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곳은 소위 ‘서울 근교’라고 불리는 도시입니다. 서울의 월세가 활동가 임금으로는 좀체 감당하기가 힘들어진 탓에 평생 살던 서울을 떠나 최근에 이사를 한 곳이지요. 낯선 도시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고 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였습니다. 풀숲이 우거진 강변과 비닐하우스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뚝 선 송전탑이 보였어요. 강을 경계로 송전탑의 반대편에는 커다란 회색 건물이 떡 하니 서있는데요. 그 건물에는 온종일 물건을 싣은 탑차들이 드나듭니다. 물건을 로켓처럼 빠르게 배송해준다는 전자상거래 업체의 물류센터였던 것이지요.
서울의 경계로부터 지하철로 고작 서너 정거장 더 왔을 뿐인데,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의 풍경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정말 큰 것이더군요. 모두가 집 앞에 송전탑과 물류센터를 끼고 사는 세상이라면, 24시간 환한 불을 밝히는 도시가, 밤 사이 생필품을 배송받을 수 있는 “쿠세권”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송전탑이 보이지 않는 도시의 불을 밝히는 전기는 어디를 경유하나요? 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마도 불평등과 착취의 필요조건일 테지요.
7월의 더슬래시는 이원호, 남어진, 김지연 세 분의 필진과 함께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과 착취의 현장을 기후에 초첨을 두어 살핍니다. 어떤 착취는 때로는 ‘대안’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 의도적으로 숨겨진 것을 낱낱이 살펴볼 때야만, 기후라는 거대한 불평등의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원호님은 기후위기의 불평등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동자동 쪽방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의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했으면서도, 변화한 기후에 에너지 빈곤까지 겪고 있는 지역의 현실은 기후위기가 불평등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대안이라고 내놓은 정부의 대비책이 또다시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있는지 봐야한다는 그의 호소는 기후정의 담론 안에서 주거권에 대한 논의와 해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지난 6월에는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다시 타는 희망버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전국에서 1500명이 22대의 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였는데요. 남어진님은 10년 간 밀양에서 겪고 목격한 폭력을 회고하며 우리가 쓰는 전기가 누구를 짓밟는지 질문합니다. 가혹한 폭력에도 투쟁현장에서의 우정과 돌봄은 결코 짓밟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는 그의 회고는 위기의 시대에 끝내 우리를 구해내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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