를 들었다. 캠 강과 체르웰 강의 수면은 이제 단순한 수로가 아니라, 사색과 대화가 흐르는 일종의 떠다니는 살롱이 되었다.
펀트 배의 구조. 출처: Toby Thurston, Public Domain
우아함 뒤의 투쟁
펀팅을 처음 시도하는 이들은 곧 깨닫게 된다. 이게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강변에서 바라볼 때 펀팅은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우아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긴 장대를 손에 쥐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전통적인 케임브리지 방식은 배의 뒤쪽 평평한 부분에 서서 장대를 수직으로 내려 강바닥을 밀어내는 것이다. 이론은 간단하다. 장대를 물속에 넣고, 손으로 장대를 따라 내려가며 밀고,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장대를 천천히 비틀어 빼내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 깊이 박으면 장대가 진흙에 박혀 빠지지 않는다. 이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장대를 포기하고 손으로 노를 저어 돌아가거나, 장대를 붙잡고 매달려 결국 물속으로 풍덩 빠지거나.
흥미롭게도 옥스퍼드에서는 보통 배의 앞쪽에서 펀팅을 한다. 이 사소한 차이는 두 대학 간의 끝없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케임브리지 사람들은 옥스퍼드 방식을 “엉뚱한 곳에서 운전하기”라고 비웃고, 옥스퍼드 사람들은 케임브리지 방식을 “역주행”이라고 조롱한다.

백스와 시인들
케임브리지에서 펀팅의 중심지는 단연 ‘백스(The Backs)’다. 캠 강변을 따라 늘어선 킹스 칼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뒷마당이 물가에 면해 있는 이 구역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꼽힌다. 봄이면 수선화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잔디밭이 에메랄드빛으로 빛난다.
이 장소는 수많은 문인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케임브리지 출신의 시인 루퍼트 브룩은 1909년 「그랜체스터의 옛 목사관」이라는 시에서 캠 강의 풍경을 애잔하게 노래했다. 그는 멀리 베를린의 카페에 앉아 케임브리지의 펀팅을 그리워하며 “아, 신이시여, 그랜체스터에 있을 수 있다면!”이라고 외쳤다. 버지니아 울프 역시 1928년 케임브리지를 방문했을 때 캠 강에서의 펀팅을 경험했고, 이는 그녀의 유명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교육에 대한 성찰의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캠 강에서 촬영된 작자 미상의 사진. 왼쪽에서 좌석 등받이에 팔을 얹고 있는 인물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이며, 오른쪽에 서서 꽃무늬 모자와 긴 스카프를 두른 인물은 버지니아 울프이다. 그녀의 왼쪽에는 블레이저에 흰 바지, 크라바트를 착용한 루퍼트 브룩이 서 있다. 출처: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 by Ray Monk (ISBN978-1-448-11267-8)
전복과 실수의 연대기
펀팅의 역사는 화려한 실패의 일화들로 가득하다. 1920년대, 한 트리니티 칼리지 학생은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펀팅 실력을 과시하다가 보기 좋게 물에 빠져버렸다. 그는 가까스로 물 위로 올라왔지만 펀트는 계속 표류했고, 그의 여자친구는 혼자 배를 타고 떠내려가며 도움을 청해야 했다. 다행히 다른 펀터가 그녀를 구조했고, 그 구조자는 나중에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물에 빠졌던 전 남자친구는 그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한 물리학 교수가 펀팅의 역학을 수학적으로 분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장대의 각도, 힘의 방향, 물의 저항을 모두 계산하여 완벽한 펀팅의 공식을 도출했다. 그의 결론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펀팅이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살아남은 학생들은 다시 강으로 돌아왔다. 1945년 5월, 유럽 전승 기념일에 캠 강은 펀트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노래하고 웃으며 평화를 축하했다. 펀팅의 부활은 일상의 회복이자 희망의 상징이었다.
캠 강에서 펀팅을 즐기는 관광객들. 출처: Gary Scott on Unsplash
펀팅이 말하는 것
펀팅은 결국 영국적 모순의 완벽한 은유다. 겉보기에는 여유롭고 우아하지만 실제로는 격렬한 노력을 요구한다.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숙련을 필요로 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진지하면서도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캠 강의 펀트 위에서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장대를 밀어낼 때마다 우리는 수백 년 전 학자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물살은 변하지 않고, 버드나무는 여전히 흔들리며, 킹스 칼리지 채플의 첨탑은 하늘을 향해 서 있다. 펀팅을 하다 보면 묘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배를 움직이는 건 당신 이지만, 동시에 배 역시 당신을 움직이고 있다. 당신은 과거로 가고 있지만, 동시에 미래로 향한다.
이것이 바로 펀팅이다. 영국스러움의 물결 위를, 우리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때로는 어설프게, 그러나 언제나 품위 있게 나아간다. 비록 그 과정에서 몇 번쯤 물에 빠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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